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
|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의 책의 힘
|
|
2020년 04월 08일(수) 15:54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박경리는 이 시대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문학가이다. 그녀는 1926년 경상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29세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을 통해 문단에 들어섰다. 36세에 [김약국의 딸들]이라는 장편을 시작으로 [시장과 전장], [파시] 등 사회 현실에 대한 문제적 관점을 제시한다. 45세에 [토지]를 집필하기 시작, 25년만인 1994년, 전 5부 16권으로 완간한다. 45세에 시작해 70세에 마지막 문장을 쓴 것이다. 그녀는 글로써 파란만장波瀾萬丈을 펼쳤다.
2008년, 82년의 지구별여행을 마쳤다. 5월 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사후, 6월 22일,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유고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그녀의 39편의 육성이 절절하게 우리에게 선물로 남겨졌다.
1장은 [옛날의 그 집], 2장은 [어머니], 3장은 [가을], 4장은 [까치설]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그녀는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 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은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하고 우리에게 묻는다. 사실 이것은 시라기보다는 필자에게는 수필처럼 보인다. 그녀의 마음이 행이 나뉘어져 있을 뿐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녀의 시 [산다는 것] 전문이다.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녀는 이 시에서 두 번이나 이 문장을 쓴다.
"청춘는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라…. 우리 모두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답고 눈이 부신 곳인 줄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아름답지 않은 일이 있을까. 시간이 지나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사실 과거의 어느 순간에 붙박혀 살게 된다. 그러한 삶. 과거에 붙박힌 삶. 나 자신의 지금, 여기가 늘 과거의 어느 순간에 붙박혀 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필가 박경리는 82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경험했을까. 가슴에 못이 박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녀는 우리가 일생이라 부르는 시간 동안 우리들 모두가 그렇듯 신산한 온갖 이야기들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한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사마천은 한 무제 때의 사관으로 아버지 사미담의 뒤를 이어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였다. 그는 무제의 진노로 궁형(죄인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에 처해졌을 때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음에도 자살하지 않고 [사기]를 완성하였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좌절감과 싸우면서 완성된 [사기]는 본기 12권, 세가 30권, 표 10권, 서 8권, 열전 70권 등 총 130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당대까지 중국 문명의 총결산이라고 한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8세 경, 궁형을 당한 것은 37세, 끝까지 살아 남아 50세가 되어 죽는 순간까지 수정을 계속했다는 사관. 이런 사마천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내려간 박경리를 생각한다.
그녀는 [옛날의 그 집]에서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냈다. 그녀의 시 전문이다.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휭덩그레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꾹새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거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그녀의 삶 속, 고독孤獨이 절절하다. 이 고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사마천과 같이 몰아세우며 한국문학의 거대한 탑을 홀로 쌓았다. 삶이란 온갖 풍파風波 속에서 나를 단련시키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 그리고 때가 되면 훨훨 날아가는 것. 치열하게 살아냈으므로 그녀의 삶,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말할 수 있었으리라.*
| 
| | ⓒ 순창신문 | |
|
|
|
|
이서영 편집위원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