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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리 역 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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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29일(수) 05:0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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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리 역은 조선말 고종 때 역촌으로 정하고 그 시절 역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것을 모두 갖추고 사또가 전남 옥과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경유할 때 쉬어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쉬며 잠을 자고, 다음역인 인계면 탑리 노원역으로 가서 쉬고, 갈담 역을 경유 전주 감영으로 가는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설화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도꾸가와’가 이 마을에 거주한 신씨와의 상호유대가 깊었다고 하여 창성할 창(昌)과 신(申)을 합하여 이 마을을 창신이라 부르기 시작하였으나, 원래 창신(昌新)은 193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창신(昌申)으로 바뀐 곳이다. 창신역의 운영 내용을 전하여 온 바에 의하면 창신역은 ‘원위전은 원래 기름지고 물이 좋고 넓은 평야에 있었던 논이었는데 조선조 말기에 역(驛)을 책임진 역관이 좋은 논은 팔아 착복하고, 가람절골 천수답으로 대치하였기에 너무도 메마른 땅인지라.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생각도 못하기에 주위는 물론 군전지역에서 떠도는 말이 유등면 창신리 역답이 모내기를 하면 전국 어느 곳이던지 천수답에 모내기가 끝난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지금은 양수시설이 잘되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 가는 세월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기에 기록해 둔다.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군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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