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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사 건립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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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7일(목) 08:5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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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 석산리 도왕마을 동북쪽에 솟아오른 산을 각시봉이라 하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에 불교가 들어와 전성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때에 불암사라고 하는 큰 가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도승이 가람을 세우고자 대명당을 찾고 다녔다. 적성현을 찾아 만수탄 구비치는 물줄기와 용골산과 무량산을 바라보면서 부근에 대명당이 있으리라 믿고 물을 따라 올라오는데 만수탄 앞산을 보니 말꼬리였다. 말머리에는 필시 대가람 터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여 산을 올라보니 대명자가 눈앞에 보였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대웅전 자리가 없어 정하지 못하고 해가 저물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하늘에서 어여쁜 보살이 금부처를 안고 내려와 그것을 놓고 승천하였다. 날이 밝자 그곳을 찾아가보니 실제로 금부처가 놓여 있어 서둘러 대웅전을 건립하니 이 사찰이 불암사였다. 보살의 가르침으로 불암사를 건립하였으므로 그곳에서 동북쪽으로 추암사를 건립하여 부구승의 도량을 하였다.
그 후 사찰은 대번창하였고 이 사찰 부근에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으니 사찰이 한창 번창할 때는 신도 한 집에서 고춧가루 한 수저씩 거두면 한 가마에 달했다고 하니 그 수를 짐작할 수 있다. 이토록 번창하던 때 병법을 공부하는 승려가 있어 수수를 한 주먹 던지면 모두 병사로 둔갑하여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만큼 신통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서숙을 한 줌 던져 병사로 만드는 도력을 적성강 절벽 위에서 백 일 동안 좌선하고자 찾아갔다.
절벽 아래는 선녀탕이 있어 선녀가 목욕하는 곳으로 그때가 목욕하는 때였다. 선녀가 목욕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무승은 순간적인 욕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선녀를 안아 버렸다. 선녀가 말하기를 “그동안 닦은 도력을 이토록 허무하게 파계할 것입니까? 저를 놓아주시고 어서 마지막 도력을 기르십시오” 라고 하였으나 무승은 더욱 힘차게 끌어안았다.
이때였다. 천지가 진동하는 뇌성벽력과 함께 선녀는 돌이 되어버리고 무승은 얼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장승이 되어버렸다. 그 후 불암사와 추암사는 점점 쇠하여 폐찰되고야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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