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6-04-17 | 10:02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수 후보

로그인 회원가입 기자방 원격
    정치/행정 교육 문화 스포츠 환경/보건복지 농업소식 종합 인물인사 칼럼 기획 특집 토론방 보도자료 지역소식 소식정보 포토 경제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독자마당

자유게시판

토론방

뉴스 > 기획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훈몽재와 적소

2012년 07월 10일(화) 21:51 [순창신문]

 

예부터 순창의 삼방하면 많은 인물이 태어나기도 하였지만 많은 명현들과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사 기정진·송강 정철·우암 송시열 선생들의 흔적이 남아있고 하서 김인후와 김신제의 만남과 숨겨져 있는 비화가 있기에 적어두고자 한다.
하서 김인후 선생님은 1510년 장성현 대맥동에 태어나서 동방 18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신 분이시다.
본관은 울산으로 휘는 인후이며 하서는 호이다.
1795년 정조 20년에 명가대광 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命加大匡 輔國崇祿大夫 議政府領議政)으로 시호는 문정이다.
1544년 김하서는 인종께서 승하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모든 것을 떠나 현 쌍치면 점암촌에 초당을 짓고 훈가라 하여 후학들을 가르치셨다.
그 제자로 조희문·양자등·정철 등을 들 수가 있다. 이 훈가를 후일 훈몽제라 하였으니 이곳을 많은 사람이 찾았으리라 믿어지나 그 중 한분이 김신제이다.
공의 휘는 진종(振宗) 본관은 선산이며 신제는 호이다.
1528년 중종 무자에 문과에 등과하여 홍문관 응교에 이르렀으니 홍문관 박사로 계시었던 하서 선생과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인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44년 인종이 승하하자 이곳 점안촌에 초당을 마련하고 계실 때에 1545년 을사사화로 파귀향리(罷歸鄕里)하였다가 1547년 가을에 이곳 상치 적곡으로 적거하여 11년 동안이나 있었으니 하서 선생과의 교유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귀래정에 하서선생의 차운(次韻)으로 그 현판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니 모든 사실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김신제의 적소(謫所)를 후일 적곡으로 불렀던 것을 적곡(赤谷)으로 표기 되었지 않나 생각된다.
적곡리 북실 마을 입구에 연대는 차이가 있으나 우암 송시열 선생의 친필이 바위에 새겨져 있으니 관수당마농암(觀水堂磨礱巖)이라 쓰여져 있으니 그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우암께서 다녀간 흔적이 뚜렷하니 이 고장은 많은 명현의 발자취가 곳곳마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의 얼

순창신문 기자  .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더불어민주당 전북특별자치도당

순창군 읍·면민 협의회 4월 정

옥천5마을, 주민 화합 플리마켓

최기순 순창군 장애인편의증진기술

농업기술센터, 과수 화상병 원천

순창군청소년수련관, 청소년 자

순창군장애인복지관, ‘2026

대한노인회 팔덕면분회, 선진지

너의 탄생을 축하해♥ 장은우

“나무에 새긴 마음, 군민과 나

회사소개 - 조직도 - 임직원 - 윤리강령 - 편집규약 - 광고문의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자회원 약관 - 구독신청

 상호: 순창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4078107159 / 주소: 전북 순창군 순창읍 옥천로 32 / 대표이사: 오은숙
mail: scn5850@naver.com / Tel: 063-653-5850 / Fax : 063-653-5849
Copyright ⓒ 순창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