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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사에서 공부한 임문수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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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5월 23일(수) 11:1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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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면 유산마을 라주 임씨는 임진왜란 때 이 마을로 피난하여 살면서 수대를 무관으로 살았다.
원래 양반의 후손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였음을 늘 한탄하였다. 임문수의 아버지는 오수 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면서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문수를 용유사에 보내놓고 사흘이 멀다 하고 아들의 먹을 식량을 짊어져다 놓곤 했다. 쌀을 짊어지고 가서 밤늦게 글을 읽는 것을 들으면 소리 없이 쌀을 마루에 놓고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 장사를 마치고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용유사를 가는 날이기에 쌀을 짊어지고 밤중에 올라가는데 글 읽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임씨는 몹시 화가 났으나 이것은 아들의 잘못이 아니고 자기가 부덕한 것이라 개탄하고 지붕끝 낙숫물이 떨어진 곳에 꿇어 앉아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아들 임문수가 문을 열어보니 아버지가 낙숫물 속에 꿇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뛰어나갔다.
그때 아버지 하시는 말이 “도련님! 도련님 덕으로 양반 한번 됩시다” 라고 하였다.
임문수는 글을 읽지 않고 잠잔 것을 후회하고 다시는 글 읽는 것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문뜩 잠이 올 때면 아버지가 낙수 물 떨어지는 처마 밑에 꿇어 앉아 아들에게 도련님이라 부르던 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의 대가로 임문수는 대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사 병조정랑의 벼슬을 지냈고 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준 아들로서 유산마을 라주임씨의 중조가 되었다.
그 후로 용유사는 유명한 사찰이 되었고, 용유사에서 공부하면 급제한다는 말이 전하여 올만큼 유명한 사찰이었으나 어느 때 폐찰 되었는지 그 전설만 전하여 올 뿐이다.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의 구전설화,
순창향지(지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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