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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유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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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면 서마리
추령마을, 서지마을, 하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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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1월 29일(토) 11:5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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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령(秋嶺)마을
추령은 정읍시 내장동을 경계로 내장으로 넘나드는 재로서 원래는 갈재였다. 순창에 타군으로 넘나드는 고개로 세 갈재가 있는데, 인계면에서 임실군 덕치면으로 넘는 고개를 갈재라 하는데 이 재는 갈대라는 노령(蘆嶺)이고, 장성으로 가는 갈재는 목마를 갈령(渴嶺)이고, 이곳 복흥에서 정읍으로 넘는 재는 칙 ‘갈’자 갈령(葛嶺)이었는데, 어느 때부터 추령(秋嶺)으로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내장산이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게 되면서 추령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곳에 있었던 마을은 옥정리(玉井里)로 서지에 속하였던 마을이었는데 내장산에 관광객들이 이 재에서 쉬어가게 되자 도로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1983년 서지마을에서 분리되어 추령마을이 되었다.
1987년 내장.백양간 도로가 포장되면서 관광상업마을로 변모하여 인구도 늘어나고 소득도 높아져가는 마을이다.
서지(瑞芝)마을
정읍시 내장동과 쌍치면.복흥면의 경계를 이룬 복룡(伏龍)재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내린 산맥이 추령에 도착되기 전에 남쪽으로 박환하여 1㎞쯤 내려와 개장되니 서지마을이다.
복룡재에서 발원한 물이 서마제를 거쳐 마을 앞으로 도랑물이 흐르고 안산인 호두산이 풍부하게 앉아있는 전형적인 취락지이다. 이 마을의 형상이 서지주록(瑞芝走鹿)으로 상서로운 지초를 바라보고 달려오는 사슴 형상에서 서지(瑞芝)라 하였지 않나 생각한다.
임진왜란 이후 산태골.증산.옥정.공근이 등의 마을이 없어지면서 서지마을이 번창한 것으로 보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하마와 병합되어 서마리로 되었다.
하마(下馬)마을
정읍시와 경계인 복룡재에서 동남쪽으로 2㎞쯤 뻗어내려온 산맥이 솟아오르니 백방산(柏芳山, 665m)에서 서남쪽으로 박환하여 내려오다가 다시 솟아오르고 해발 516m의 행기산(行騎山) 아래에서 개장되니 하마(下馬)마을이다.
행기산에서 내려오는 산맥의 형상이 성서로운 준수한 말이라는 뜻에서 상마(上馬), 하마(下馬)라고 하였다고 한다.
산태울 마을 주변에서 선사시대의 토기가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삼한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믿어지며, 복흥현 시절에 사정(射亭)이 있어 무예를 연마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마을이다.
더욱이 이 마을 앞.뒷산의 형상이 복호(伏虎)형상이 호랑이가 개를 보고 쫓아가려는데 사자앙천(獅子仰天)의 사자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으며, 사자가 쫓아가려고 보니 바로 앞에 노서하전(老鼠下田) 형상의 쥐가 있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격을 사수부동지격(四獸不動之格)이라 하여 형상학적으로 대단히 좋은 격상(格象)이라 한다.
이와 같기에 백방산 아래 명당을 찾은 풍수사(風水師)가 끊임없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조 말엽 천주교 박해시에도 많은 천주교인들이 피신하여 살던 곳이기도 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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