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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2020년 04월 29일(수) 10:27 [순창신문]

 

ⓒ 순창신문



봄날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요즘 서로를 곁에 두려 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함께,라는 개념이 무색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지금은 봄날이다. 꽃은 무성무성 피었다 지고 다시 피었다 진다. 필자의 집 정원에는 6그루의 목련꽃이 환하게 피어나더니 어느 아침, 서리가 내려 모두 얼어죽어버렸다. 봄이 가득한 4월에 말이다. 하지만 서리 맞아 슬퍼보이던 꽃잎들이 하릴없이 떨어져 내리더니 미처 피어나지 못했던 꽃망울들이 죽어버린 꽃잎들 곁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금창초, 제비꽃, 쑥, 봄까치꽃, 꽃잔디 들, 살짝 고개를 들고 있는 환한 낯빛의 수선화, 민들레, 머위, 현호색, 구슬봉이 들, 세상은 지금 꽃길이다. 꽃길만 걷지 않으려 해도 꽃길만을 걸을 수밖에 없는 지금은 봄.

필자의 북카페 [책 읽어주는 여자 블루노트]에도 간간이 봄빛을 표정에 가득 담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찾아든다. 그래서 작정하고 글을 써야 할 때는 북카페를 벗어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카페의 한 구석을 찾아가 하루를 보낸다. 오시는 이들에게 죄송하게도 이즈음은 필자의 10번째 책을 쓰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국을 다니면서 인문강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바람에 두 달 동안 단 한 개의 강의도 진행하지 못했다. 3월은 생계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르며 보냈고 그래도 적응이 되는지 4월은 3월보다는 덜 절망적이었다. 한계에 부딪히면 그때는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또한 십시일반의 기적 같은 손들이 여기저기서 필자의 손을 잡아주는 기적을 체험한다.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다 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먼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별의 생존법인 것 같다. 하여 필자는 늘 책숲에서 책을 펼친다. 1일1독에 1만권쯤의 책을 읽고 난 뒤 요즘은 읽던 책을 또 읽고 읽었던 책을 또 읽는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10번쯤은 읽은 것 같다. 그러다가 필사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필사는 자판으로 진행된다. 하루에 6천자에서 1만자를 필사하는데 요즘은 피스넷이라는 블루투스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자판을 선물받은 이후로 하루에 1만자에서 2만자를 필사하거나 글을 쓴다. 날마다 한 권의 책을 SNS에 올린다. 혼자서 읽는 것보다 읽었던 내용들을 SNS에 올리면 어디에 있든지 언제든지 시간이 될 때 다시 펼쳐 읽으면서 공부할 누군가를 위해서이다. [예언자]의 필사 방법은 조금 다르다. 필자는 [예언자]를 7번쯤 필사했는데 연필을 사용했다. 연필의 검은 심芯은 쓰다 보면 금세 닳아져 다시 깎고 다시 깎아야 했다. 긴 연필이 몽당연필로 변했다. 나무 속의 검은 심은 한 자 한 자 글자가 되어 종이 위에 보석처럼 박혔다.

필자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늘 필사筆寫를 권한다. 필사란 따라 적는 것이다. 책 속의 내용을 눈으로 스킵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자 한 자 따라 쓰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다보면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고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깨달을 수 없었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다. 속도의 시대에 천천히 답보踏步 상태를 유지하며 걷는 것. 그 자체가 수행이다. 칼릴 지브란은 필자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자판으로 글을 칠 때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다. 생각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다. 눈으로 읽기만 하면 전광석화電光石火,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사를 하면 슬로우 비디오처럼 생각은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이 된다. 구름 위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며 평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귀한 체험적 영역이다.

[예언자]를 쓴 칼릴 지브란은 레바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죽었다. 20년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영어로 글을 출판했다. [예언자]도 그렇다. 영어로 쓰여진 글 중 [성경]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는 책.
7번을 연필로 종이 위에 적으며 필사하면서 가슴을 쿵쿵 치는 많은 문장들을 만났다. 이런 설렘이라니.
그 문장들은 이제 필자의 10번째 책 [만다라 지혜노트]를 통해 5월이면 필자가 직접 그린 칼 융의 분석심리학적 만다라 100점과 함께 다시 [재해석]될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쓰여진 책이어서 21세기적 사고방식으로 해석할 때 진부하다고 할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영적인 깨달음은 시대를 초월하므로 그의 말들은 솜뭉치가 물을 빨아들이듯 흠뻑 우리의 영혼 안으로 스며든다.

결혼이 무엇이냐고 알미트라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함께 있되 그대들 사이에 공간이 있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 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십시오. 그보다는 사랑이 그대들 두 영혼의 기슭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 주십시오. 그러나 각자의 잔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서로에게 자신의 빵을 나눠주십시오. 그러나 각자 자신의 빵을 먹도록 하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십시오. 그러나 서로 혼자이게 하십시오. 함께 떨며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낼지라도 각각 떨어져 있는 현악기의 줄처럼. 서로 가슴을 주십시오. 그러나 상대방의 가슴을 소유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직 저 위대한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십시오.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미심장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소유하지 말고 존재하라. 서로의 그늘이 되지 말고 당당하게 마주 서라. 집착의 시대.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의 봄날은 그저 바람 같은 봄날이리라. 봄날을 만끽하지 못한 채 얼어버린 봄날의 목련꽃처럼. 그러니 다시, 함께이면서 또한 당당한 고독을,*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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