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귀농·귀촌의 푸른꿈/“오골계 드셔 보셨어요?”
|
|
동계 수정리 이정일 씨 부부를 찾아서
|
|
2012년 05월 02일(수) 10:04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동계면민의 날 행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8일 점심 때 쯤 동계 수정리에 사는 이정일(50)·이경자 씨 부부는 마당 한가운데에 걸어놓은 솥에다 오골계를 삶고 있었다.
몇 번의 전화연락에도 연결이 쉽지 않았던 이정일 씨의 휴대폰이 연결되자마자 수정리로 달려갔다. 마침 이 씨는 마을 뒷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던 중이었다. 잠시 기다리면 산을 내려가겠다는 음성을 남기고 전화는 끊어졌다.
불이 붙어 활활 타고 있는 장작불에서 삶아지고 있는 오골계는 갖은 한약재와 어우러져 독특한 색과 냄새를 풍겼다. 몸통이 온통 까만 오골계가 군침을 당기게 했다.
이 오골계는 귀농한 이 씨를 찾아 서울에서 내려 온 친구들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씨는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서 도배장판 등의 실내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지난 2007년 암에 걸린 홀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인 동계 수정리로 내려왔다.
병이 든 이 씨의 모친은 6년간에 걸쳐 여섯 번의 수술을 거쳤으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홀 어머니가 남기고 간 많지 않은 땅덩이가 있어 정착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이 씨는 땅없이 귀농하는 사람들에 비해서는 그나마 부농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씨는 시골살이가 눅눅치 않음을 설토했다. ‘여유 돈을 가지고 귀농하지 않으면 공과금조차도 제대로 낼 수 없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물론 이 씨는 오랜시간 병든 모친의 수술비와 약값을 부담한 탓에 쪼들리는 살림살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없어 헐값에 내놔야 하는 심정이 가장 안타깝다’고 말하는 이 씨는 ‘군과 정부의 안이한 귀농정책이 또다시 도시로 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귀농귀촌자에게 지원되는 사업비는 책정된 예산 안에서만 지원되고 있는 실정이라 귀농을 했어도 사업비를 못 받으면 다음해 농사를 질 때까지 손 놓고 기다려야 하는 점이 귀농자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현재 오골계를 키우며 1천평의 매실 농사와 1만평의 밤 농사, 1천평의 대봉 감, 고추 3천평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적지 않은 농사로 인해 일손이 부족해도 시골에서는 품앗이를 할 수 없다. 시골에서 품앗이가 사라진지는 오래됐다고 전해주었다. 농업인들의 연령층이 고령화 되면서 품앗이를 할 수도 없고 품앗이가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3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수정리에 들어서서 마을 경로당을 지나 산밑 오른쪽으로 100m 쯤 가다보면 ‘명신지물’이라는 간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간판은 이 씨가 안양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할 때 쓰던 간판으로 사람들이 쉽게 집을 찾게 하기 위해서 달아놓은 것이랬다.
귀농·귀촌인들이 도움이 필요해 찾아오거나 오골계를 구하기 위해 이 씨의 집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이 씨는 공기좋고 물 맑은 우리 지역에서 장류사업은 해 볼만하다고 권했다. 그는 현재 직접 수확한 콩으로 고추장과 메주 등을 만들어 도시의 아는 지인들에게 팔고 있다.
|
|
|
|
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