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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정신분석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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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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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29일(화) 15:4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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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불(꽃)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손으로 직접 두 채의 집을 지어 필자를 초대한, 같은 일을 하던 선배 영어교사의 시골집에서였다. 눈이 마당 가득 쌓여 있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나뭇가지들은 자신의 부피보다 두 배쯤 되는 눈덩이를 이고 서 있었다. 멀리서 도로 위를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의 바퀴소리가 들려왔다. 시골에서 자라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지닌 필자에게 그날 아궁이 속 불빛들은 황홀경 그 자체였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잔가지들과 굵은 나뭇가지들이 온몸을 태우면서 만들어내는 빨갛고 붉디붉은 빛깔들은 순간순간 명멸明滅하면서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신세계로 필자를 안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궁이 앞에 8시간쯤 앉아 있었다. 어느덧 해가 느리게 져서 풍경이 가늠되지 않을 때까지 신기하기만 한 불꽃들을 바라보면서 눈 내린 겨울 풍경 속 따스함을 만끽했다.
또 다른 기억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만난 캘시퍼다. 캘시퍼는 하울의 심장이다. 캘시퍼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하울을 대변한다. 캘시퍼는 때로 장난기 가득하고 때로 괴팍하다. 여주인공 소피는 모자 가게에서 일하다가 황야의 마녀의 마법에 걸려 70대 노파로 변한다. 황야의 마녀는 마법을 풀려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찾아가라고 말한다. 70대 노파의 몸에 갇힌 어린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찾아가 하울에게 따스한 심장을 찾아주고 자신도 삶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자신의 희생으로 사랑을 배워가면서 점점 젊음을 되찾는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영국 소설가 다이아나 윈 존스의 1986년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영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소피의 방문 이전까지는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공간이었다.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캘시퍼라는 불꽃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그의 활활 타오르는 다양한 표정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불하면 인간에게 불을 선물로 건네준 프로메테우스도 떠오른다. '미리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다.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여자를 만들어 '때늦은 지혜, 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경고하지만 그는 판도라와 결혼한다. 제우스는 판도라를 만들 때 상자 하나를 딸려 보냈다. '절대 열어보지 말 것'이라는 금기사항을 포함해서. 어느 날 호기심을 견디지 못한 판도라는 상자를 열고 말았다. 상자를 여는 순간 인간 세상으로 고된 일과 온갖 질병들과 악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란 판도라는 상자를 닫았다. 상자 속에는 오직 하나 '희망'만이 남았다고 한다. 또한 프로메테우스는 예언의 능력을 지녔으나 제우스가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 제우스가 주는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 그는 카프카스의 바위에 사슬로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힌다. 다 먹히고 나면 간은 다시 자라났다. 그러면 독수리가 다시 그의 간을 쪼아먹었다. 끝없는 형벌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독수리와 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을까. 아니, 후에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구해준다. 이것이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과 문명과 예술과 과학을 선물했다. 아니, 불을 선물받은 인간은 불을 기화奇貨로 문명을 건설하고 예술과 문화를 창조해냈다. 불은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이전以前과 이후以後로 바꿔버리는, 극단적으로 살아 있는 활물活物이다.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77*)는 매우 독창적인 철학자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스스로를 교육시켰다. 독학으로 공부하여 중학교 물리, 화학 교사가 되고 철학 석사에 박사 학위까지 도달, 디종대학의 철학 교수를 거쳐 소르본 대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강의하고 국가 문학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그는 과학과 철학을 융합한다. 객관적인 과학 이론에 해박한데다 그 반대편에 존재할 지도 모를 인간의 꿈과 상상력을 철학적으로, 시적으로 버무려 바슐라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포착하지 못할 새로운 혁명적 사유의 지점에 도달한다. 특히 인간 정신의 시적인 부분, 즉 상상력과 꿈들에 대하여 종횡무진, 우리를 끝도 모를 곳으로 안내한다. 전통 학자들은 인간이 보고 난 뒤 기억하고 나중에서야 상상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인간은 무엇보다 우선 <상상>하고 <보고> 그리고 때때로 <기억>하는 존재라고 간주한다.
꿈과 신화, 인간의 온갖 상상(력)을 그는 공기, 불, 물, 대지라는 4원소로 분류한다. 그는 <불의 정신분석> <물과 꿈> <공기와 꿈> <대지와 의지의 몽상> 등 제목에서 느껴지듯 몽상과 꿈을 들여다보면서 이것들을 철학적 대상으로 삼아 음악 같은 철학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는 불이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불의 이미지의 엄청난 시적 생산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불은 살아 있다. 불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불은 따뜻하다. 불이 가진 열은 실체의 풍부함과 영속성을 말해준다. 불은 빠르고 동태적이고 치열하다. 불은 한 순간도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다. 그는 우리의 감정도 이처럼 내적으로 불이 당겨지기를 희망한다. 불은 변증법적인 존재다. 존재한다. 하지만 자신을 끝없이 부정한다. 그러다 다른 단계로 비약한다. 불은 순수한 동시에 격정적이고 유일한 동시에 보편적이고 극적인 동시에 충실하고 순간적인 동시에 영원하다. 바슐라르는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그런 불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뜨거워서 좋기도 하고 뜨거워서 싫기도 한 존재. 활활 타올라 부드러운 한 줌의 재災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면 재災 속에서는 무엇이 다시 탄생할까? 바슐라르는 한 줄기 불꽃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는다. 강렬한 불꽃에 대한 영감을 지극히 내밀한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찾아 내기를 바란다. 상상하라. 보라. 그리고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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