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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과면 남계리 호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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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참고문헌 : 순창의 누정과 산성, 순창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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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14일(수) 11:1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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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정은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남계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호계는 류동유(柳東遊)의 호이다. 그의 고조 석헌 류옥(石軒 柳沃)은 중종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전한을 지냈는데 그보다도 그는 중종왕비 장경왕후가 산후에 바로 세상을 떠나자 중종의 조강지처인 신비를 다시 왕비로 복위시키자는 상소를 지금 순창 강천사에서 당시의 순창군수 충암 김정과 담양부사인 눌재 박상과 함께 모여 소나무에 관인을 걸고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당사의 반정공신에 의하여 묵살될 뿐 아니라 이들을 모두 귀양을 보냈다.
그 후에 귀양에서 풀려나기는 하였지만 관계에 진출도 못하고 결국 기묘사화로 충암은 정암 조광조와 함께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석헌에게는 증손 뇌천 류호가 있었다. 그는 창평에서 남원 둔덕 방으로 이거를 하였는데 그에게는 어목 류동순, 남간 류동연, 호계 류동유의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진사에 합격하였고, 남간은 천으로 감역에 제수되었다.
이중 호계 류동유는 지금의 금과면 호치리에 사는 경주 설 씨 집으로 장가를 들어 처가를 따라 호치의 바로 옆인 남계리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남계리에 호계정을 짓고 벗들과 산수를 즐기며 수창하였다. 이 정자는 1640년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100여년이 지난 후 헐려 지금의 정자는 1929년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호계 정기는 류한상이 지었고, 또 당시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원의 폄재 최은의 시가 있다. 이 정자에서는 일제하에 만국의 슬픔을 가슴에 안은 선비들이 모여서 시를 수창하였던 역사 깊은 정자이기에 이곳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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