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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부 조령 최씨 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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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0일(화) 22:0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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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마을 입구에 열부 조령 최씨 비가 세워져 모든 분이 우러러 보기에 조정에 올린 장복원 입안문(掌福院立案文)을 줄여서 적어 올리고자 한다.
조령 최씨는 어려서부터 걸음걸이부터 다르고 포용히 움직이고 말수가 없어 법도에 맞지 아니함이 없더니 자라서는 너그럽고 따뜻하고 청렴결백하며 부도를 충행(充行)하고 효로 부모를 섬김에 오로지 지성으로 행하여 부모님을 모시니 효녀로 고을에 알려졌다.
출가할 나이가 되어 이 집안으로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효로 받음에 하루에 세 번의 음식을 정성을 다하여 올리는 도리에 온 힘을 다하였고 남편을 섬기에 그 뜻에 순종하여 받들었으며 집일에 어김이 없었으며 남편이 병에 걸리어 날로 위중하니 의약을 씀에 정성을 다하고 뒤뜰 가운데 단을 만들어 놓고 정화수 떠놓고 하늘과 신에게 남편의 명을 나를 대신 하여 달라고 빌었으며, 운명의 지경에 이르니 자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입에 넣어 주니 몇일 동안 살았다가 세상을 영결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가슴을 두드리며 슬피 울어 예법에 따른 슬픔을 다하였으며 3년 상을 마치고도 제삿날에는 슬피 우는 것이 초상 때와 같이 하였으며, 부지런히 길쌈하여 살림을 늘려 선영의 제사를 받들고 가세가 조금 넉넉하여도 옷을 검소하게 입고 친척과는 화목하니 집안에 즐거운 기운이 넘치니 그 아들을 오로지 바르게 가르치니 아들 또한 엄숙하게 부모를 효로 공경하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옳은 일로 부모님을 영화롭게 하니 가히 단물이 나온 샘은 근원이 있고, 영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열행의 실적이 이미 많은 선비의 연이은 상소로 나타났고, 또 부근에서 포상한 것으로 증험되었으니 특별히 정려의 은전을 베풂이 아름다운 풍속을 세우는 정치에 합당한 것이옵니다.
은전에 관계되는 일이라 신의 원에서 천양할 수 없으므로 엎드려 위에서 결정하여 주심을 기다리며 삼가 올리나이다.
광무10년(1906) 11월 12일 임금의 명을 받들어 주청한 바를 시행할일.
임금님의 명에 이 정문을 세울 때에 제목과 목수와 그림을 그린 사람과 석공을 의례이 관에서 거행할 것이며 그 자손가에 별반의 잡역과 호세나 양곡을 같은 일등을 모두 면제케 할 것도 합하여 입안 시행하라.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의 효열부,
박재순 이장 면담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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