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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의 제국 / 김재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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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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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02일(수) 14:5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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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호야는 중학교 3학년이다. 겨울 어느 날, 호야는 이른 아침,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뜨는 모습을 바라본다. '검붉은 여명이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 위로 번져' 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호야는 파란 털실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모습으로 수평선을 바라본다.
부산 근교 임랑, 할머니의 집이 있는 곳. 모래톱을 산책하다 호야는 어린 시절 동무인 연이와 눈이 마주친다. 연이는 파란 대문에 붉은 벽돌집, 할머니 혼자 사시는 그 집의 호야를 기억한다. 연이는 할머니와 세 집 건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호야를 마당 넓은 그녀의 집으로 데려간다. 연이는 화장대 서랍장을 열어 소라와 조개 컬렉션과 자신이 만든 자개공예품들을 보여준다. 호야가 집어든 것은 삼족오 문양이다. 연이는 며칠 뒤 삼족오 목걸이를 호야에게 선물한다.
호야의 아빠는 박물관에서 일한다. 호야는 어려서부터 아빠와 박물관을 놀이터 삼아 함께 놀았다.
1세기에서 3세기 사이, 가야 시대 왕들 무덤이 대량 발견된 곳에 세워진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을 아빠와 연이와 관람한다. 그곳에는 청동거울도 있고 철갑옷으로 무장한 가야기병도 있다. 기마무사의 매서운 눈빛도 있고 철가면을 쓴 말의 눈동자도 있고 목관묘도 있다. 대장간도 있고 대장장이도 있다. 호야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역사를 아빠의 직장인 국립중앙박물관과 수없이 많은 박물관을 아빠와 함께 순례하며 배우고 느끼고 깨달아왔다. 그래서 문화재에 대한 감흥이 남다르다. 선지식과 선경험의 중요성이다. 연이에게는 평범하고 평면적인 물건에 불과한 것들이 호야에게는 삶의 일부이다. 호야에게는 박물관이 놀이터다. 어쩌면 병약했던 그에게 주어진 뜻밖의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호야는 박물관에서 연이와 떨어져 쉼터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한 할아버지를 만난다.
"내가 재미 있는 곳을 보여줄까? 저기 전시관 벽 위쪽에 비밀 문이 있어. 지하 세계로 통하는 문이지. 비밀의 무덤이 있는···. 나도 가끔 청소하는 일이 귀찮으면 몰래 숨어 들어간단다." 판타지의 시작이다. 호야는 꿈속에서 자꾸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오라! 오라! 나의 무덤으로 오라!"
호야는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8개월 정도 병원에 있었고 염색체 결함으로 치료해도 재발 가능성이 높다. 치료가 어려운 유전자 결함의 벽혈병. 다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호야는 담당의사인 남과장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남씨는 신기하게도 몸의 자연 치유 능력을 믿는 의사다. 그가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가 아닌, '마음의 힘'으로 스스로 면역 기능을 키워서 몸을 낫게 하는 이미지 요법을 호야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 뇌는 상상하는 이미지와 실제 눈으로 보는 이미지를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몸 안에 혈액 암세포의 소굴이 있어. 너는 지금 갑옷을 입고, 너를 따르는 수백 명의 건강한 백혈구 병사들과 용감하게 소굴로 들어가 암세포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거야. 너희들 다 죽었어!"
호야는 잠깐 끼무룩히 잠들 때마다, 박물관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와 조우한다. 백발도사 할아버지는 호야를 지하동굴로 안내한다. 모험의 시작이다. 호야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갈망, 아빠로부터 물려받은 놀이터 같은 박물관 지식 등이 앵무조개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호야의 몸속 탐험이 바야흐로 시작된다. 호야의 몸속 암세포들과 대항하기 위해 강서대묘의 벽화 <사신도>가 등장하고 12지신, 육십갑자, 석굴암, 신라 감은사, 백제 금동대향로, 고려 천문시계인 혼천의, 통일신라시대 첨성대, 고구려 천체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등 수많은 유물들에 마법의 힘을 부여하면서 호야는 자신의 몸을 만들어낸 선조들을 찾아 현재로 소급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호야는 명부의 도서관에서 할아버지를, 증조할아버지를, 저 멀리 가야의 대장장이인 '범종'을, 고구려 유민인 '무신'을, 고려시대 의녀였던 '초희'를 찾아간다. 세 사람의 조상들을 만난 호야는 백발도사와 함께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가 신장, 심장, 폐, 간장을 돕는 비장에서 암세포들과 격렬한 최초의 전투를 시작한다.
<풀잎의 제국>을 처음 읽었던 것은 5년 전. 칼럼을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다. 탄성이 배어나왔다. 이 많은 도구들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해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한 작가의 정성과 섬세한 작법에 감동했다. 필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무라카미 하루키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 환상문학이라는 차원에서 김재석 작가는 베르나르와 닮았다.
그의 글에는 에누리가 없다. 치열한 현실 만한 판타지가 없고 상상 가득한 판타지 만한 현실이 없음을 알 고 있 는 그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다. 그는 진정한 글쓰기를 목하 진행중이다. 곧 이서영 작가의 <다시 쓰는 설공찬전>에 이어 새로 쓰는 판타지 <설공찬전>이 그의 독법을 통해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믿음>이 만들어내는 한바탕 판타지가 아닐까. 인연이란 참 느닷없고 돌연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반드시 어떤 <의미>가 존재한다. 얽히고 섥혀 한 덩어리가 되어 살아가는 것, 이것을 인연karma이라 부른다.
최근 개봉한 영화 <테넷TENET>에서 주인공은 이것을 '운명fate'이라 부르고 닐은 이것을 '현실reality'이라 말했다. 김재석 작가의 <풀잎의 제국>은 호야의 <몸>을 통해 한 개인이 얼마나 촘촘하게 조상들과 연결되어 있는 역사적인 존재인지, <생각>을 통해 어떤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 1억원 고료에 당선된 멋진 소설이다.
그의, 베르나르 같은,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개성 넘치는 '우리나라식 판타지'가 1500억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져 전세계에 상영될 날을 상상해보는 시간. 꿈꾸는 것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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