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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정시 삼효자비와 최 효자의 사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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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03일(목) 01:0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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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정시 삼효자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마을을 들어가면 마을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조상님들의 삼효자비와 최 효자의 사효문이 서 있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삼효자란 조선 영종 때의 인물 정시태와 그의 손자 정채룡, 증손 정상신을 말한다.
정시태(鄭時泰)는 효가 지극하여 옆 사람들이 하늘이 내린 효자라 칭하였다. 3년간 시묘를 살았는데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손가락을 가리키며 여기다 묘를 써라 하여 그 자리에 장례를 모셨다. 또 3년째 되는 해 마음은 곧고 성품이 강직하다는 뜻으로 오죽의 종자를 구하여 산소 아래 심었는데 아무리 한풍이 불어도 가지 하나가 죽지 않고 1년에 한 개의 죽순이 나와 죽림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도 오죽이 살아있다. 정채룡(鄭采龍)은 어려운 생활 속에 어머님께서 병환에 계시는데 돌아가실 무렵 손가락의 피를 내어 입에 넣으셨는데 3년을 더 사셨다 한다. 또 돌아가실 때까지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며 어머님 마을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정상신(鄭常臣)은 효가 지극하였고 부친이 돌아가신 후 3년간을 묘 앞에서 시 묘를 살았다 한다. 그런데 그 앞에 없었던 샘물이 생겼고 시묘가 끝날 무렵 샘물도 서서로 줄어 졌다 한다. 그리고 3년간 시묘를 사는 순간 큰 호랑이가 나타나 눈이 오면 묘 앞을 쓸어주며 3년을 같이 살았다 한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밤에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와 큰 울음으로 우니 마을 주민이 놀라 꼼짝을 못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제삿날 눈이 오는 밤이면 호랑이 발자국을 남겼다고 한다.
□ 사효문(賜孝門)
효자 증 동몽교관 조봉대부 최창갑 지려는 방화리 마을 안 옛 최 효자의 고택 앞에 세운 정자이다. 고종 26년 1889년 이 해에 최 효자가 졸(卒)하였는데 유림들이 아름다운 효행을 그려 추증하는 전례가 거론되고 당시 안찰사와 암행어사가 앞장서 천거하여 조정에서 효자 여각을 세우도록 하는 명이 내린 것이다. 사효문은 나라에서 내린 정려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훌륭한 조상님의 아름다운 공덕에 모두 고개 숙여 그분들을 우러러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난다.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효열부,
김용운 이장님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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