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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 잔존한 들소리(農謠)의 맥은 이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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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들소리 토속민요와 지역별 보존실태-강원도 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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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9월 09일(금) 11:2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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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아 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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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우리 선조들의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의 분류를 하자면 궁중음악이라 할 수 있는 종묘제례악, 판소리, 양반문화를 대표하는 시조경창, 귀족의 부녀자들이 즐겼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가곡, 민중 민초들이 향유했던 음악으로 분류는 농요와 민요, 농악(풍물, 풍작), 불교음악을 대표하는 범패 등을 들 수 있다.
다양하게 분류되고 각계각층의 삶을 대변하며 때로는 동반자의 역할까지 함께 했다 볼 수 있는 선조들의 음악은 구전 혹은 고서를 통해 명맥을 이어 왔으나 삶 문명의 변화와 농촌의 고령화로 우리들의 삶 현장과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데에 이의 제기를 하기는 어렵다.
이에 본보는 민중민초들과 함께 성장해 왔으며 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들소리의 소중함을 재조명하고 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들소리 토속민요의 지역별 보존실태(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전라도)를 권역별로 지면을 통해 점검해 본다.
들소리(농요)의 구조는 노래선율과 사설로 나눌 수 있으며, 사설은 시대와 지역적 특성에 의해서 가변적 성향이 강하지만, 노래선율은 쉽게 변하지 않고 음악 미학적 가치 또한 내포하고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다 할 수 있다.
농요의 사설은 대부분 농사일의 시기에 따라 자연현상과 농사에 관련된 일상사, 농부의 삶의 애환, 효친사상과 우리민족 특유의 풍자해학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강원도 지방의 들소리(農謠)와 토속민요를 들여다 보기위해 속초시, 강릉시, 횡성군, 양구군 등 4개 시,군 문화원과 보존회 등 관련단체들을 찾아 현장의 소리를 담았다. 강원도 권역은 지면 관계로 상(횡성군, 양구군) 하(속초시, 강릉시)로 구성하여 게재한다. -편집자 주(註)
강원 속초시 도문농요(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0호)
도문농요는 신목과 서낭대를 앞세우고 입장하여 신목을 향해 지역 주민들이 모여 절을 하며 마을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서낭굿으로 첫째마당을 연다. 한스레(소 두 마리가 끄는 스레)를 끌고 논을 가는 것으로 둘째마당 논 삶는 소리(소모는 소리라고도 함.)가 이어지고, 모심는 소리와 함께 모를 다 심고 나서 한바탕 노는 마당으로 셋째 마당이 정리된다.
초벌 김과 두벌 김, 세벌(세번째) 김매기가 넷째마당에서 펼쳐지며, 파대(논밭의 새를 쫓기 위한 매끼. 집을 꼬아 만든 줄 끝에 삼, 말총, 짐승 가죽 따위를 매어 만든 것으로 둘러서 치면 총소리와 같은 소리가 난다.)를 치면서 그 소리로 새를 쫓는 장면이 다섯째 마당에서 전개된다.
여섯째 마당은 벼를 베어서 묶으며, 마댕이(벼를 털어 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말함.)와 볏가리(벼를 베어서 말린 후 탈곡하지 않은 상태로 볏단을 원뿔형으로 차곡차곡 쌓은 더미) 지우는 소리로 도문농요는 마무리 된다. 도문농요(農謠)는 김을 맬 때 부르는 소리로서 다소 정적이며 구성진 가락을 지니고 있으며, 시조 창법과 유사하지만 설악산 신흥사의 불교문화권역에 속한 도문동의지리적 위치에 따라 자연적으로 염불이나 범패소리의 영향이 아닐까 짐작된다. 메나리 사설은 김을 매는 하루의 일과를 시간의 흐름에 따르게 되는데 처음에는 김매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이후 점심때가 되니 점심 참을 먹자 하는 내용이 이어지고, 그 외 삶의 여러 모습들도 그 가사 속에 담는다. 김매기 소리는 메나리와 동강소리(농사할 때 부르는 소리. 주로 빠르고 경쾌한 곡조임.)로 구성된다.
나른한 오후에는 좀더 호흡이 짧은 동강소리를 하며, 점심참에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므로 김을 세게 매주기 위한 메나리보다는 빠르고 경쾌한 가락으로 동강소리를 부른다.
속초도문농요는 도문동이라는 특수한 불교문화권역의 농촌에서 불려졌으며, 일제강점기 도천면 시절에도 불려서 ‘도천메나리’라는 이름으로도 전승되었다. 도문농요가 삶의 소리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은 농경문화가 차츰 사라져가는 오늘날에 민속 문화의 전승과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속초도문농요는 지역에서 꾸준히 전승해온 지역주민과 속초문화원 등의 문화단체가 함께 노력한 결과물로 지난 1991년 속초민속조사를 통해 도문농요의 가사와 전승실태 조사가 처음 이뤄졌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3차례에 걸쳐 조사하여 도문농요 채록, 가창자의 음을 확보하여 보존과 전승 작업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으며 문화관련 단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행정의 뒷받침 속에 들소리 전수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2007년 강원도 무형문화재 2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에는 속초도문농요 보존회(회장 오순석)가 결성되었고, 같은 해 문화재 보유단체로 지정받아 향토민속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매년 2차례 지역학생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발표회를 가지고 있다.
