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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이 최고야! 풍산면 두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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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07일(수) 10:5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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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두지동(斗池洞)과 승입(升入)마을을 병합하여 두지동의 ‘두’자와 승입의‘승’자를 합하여 두승리라 하였다.
원래 이곳은 오산면이었으나 풍남면과 병합하여 풍산면에 편입되었다.
대가리의 북쪽에 있는 산을 오산(鰲山)이라고 하여 이 산을 등지고 마을이 형성되니 두지리이다. 이 마을은 대가리와 함께 큰 마을이며 지역을 잘 모른 사람이 보면 한마을처럼 보일만큼 가까이 있다.
그러나 예부터 따로 취락이 형성된 마을이고 이 마을을 옛날에는 뒤주굴이라 불렀는데 마을의 지형상이 쌀을 담는 뒤주처럼 생겨서라고 하나 이 마을의 형상이‘두’란 말과 같다는 뜻이고‘지’는 궁중에서는 쓰는 요강이란 뜻으로서 말 같기도 하고 요강 같기도 하다는 것으로 물도 세지 않을 정도로 생겼다는 말이다.
따라서 두지리 마을은 예부터 의식주가 풍부한 마을이라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마을이다.
맨 처음 금녕김씨(金寧金氏) 한 사람이 조용하고 풍요로운 곳을 찾아다니다가 두지(斗池)에 정착(定着)을 했으며 오늘날에도 금녕김씨가 많이 살고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다.
두지마을 앞에는 수년전만 해도 마을 앞에 연못이 있었고 주위에는 능수버들과 연못 둑과 마을 앞에는 비보용으로 큰 느티나무와 버드나무가 무성했었다.
연못에는 월척의 붕어가 밤이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새마을 사업으로 연못을 정비하여 주차장으로 만들어 큰 광장이 되었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도 고사하고 그 후에 심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다.
항시 마을 공동 우물은 마르지 않아 마을 안과 밖에 미나리를 재배하기도 하는 청정마을이다.
두지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김형무(70)이장과 김형 지도자, 박순덕 부녀회장이 마을 구심체로 봉사하고 있어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두지 마을의 소득원은 주로 논농사에서 소득을 얻고 밭농사도 약간 경작하고 축산농가, 하우스재배, 미나리 재배 등 복합 영농으로 농가 모두가 소득을 올리는 마을이다.
넓은 들 순창군에서 으뜸가는 들을 가지고 있어 영농기술이 앞서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농가호수 57호에 주민 102명이 행복하게 사는 마을이다. 두지리에도 늙으신 어르신들이 많아 농사에 어려움이 많지만 마을에 부지런한 젊은이들이 기계로 노동력은 해결되고 있다.
몇 분 젊은 분들이 영농에 종사하며 새로운 영농 기술을 습득하여 마을에 전파하니 마을 모두가 소득이 높아져 언제나 즐거운 미소 속에 생활하고 있다.
마을 공동체인 마을회관과 할머니 경로당, 할아버지 경로당을 운영하는데도 구심체의 역할과 관심이 높기에 주민 모두의 휴식처로 건강을 유지하고 상호 대화의 광장으로 가치를 더하고 있다.
큰 마을답게 출향인들 또한 많아 고향사랑이 남달라 명절이며 고향을 찾을 때면 고마운 정표를 남기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풍양속인가 한다.
두지마을은 우리 군에서 가장 우수한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첫째, 두지마을에서 생산되는 미나리이다.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는 향기 좋기로 유명하여 공판장에서 높은 가격을 받아 농가소득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둘째, 지금은 생산되지 않고 있지만 수년 전만해도 중섬 체전 밭에서 생산되는 무는 어느 지방 무보다 월등했다. 무의 크기, 맛 등 우리군의 대표 작물이었었는데 섬진강 둑 공사로 이젠 그 터가 제방으로 변하여 아쉬움이 매우 크다.
셋째, 왕골이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왕골은 미나리 강에서 자라 어느 곳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왕골의 크기며 질이 대단했었다. 비록 과학의 발달로 플라스틱에 밀려 과거로 돌아갔지만 이곳에서 재배되었던 왕골은 우리들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두지마을 김형무 이장 마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봉사해 주시길 바라며 파이팅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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