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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치의 암벽에 새겨진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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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25일(수) 10:4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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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쌍치면 학선리 오룡 마을에서 정읍시 칠보면 수정리로 넘나드는 재를 굴재 또는 굴치라 한다.
옛날에는 이 고갯길이 정읍과 순창을 연결하는 큰 길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 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람 흔적은 없고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만 고요한 골짜기의 정서를 돋구어주고 있다.
이곳 순창과 정읍의 경계지점에 거대한 바위 두 개가 서 있는데 하나는 치마바위라 하여 옛날 어느 여인이 치마에 쌓아다 놓았다는 전설의 바위이다.
또 그 앞에 있는 바위는 거대한 초상화가 새겨지고 초상화 주인공의 수도비를 각하여 놓았으니 적선․ 적덕하여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후에 황태자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하여 오기에 적어본다.
밀양박씨 모은(慕隱) 박잉걸(朴仍傑)은 1676년에 태인현 원백암리에서 태어나 수직(壽職)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를 제수 받았던 태인 고을에 갑부였다.
노령에 피부병이 생겨 갖은 약을 다 써도 백약이 무효였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두루 아들들이나 만나보고 여생을 마칠 양으로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산내면에 찾아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굴치를 오르고 있었다.
모은공은 고개 중턱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마침 백발노승이 재를 내려오고 있었다. 모은공은 선풍도골의 신선 같은 사람을 보고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화기를 느끼는 순간, 어쩌면 저 노승은 도를 깨우친 도인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자 이 노승은 모은을 바라보면서 “대감 신액을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모은은 즉시 도승에게 “좋은 비방을 알려주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도승은 “적선을 하십시오. 우선 이 험한 길을 닦으시오”라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로 사라져 버렸다.
모은은 이 분의 말을 산신령의 계시라 믿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자선사업을 시작하였다. 우선 굴치 길을 닦자고 마음먹고 버선발로 재를 걸어가도 흙이 묻지 않을 정도로 납작한 돌로 깔아 놓았다. 그리고 길가에 막을 치고 옷과 신발을 걸어놓고 옷이 없는 사람, 신발이 떨어진 사람은 갈아입고 신고 가라는 방을 붙였다.
이 말을 들은 원근간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옷과 신을 가지고 갔으나 누구도 두 벌을 가져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적선․ 적덕을 베풀었으며 그 은덕으로 피부병이 완치되어 90장수를 하였기에 수직을 받아 가선대부가 되었다.
그 후 모은공이 세상을 떠난 다음해 1767(영조 32) 정해년에 순창과 정읍의 경계에 서 있는 거대한 암벽에 모은공의 초상화와 수도비를 순창 태인 병립이라 각하였으니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더욱이 모은공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중국 청나라 고종의 황태자가 태어났는데 6개월 동안 왼손의 주먹을 쥐고 펴지 않아 강제로 펴고 보니 조선국 태인 박잉걸 환생이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암벽의 초상화와 수도비를 보고 세월의 무상함과 개인주의 만연으로 자기만 잘살면 된다고 하는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옥천의 얼, 군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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