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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이 최고야! 쌍치면 내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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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수) 22:2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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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맥하에 계룡산에서 낙맥하여 남향으로 위치한 피노(避老), 내동(內洞), 상촌(上村)을 형성하였고 1971년 행정분리 시행으로 내동마을로 분리하였다. 내동마을은 이조 중엽 현씨와 임씨라는 사람이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 마을이 국사봉의 큰 산 밑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하여 내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호수의 인구가 살았는데 6.25 한국전쟁이후 많이 떠나가고 현재는 소수만 살고 있는 마을이다.
내동 마을 앞 771-4번지에는 440여년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우람하게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고도 17m나 되며, 둘레는 685cm으로 아주 건강하게 서있다.
조선 중종 때 마을의 터를 잡고 마을이 형성될 때 심은 나무로 몇 년 전만 해도 정월대보름이면 정성들여 당산제를 지냈다는 당산나무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소유하였는데 일본인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베어 갈 것을 우려하여 전 마을 주민의 뜻을 모아 그때 당시 200원을 주고 다시 마을 소유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많은 애환과 전쟁을 겪었어도 지금은 평온한 마을로 서로를 위로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동마을은 아름다운 환경의 녹음 속에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무엇에 비활 수 없는 건강의 보약으로 마을 주민들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신다.
이렇게 살기 좋고, 살고 싶어지는 아늑한 내동마을에는 조휴정 이장님, 현창배 지도자님, 서용숙 부녀회장님, 신창호 노인회장님이 마을의 구심체가 되어 마을의 발전을 위해 헌신봉사하고 계시니 어느 마을보다 앞서가는 마을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을 공동체인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함께 활용하며 마을의 공동 쉼터로 활용되고 있으며, 농사철을 제외한 계절에는 내동 마을 주민 모두가 점심, 저녁을 함께 공동취사하고 계신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모여 정답게 음식 장만하여 정답게 드시니 식사시간은 언제나 잔치 상 부러울 게 없고, 그러다 보니 모두가 건강하고 살맛나는 생활을 영위하신다.
내동 마을의 호수는 33호에 70여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한 가정처럼 살아가는 내동 마을도 어르신들이 65%를 차지하고 있어 농사철이면 노동력이 걱정이 된다고 한다.
내동마을의 주 소득원은 논농사와 밭농사로 치중되며, 밭에는 고추, 블루베리, 복분자를 재배하여 소득을 올린다.
내동 고추는 색깔 좋고 맛이 좋아 이곳 고추로 담은 고추장을 임금님께 진상했다고 조휴정 이장님이 고추장 자랑을 푸짐히 하신다.
이곳 고추는 시장에 나가 경매할 때 최상품으로 거래가 되고 있으며 이는 맑은 물 비옥한 토지, 온도의 차이에서 익어간 고추의 우수성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명산인 국사봉과 세자봉, 용두봉을 울타리 삼아 이룩된 곳이기에 항상 맑은 물을 마시며 살고 있어 주민 모두가 건강하시다.
또 이곳은 산세가 좋아 절골이란 깊은 계곡이 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 기왓장이 발견되고 있어 옛날 큰 절터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되며 그만큼 명산이기에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명산 아래 큰 인물 난다 하는 옛 성현의 말씀 따라 이곳 내동마을에는 모두가 향학열이 높아 자녀들의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며, 높은 교육과 노력으로 각양각지에서 훌륭하게 생활하고 계시니 고향에 부모님들은 보람을 느끼시며 든든하게 생활하신다.
내동 마을주민들은 모두가 상호 협력하는 협동심이 강하여 단합이 잘 되는 마을로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때에도 모두가 내일같이 협동하여 해결하니 쌍치면에서도 자랑할 만하다.
이런 동네 분들의 노력으로 내동마을에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 필자는 믿습니다.
조휴정 이장님 내동마을을 위해 보다 더 많은 봉사를 부탁드리며 이장님의 건강과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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