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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은 책상이다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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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빅셀 Kahlil Gib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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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5월 13일(수) 16:17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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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강한 빗줄기가 밤새 쏟아졌다. 바람마저 강하게 불어 바람소리와 빗줄기 소리는 맹렬했다. 덜컹덜컹 창문이 흔들거렸다. 가로등에 비친 나무들은 휘청거렸다. 하지만 아침이 되니 점점 잦아든다. 하늘은 청명하고 풀잎들은 흠뻑 물을 머금어 푸르디푸르다. 불쑥불쑥 키를 키우고 부피를 늘린다. 그러고보니 신록들은 무척 행복한 표정들이다. 지난밤의 고통은 사라지고 기쁨만 남았다. 고통 없는 기쁨과 고통이 수반하는 기쁨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의 밀도密度.
만물은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이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판타 레이panta rhei. 어렵게 말해 '만물萬物은 유전流轉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그는 "우리는 같은 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의 강물은 이전의 강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가?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졸졸 흐르는 냇가에 앉아 있더라도, 머물러 있는 듯보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아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모든 것은 미세하게라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는 1시간 전의 내가 아니다. 한 시간 뒤의 [나] 또한 지금의 내가 더 이상 아니다. 나는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듯보이지만 지속적으로 흐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부지런히 바뀌어간다.
철학哲學이란 무엇일까. 철학은 '밝을 철'과 '배울 학'이라는 두 개의 글자가 모여 만들어졌다. 영어로는 philosophy,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철학이란 일상 생활에서 필요한 '지식knowledge', 즉 단지 '앎'에 대한 영역이 아니라 '지혜wisdom'의 영역이다. 말하자면 '인간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의미한다.
서양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소크라테스,라고 생각한다. 그는 '무지의 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한 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앎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정보, 지식, 그리고 지혜. 낱낱의 앎을 '정보'라 하고 이 정보가 체계를 이루면 한 분야의 '지식'이 된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스마트월드에 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프고 상처받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공격적이며 우울하고 불안하고 절망을 느낀다. 물질적인 신, 이른바 물신物神을 숭배하는 세상이 되었으나 그 물질을 해석할 정신적인 도구나 체험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이제 정신병, 우울증, 공황장애 등 많은 정신적, 심리적 질환에 시달린다.
'지혜'의 영역은 지식의 다음 단계다. 많이 '아'는 사람은 우후죽순이나 많이 행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는 정신세계를 정성껏 가꾸는 것을 하찮게 여기는 물신숭배의 문화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다르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기존에 옳다고 여겼던 것들, 당연하다고 학습되었던 것들에게 딴지를 건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정말로 옳은 것일까? 당신이 상처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상처일까? 당신이 넘어졌다고 생각하는 '이' 자리가 정말 실패의 자리일까?
다 르 게 생 각 하 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철학자들은 '딴지를 거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16세기와 17세기를 살았던 베이컨이라는 철학자는 인간은 4가지 우상(편견 또는 선입견)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일정한 환경에 무작위로 던져진다. 그리고 살아가야 할 곳의 관습과 문화를 배워나간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환경에서 습득한 관습과 문화는 한 인간에게 당연한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무의식에 새겨진다. 철학은 바로 이러한 관습적이고 습관적인 문화 속의 인간에게 질문을 던진다. 낯설게 하기.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음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베이컨의 4가지 우상은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을 말한다. 종족의 우상이란 인간이라는 종족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편견을 뜻한다. 동굴의 우상이란 나 자신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편견을 뜻한다. 시장의 우상이란 언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편견을, 극장의 우상은 기존의 관습, 문화, 가치관 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편견을 지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가 의미롭게 읽힌다. 페터는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질문을 던진다. 왜 책상을 책상이라고 불러야 하지?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지? 그리고 그는 '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에 대해 딴지를 걸기로 한다. 그는 그렇게 결정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달라질 거야."
그는 '침대'를 '사진'이라 부르기로 하고 "피곤하군, 이제 사진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라고 말한 뒤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자'를 '시계'라 부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책상 위에 괴었다. "아, '책상'은 '양탄자라고 부를 거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계' 위에 앉아 양팔을 '양탄자' 위에 괴었다.' 그는 이 일에 재미가 나서 온종일 연습해서 새 단어들을 암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르는 단어들 대신 완전히 혼자만 아는 새로운 단어를 사용한다. 이 과도한 그의 실험은 물론 실패로 끝나지만 여기서 질문, 하나.
질문 하나 없이 당연한 듯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지금, 여기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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