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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항(催 恒)선생 1409~14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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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27일(수) 12:02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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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사업에 공헌이 큰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어문(語文) 학자이다.
본관은 삭녕(朔寧)이고 자(字)는 정부(貞父)요 호는 태허정(太虛亭) 동량(㠉梁)이다. 중영외정 사유(士柔)의 아들이며 서거정(徐居正)의 자부(姉夫)이다.
1434년(세종 6)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고 이해에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박팽년(朴彭年), 신숙주(辛叔舟), 성삼문(成三問) 등과 같이 훈민정음 창제에 동참하였고, 1444년 집현전 교리로서 오례의주(五禮義注)를 상정(詳定)하는 일에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박팽년, 신숙주, 이 개 등과 함께 운회(韻會)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1445년 집현전 응교로서 용비어천가를 짓는 일에 동참하고 이어 동국정운, 훈민정음, 해레 등을 찬진(簒進)하였다. 1447년 문과 중시에 5등으로 입격하여 집현전 직제학 겸 세자우보덕에 임명되었다.
그 당시 세종대왕은 세자(문종)로 하여금 섭정하게 하였는데 이때 서연관으로서 정치에 보좌함이 컸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였고 같은 해 언관(言官)으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해 7월 다시 집현전으로 돌아와 부제학이 되었고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주석하는 일을 맡았으며 고려사의 열전을 집필하였다.
1452년 2월 세종실록 편찬때는 수찬관으로 참여하였다.
이어 동부승지가 되어 1453년(단종 1)계유정란때 협찬한 공이있다하여 수충위사 협찬 정난공신(輸忠衛社 協贊 靖難功臣) 1등에 녹훈되고 도승지가 되었다.
이해 12월에 이조참판에 임명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454년 10월에는 공신연곡(功臣宴曲) 4장을 지어올렸으며 1455년 정난공신 1등의 교서가 내려졌다. 그해 2월 대사헌이 되고 6월에 세조가 즉위하면서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이어 7월에 서연외 우부빈객이 되고 그뒤 호조참판, 이조참판, 형조판서, 공조판서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세조는 즉위한 직후 육전상정소(六典詳定所)를 설치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는데 이때 그는 김국광(金國光), 한계희(韓繼禧) 등과 함께 육전상정관(六典詳定官)으로 임명되었고 1458년(세조 4)에 신육전(新六典)의 초안을 작성하여 올렸다.
그해 부친상을 당하였으나 왕명으로 기복되어 다음해에 중추원사, 세자빈객 겸 성균관 대사성이 되고 1460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1461년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1463년 의정부 우참찬이되고 1464년 9월에 왕명으로 병장설주(兵將說註)를 산정(刪定)하였다. 이듬해 좌참찬 겸 세자이사(世子貳師)가 되었고 사서오경의 구결(口訣)을 바로잡는 일에 동참하였다.
1466년에 판병조사(判兵曺使)로 임명되자 그는 군사관계는 적임이 아니라고 간절히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467년 4월 좌찬성, 5월에 우의정, 7월에 좌의정, 9월에 영의정이 되었다.
1469년(예종 즉위년) 9월 신숙주, 한명회, 김국광 등과 함께 원상이 되었으며 1469년 경국대전 상정소 제조(提調)를 겸하여 경국대전을 찬진하였고 이어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찬수하였다.
1470년(성종 1) 부원군(府院君)에 봉해졌고 역대제왕후비명감(歷代帝王后妃明鑑)을 찬진하였다. 1471년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弘化佐理功臣) 1등에 녹훈되고 다시 좌의정이 되었으나 1474년 4월에 죽었다. 그는 18년동안 집현전 관원으로 있으면서 경연관, 지제교로서 뿐만 아니라 유교적인 의례제도(儀禮制度)를 마련하기 위한 고제연구와 각종 편찬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서거정(徐居正)이 찬한 비명 필원잡기(筆苑雜記), 김 육(金 堉)이 지은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등에서 볼 수 있거니와 그의 성품(性稟)은 겸공(謙恭), 간정(簡靜), 단개(端介), 무화(無華), 공정(公正)하고 정관위좌(正冠危坐)하며 침착심중 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청백하여 재산을 탐하지 않으며 40년간 벼슬하였으나 한번도 탄핵을 받지 않았다고 극구 칭송하고 있다.
다만 흠이 있다면 문형(文衡)에 있던 사람이 의정으로 임명되면 반드시 문형직을 사양하는 것이 상예였는데 그는 오히려 이를 사양하지 않고 겸하였던 일과 집안 자여손 혼사(婚事)에 있어서 인품으로 보지 않고 재산만을 보고 사위와 며느리를 얻는 일이라고 하였다.
저서로는 태허정집(太虛亭集),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가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기념행사는 다음과 같다. 10월 9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태허정 묘역 일원에서 태허정 최 항 선생 추모제향을 광주문화원 주최로 열리며, 10월 12일 경기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실에서 광주문화원 주관으로 훈민정음 창제와 21세기 한글발전의 패러다임 연구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움, 15일에는 한글사랑을 주제로 한 문예작품대회인 한글사랑 백일장이 남한산성 일원에서, 15일 기념학술강연이 대우학술재단에서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주최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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