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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최고의 베스트셀러 ‘설공찬전’ 재조명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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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설공찬은 실제인물 설공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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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18일(수) 10:19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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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설공찬전은 어떤 소설인가?
조선왕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으며, 중종조 불온서적으로 분류돼 모두 불살라졌던 채수의 금서 ‘설공찬전’이 훈민정음 창제에 이후 최초의 한글 번역소설이었다는 점에 전국이 떠들썩했던 게 1997년의 일이다.
우리나라 고소설의 유통방식은 구연에 의해 전달되는 구비문학과 기록에 의해 전달되는 기록문학이 있다. 고소설이 후세에 전달되는 방식은 구전에 의해 전달되기도 하고 한 번 읽어본 소설을 타인에게 읽히고자 할 때 손으로 직접 베껴서 전달하는 ‘필사본’의 방식도 있었던 것이다.
채수의 설공찬전의 경우도 ‘국문필사본’으로,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16세기에는 필사로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한문소설 설공찬전은 말 그대로 붓으로 직접 베낀 한문을 아는 유식층에서 주로 필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학계가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경로로 필사된 한문본은 대개 상응하는 한글본이 존재하는데 한글본이 후기에 한문본으로 필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반면에 한문본 역시 한문을 아는 유식층에 의해 필사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설공찬전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글소설의 경우는 주로 여성들이나 가난한 양반, 서리, 궁인들에 의해 필사가 이뤄졌던 것과는 반대로 한문소설인 설공찬전의 경우는 한문을 아는 유식층인 양반들에 의해 필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묵재일기 속에 숨겨져 발견된 설공찬전 역시 양반들에 의해 필사되고 유통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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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설공찬전이 조선왕조 최대의 필화사건을 일으킨 작품으로 조선왕조실록 중종조에 기록돼 있으며, 민중을 현혹한다는 이유로 수거되고 불태워진 작품이다.
원작자 채수도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해졌으나, 중종반정에 가담한 이유를 들어 간신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설공찬전의 줄거리
순창에 살던 설충란에게 남매가 있었는데, 딸은 결혼 후 바로 죽고 아들 공찬도 장가들기 전에 죽는다. 설충란은 공찬이 죽은 후 신주를 모시고 3년 동안 제사지내다가 3년이 지나자 무덤 곁에 신주를 묻는다.
설충란의 동생 설충수의 집에 귀신(설공찬 누나의 혼령)이 나타나 설충수의 아들 공침에게 들어가 병들어 죽는다.
설충수가 귀신퇴치를 위해 방술사 김석산이를 불러다 조처를 취하자, 오라비 공찬이를 데려 오겠다며 물러간다.
설공찬의 혼령이 와서 사촌동생 공침에게 들어가 수시로 왕례하기 시작한다. 공찬의 혼령이 들어가면 집 뒤 살구나무에 가 있곤 하였는데, 평소에 공침은 오른손잡이였는데, 공찬의 혼이 들어가 있는 동안에는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저승에서는 다 왼손으로 밥을 먹는다는 대답을 한다.
설충수가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김석산이를 불러다 그 영혼이 무덤 밖으로 나다니지 못하게 조처를 취하자, 공찬이 공침을 극도로 괴롭게 해 설충수가 다시는 방술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공침의 모습을 회복시켜 준다.
공찬의 혼령이 사촌동생 설위와 윤자신이를 불러오게 했는데, 저들이 저승 소식을 묻자 다음과 같이 저승소식을 전해준다.
저승의 위치는 바닷가로서 순창에서 40리 거리이며, 저승나라의 이름은 단월국, 저승임금의 이름은 비사문천왕, 저승의 심판 양상은 책을 살펴서 명이 다하지 않은 영혼은 그대로 두고, 명이 다해 온 영혼은 연좌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공찬도 심판받게 되었는데, 거기 먼저 와있던 증조부 설위의 덕으로 풀려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승에 간 영혼들로부터 저승의 형편을 듣게 되는데, 이승에서 선하게 산 사람은 저승에서도 잘 지내나 악하게 산 사람은 고생하며 지내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는데 그 사례가 아주 다양하다는 것이다.
염라왕이 있는 궁궐의 모습은 아주 장대하고 위엄이 있으며, 지상국과 염라국과의 관계는 성화황제가 사람을 시켜 자기가 총애하는 신하의 저승행을 1년만 연기해 달라고 염라왕에게 요청하자, 염라왕이 고유 권한의 침해라며, 화를 내고 허락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당황한 성화 황제가 염라국을 방문하자, 염라왕이 그 신하를 잡아오게 해 손이 삶아지리라고 하는 내용을 끝으로 발견된 부분의 설공찬전은 막을 내린다. 이 내용의 앞과 뒤에 어떤 내용이 이어지는 지는 새로운 발견이 있기까지는 알 수 없다.
설공찬은 실제인물 설공순이었다(?)
설공찬전의 배경지가 순창 금과의 매우리라는 것은 학계를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또한 특기할만한 것은 설공찬이 실제인물 설충란의 둘째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순창설씨 대종회에서 제공한 순창설씨의 족보를 보면 설충란에게는 공포와 공순이라는 아들이 있다. 설충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금과의 설 모씨가 성장과정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설공찬은 설충란의 둘째아들 설공순이었다는 것이다.
설충란과 설충수의 묘가 모두 순창에 실재해 있고 설공찬은 설충란의 둘째아들이 맞다는 후손의 말로 미루어 보아 설공찬전의 사실여부에 조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설공찬전을 최초 발견한 이복규 교수는 설공찬, 설공침도 설위나 설충란, 설충수처럼 실존 인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설공찬전과 관련해 벌어진 중종조 때의 어전회의가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사 김수동이 왕에게 아뢴 말이 적혀 있다.
‘채수의 죄를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채수가 만약 스스로 요망한 말을 만들어 인심을 선동했다면 사형으로 단죄함이 마땅하나, 표현욕구에 따라 보고 들은대로 함부로 지었으니 이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 했다.
또 검토관 황여헌도 아뢰기를, ‘채수의 설공찬전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며, ‘설공찬은 채수의 일가 사람이니, 채수가 반드시 믿고 미혹되어 저술했을 것’이라고 왕에게 말했다.
설공찬전의 배경지가 순창이며 등장인물들 또한 순창에 살았던 실존인물들이므로, 장성의 홍길동전과 남원의 춘향전이 관광상품화 됐던 것처럼 우리지역에서도 설공찬전을 문화상품과 개발해야 한다는 재조명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순창을 설공찬전의 배경지로서, 소설속의 주인공이 실존인물이라는 사실에 대한 검증을 통해 순창을 널리 알리고 이를 관광문화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세워 순창발전의 물꼬를 터야 하는 것은 시대의 요구라는 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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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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