강원 강릉학산오독떼기(강원도 무형문화재 제5호)
강릉학산 오독떼기는 한 해 논농사의 과정에서 부르는 현지 농요(農謠)로 농사작업 순서에 따라 모내기소리인(자진아라리), 논매기소리인(오독떼기, 꺽음 오독떼기, 잡가, 사리랑, 담성가, 싸대), 벼 베기소리인(불림소리), 타작소리인(마댕이소리)로 구성됐다.
강릉지방에서는 모 심을 때 강원도 전역에 널리 전승되는 아라리 소리의 하나인 ‘자진(빠르다는 뜻)아라리’를 부른다. 모를 심으며 자진아라리를 부르는 것은 그만큼 손을 빠르게 놀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자진아라리의 곡조는 전형적인 메나리토리(상행과 하행선율이 다르다. 상행시에는 미라도레미, 하행시에는 미레도라솔미의 5음계로 솔은 주로 경과음으로 사용되는 음조직.)로 되었다.
노래는 메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로 구성됐으며, 메기는 부분은 독창으로 곡조와 사설이 가변적이고, 여럿이 함께 노래하는 받는 소리는 “아리아리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라리 고개를 넘어간다.”를 후렴으로 반복하여 부른다.
오독떼기는 논맬 때 부르는 김매기소리로 모를 낸 후 20일쯤 지나면 ‘아이 김매기(초벌)’를 하는데 이때 손으로 풀을 뽑는다. 두벌 김매기는 그로부터 20일쯤 지나서 하고 마지막 세벌 김매기는 다시 20일쯤 지나서 했다.
보통 아침 8시경에 일을 시작하며 10시경에 첫 참이 나오고, 오후에는 3시-4시경에 새참이 나왔다고 한다.
학산 마을에서는 논을 맬 때 ‘들계(두레)’를 결성하여 공동작업으로 김을 맸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농요 중에서 가장 다양하며 강릉지방에서는 오독떼기와 꺽음 오독떼기(오독떼기의 변주곡), 잡가, 사리랑, 담성가 등을 부르며 마칠 때는 ‘싸대’를 불러 일을 마무리 한다.
잡가의 가창방법 중에서 특이한 것은 ‘꺽음 오독떼기’처럼 가성(속소리)을 쓴다는 점이다. 후렴의 앞부분은 대체로 뜻이 없는 입타령(母音唱)으로 일관하는데, 그 앞부분에서 고음에 가성을 사용하여 노래에 변화를 주고 있다.
사리랑도 잡가와 더불어 김매기소리의 하나이다.
담성가는 논매기에 섞어 부르는 노래의 하나이다. ‘담성’이라는 제목은 후렴구에서 따온 것으로, ‘듬성듬성’ 과 같은 뜻으로 보인다.
싸대는 논매기 작업의 마지막에 부르는 소리로 논의 지형에 따라 모양이 균일하지 않은 관계로 일꾼들이 둥글게 모여드는 모양이 마치 쌈을 싸는 듯하다하여 이를 ‘쌈싸기’라고도 한다.
불림(높은 소리로 외쳐 부른다는 의미.)소리는 논에서 벼를 베어 묶으며 부르는 노래로 여럿이 일하면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부른다. 이 소리는 앞소리와 뒷소리의 구별이 없으며, 자유로운 리듬으로 노래하고 노래 한 절은 벼 한 단을 베어 묶는 작업과 일치한다.
노랫말의 내용은 “에 이에”처럼 모음창으로 노래하다가 “한 단 묶었네”로 마친다. 다른 사람이 노래 하는 동안 “잘 한다.” 또는 “잘 빈다.(벤다)”와 같이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마댕이소리(타작소리)는 도리깨질을 하며 부르는 전형적인 노동요로, 앞소리꾼이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받는다.
학산농요는 1968년 언론매체와 단오제 행사에 출현하면서 알려졌으며, 1981년 강릉문화원 초청으로 발표회기를 가졌다.
이에 학산마을에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인 농요의 전승과 보급을 위하여 1987년 5월 보존회를 결성하여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수교육을 활발하게 펼쳤다.
*오독떼기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의 설이 있다.
첫째, 옛 신라 때 화랑의 무리들이 부르던 노래가 곡조만 살아서 전하는 것이리라는 설.
둘째,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독(五瀆)을 떼기(開拓)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오’는 신성하고 고귀하다는 뜻이고, ‘들떼기’는 들판을 개간한다는 뜻에서 생겼다는 설.
넷째, 다섯 번을 꺽어 부르기 때문에 오독떼기라 했다는 설과 다섯 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곡떼기’라 하던 것이 오독떼기로 정착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 자문 김기곤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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