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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찰괘검(季札掛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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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계/편지 찰/걸 괘/칼 검
계찰은 사람이름으로 계찰이 칼을 걸어 놓다. 신의를 중히 여긴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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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1일(목) 11:58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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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處=史記 吳太伯世家
중국의 춘추시대 오(吳)나라에 계찰(季札)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나라 왕 수몽(壽夢)의 막내 아들로, 그가 처음으로 사신이 되어 여러 나라를 행(行)하던 중 서(徐)나라에 잠시(暫時)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서나라의 왕은 계찰의 검을 가지고 싶었으나 차마 말 할 수가 없어 고민한 것을 계찰은 느낄 수 있었다.
한편 계찰은 속으로 짐작(斟酌)은 했지만, 그때는 사신(使臣)으로 나라의 명을 수행하는 터라 그 검을 서나라 왕께 받칠 수 없었다.
그 후 사신의 일을 마치고 오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서나라의 왕을 알현(謁見)하려 했다. 왕과 계찰사이에 그 무엇도 서로가 약속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마음의 약속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나라를 도착(到着)해보니 서나라의 왕은 이미 세상(世上)을 뜬 후였다. 잠시 머무른 서나라이고 왕이었지만 마음속의 약속도 약속이다. 그래서 그 보검을 풀어 서나라 왕의 무덤 옆에 있는 나무가지에 걸어 놓고 떠났다. 수행원(隨行員)이 이상히 여겨 계찰에게 물었다.
수행원이 말하기를 ¨서나라의 왕은 이미 세상(世上)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緣由)로 저렇게 보검(寶劍)을 걸어 두는 것입니까?¨ 계찰이 말하기를 ¨나는 처음부터 그 검을 그에게 주려고 마음에 정해 두고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상대(相對)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자신(自身)의 마음을 거스릴일수가 있겠는가. 그런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는 비록 마음속으로 한 약속이지만 주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금번(今番)의 정치판에서는 상생정치(相生政治)를 하겠다고 양당(兩黨)에서는 협약서(協約書)까지 쓰고 약속을 하는 그들인데 지금은 상충정치(相衝政治)를 하고 있는 그들은 정쟁(政爭)은 끝이 보이질 않으니 참으로 암담(暗澹)할 일이다. 그들의 약속을 흐지부지 한다면 지금도 웃음 꺼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뒷날의 역사(歷史)에 기록된다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정치를 배우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거슬리고 구시대(舊時代)를 다시 연출(演出)하려고 부질없는 욕심(慾心)을 내여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추태(醜態)를 보이는 그들은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2004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또다시 60~70년대로 뒷걸음질 한다면 속상할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옛것이 좋다할지라도 정치 많은 옛날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국민을 피곤하게했고 이나라의 젊은 생명을 헌신짝처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러하듯이 음모(陰謀)와 속임수로 일관(一貫) 했든 친일적 군사정치가 그들의 계통(係統)을 유지(維持)하기 위한 호신술(護身術)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런 저런 법(法)을 만들어 국민을 피곤(疲困)하게 아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개혁, 개선) 것을 찾아야한다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공감(共感)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을 위하여 신용(信用)을 지켜야하고 특히 정치인들은 ¨상생의 정치¨를 실행한다는 국민과에 한 약속은 어떠한 일이 있다하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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