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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글로 읽힌 최초의 국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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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에는 [설공찬전]이 있습니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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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0일(목) 14:40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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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읽힌 최초의 국문소설은 무엇일까? <설공찬전> 국문번역본을 발견한 이복규 교수는 다수의 논문과 연구를 통하여 바로 <설공찬전>이 한글로 읽힌 최초의 국문소설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문소설의 개념을 3가지로 세분하여 설명한다. 국문소설의 1차적 개념은 창작국문소설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창작 당시 원작이 국문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뜻한다. 하지만 고소설 중에서 원작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에 이를 판별하기는 쉽지 않다는 어려움이 있다. 국문소설이라는 <사씨남정기>도 원본은 전하지 않고 김만중의 종손자인 김춘택의 증언만이 있을 뿐이다. <임경업전>도 일반적으로 국문소설이라고 하지만 원전이 전해져 오지 않으므로 명백한 규명이 불가능하다. <홍길동전>도 <구운몽>도 원작의 표기문자 문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차적 개념의 국문소설은 '번역체 국문소설' 혹은 '비국문 원작을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 확실한 소설'을 가리킨다. 원작은 한문이지만 국문으로 번역한 소설도 국문소설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창작국문소설이 좁은 의미의 국문소설이라 본다면, 번역체 국문소설은 넓은 의미의 국문소설이라고 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고소설의 역사로 보아, 이 번역체 국문소설이야말로 민중들에게 읽힌 최초의 대중소설이기 때문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는 한문소설이어서 국문밖에 모르는 민중들에게는 읽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국문번역소설 <설공찬전>은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었다. 이복규 교수는 비록 원작이 한문이지만 이 나라 민중이 소설을 접한 최초의 경험은, 현전 기록으로는 바로 <설공찬전> 국문번역본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고소설이 유통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문이 국문으로, 국문이 다시 한문으로 유통되거나, 국문이 한문으로, 한문이 다시 국문으로 재번역 되는 등 소설 상호간에 빈번한 교류와 전환이 이루어졌으므로 특정 작품을 번역체 국문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매우 조심스럽다고 한다.
3차적 개념의 국문소설은 이본중심, 독자중심으로 접근하는 개념이다. 원작을 특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자에게 국문으로 읽혀진 소설이라면 국문소설로 보자는 것. 특히 <설공찬전>의 경우, 하층민들은 한문소설 <설공찬전>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었고 그들에게 읽힌 것은 바로 국문소설 <설공찬전>이지 않는가.
이복규 교수는 여기에서 <홍길동전>을 불러온다. 그는 현재까지의 통설에 이의를 제기한다. 6차 교육과정 중고등학교 국사와 문학 교과서, 새로 시행중인 7차교육과정 교과서와 참고서에서도 최초 국문소설은 <홍길동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근거가 무엇이며 어떤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가.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라는 증언은 택당 이식1584~1647(63*)의 <택당집>에 처음 나온다고 한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어 수호전과 견주었다."라는 기록. 하지만 국문소설이라는 표현은 없다. 한문기록의 관습상 국문소설의 경우에는 반드시 '언패, 전기, 언번전기, 고담, 언서고담, 언과패설' 등의 관형어가 얹혀 있는데 <홍길동전>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또한 현전하는 <홍길동전>은 1618년이 아니라 19세기 중엽(1850년대) 이후에 필사하거나 인쇄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왜냐하면 허균 사후 무려 230년 이후의 표기법 때문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허균이 죽은 다음에 나타난 도적 장길산의 이름이 등장한다.
장길산은 17세기 말, 말하자면 허균의 시대로부터 근 한 세기나 지난 뒤에 활동한 인물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복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현전 <홍길동전>은 허균이 한문으로 창작한 내용을 바탕으로 200여년 후에 누군가가 국문으로 '재 창 작'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설공찬전> 국문번역소설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1511년, 중종 6년 9월 2일 기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조정과 민간에서 현혹되어 믿고서, 한문으로 베끼거나 국문으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만약 <설공찬전>이 한문본만 존재했다면 민중 속으로 깊이 스며들어 갈 수 있었을까. 상층과 하층민들 모두를 아우르면서, 이땅의 민중들에게 읽히고 감동을 주었던 <설공찬전>. 독자들에게 국문으로 읽혀진 최초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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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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