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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초여름, 순창터미널 사거리에서

시(詩)골살이 / 시골살이를 담은 에세이이자 시

2020년 06월 10일(수) 16:09 [순창신문]

 

2014년 6월, 초여름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순창으로 귀농한지 다섯 달쯤 되었을 때 일이다. 도시 빌딩숲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던 지난여름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었다. 이곳에서 맞는 여름은 그늘 막을 걷어낸 뙤약볕 그 자체였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면 양복차림으로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아웃도어로 불리는 여름등산복 차림으로 순창읍내로 나섰다.
점심나절, 그날은 뜨악한 볕에 여름별미가 간절히 생각났다. 나는 순창읍 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변변한 식당이 없나, 하며 두리번거렸다. 그곳에서 황혼의 노을이 짙게 서린 구부정한 한 노인을 만났다. 손수레에 폐지박스를 한껏 싣고가다 도로에 쏟아버린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낭패를 보고 있었다. 스타랙스 승합차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다가와서는 중앙차선을 넘어 노인을 피해갔다.
나는 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도울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시골 읍내에서 대낮에 건장한 사내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불쌍한 노인을 못 본 채 지나기도 그렇고 해서, 노인에게 달려갔다.
“어르신, 제가 도울게요. 일단 폐지를 도로 밖으로 옮기죠.”
나는 노인을 도와 도로에 널린 폐지박스를 주섬주섬 챙겼다. 문득 불편하게 느껴지는 노인의 시선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노인의 눈빛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초점이 맞지 않아 낯설기도 하고, 히죽거리는 입술 사이로 앞니도 빠져있었다. 왠지 이빨이 아니라 나사 하나가 빠져 모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 난 저 너머 사, 살아. 쭉 순창에서 사, 살어. 노, 농사짓고 살다가, 지, 지금은 땅도 업, 없고, 이렇게 사, 살어.”
뭔가를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쓸수록 노인의 얼굴은 일그러져 보였다. 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왠지 긴 한숨자락같이 느껴졌다. 누구 하나 말벗이 되어줄 이가 없어서 일까? 이끼도 끼지 않은, 굴러가듯 첫 발을 디딘 외지인에게 신세타령이라니…….
“나, 나라에서 도, 돈도 줘. 머, 먹고 사, 살라고…….”
노인은 도로 가장자리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 마치 요 모양 요 꼴 됐다고 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대우한다며 씁쓸하게 웃는 듯했다. 나는 폐지박스를 손수레에 다 쌓고, 줄로 꽉 동여맸다. 노인이 무슨 힘이 있어 줄을 제대로 맺겠는가 싶었다. 나는 허리를 펴고 턱 밑에 고인 땀을 훔쳐냈다. 일을 수습하고 나니, 이제야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이 밀려왔다. 처량하게 앉아있는 노인도 불쌍해 보였다. 그저 선심성 푼돈이나 받고 산다지만 술값과 약값이 더 들어가게 보였다.
“난, 나, 나라에서 시, 시키는 대로 사, 살았는디…….”
나는 뭔 말이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 탓도 있었고, 노인의 말이 어떤 의미에선 푸념처럼 들려 오히려 짜증이 났다. 이 더운 날씨에 집에나 있지 뭔 푼돈 벌거라고 폐지를 줍나 싶었다. 기껏 일을 수습해 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 들을망정, 푸념 따위를 들으며 갈증을 참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를 떠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중국의 대문호 뤼쉰의 ‘아Q정전’에는 아큐라는 인물이 나온다. 별 볼 일 없는 인물이지만 건달에게 얻어맞아도, 여승에게 욕을 먹어도 ‘오히려 내가 이긴 거야.’ 하는 자기식 감정해석으로 늘 정신적 승리를 자축한다. 나는 2014년 여름, 그날 아큐를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아Q정전’ 식으로 짧게 글을 써봤다. 어쩌면 이제까지 농촌은 아큐식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른다. 사람도 돈도 메말라 가는데 ‘농촌은 도시의 뿌리다.’라는 식으로 곡해한다. 열매는 도시가 다 가져가도 좋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아큐식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세계는 식량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이제는 식량안보니 주권이니 하는 문제가 남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을 농촌답게’ 라는 슬로건은 농촌으로 사람과 자본이 모이게 하는 것이다. 위기 시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지 않는가! 농민이, 농촌이, 좀 더 가슴을 펴야 할 때이다.


ⓒ 순창신문




2014년 초여름, 순창터미널 사거리에서
by 김재석

2014년 여름, 순창터미널 사거리를 기억한다
그날의 뙤약볕은 폐지를 줍는
한 구부정한 노인네 등줄기에도
붉은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그대는
6월 항쟁의 최루탄에 쓰러지는
한 의혈청년을,
5.18 광주 아빠 영정을 든
한 어린아이를
기억하듯

나는 순창터미널 모퉁이,
그늘 한 점 없는 검은 아스팔트 연못에
수련처럼 노란 꽃잎으로 핀
폐지 줍는 한 농부를
기억한다

한 줌 흙 같은 농부의 삶을
기억하는 이 얼마이랴 만은…
이 터미널 길거리도 사거리 낡은 간판도
언젠가는 이름을 감추겠지만….

왜, 사라지는 기억들은 날개짓하며 오늘로 날아드는가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오늘의 그대에게
노란 꽃잎을
노란 수련을
백만송이 꽃다발로 선물한다

웅덩이 물만으로도 맑은 꽃잎을 피워내는 수련을!

김재석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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