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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이 최고야! 동계면 어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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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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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5월 07일(토) 10:10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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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동계면 어치리(於峙里)는 1914년 이전에 순창군 아동방에 속했다가 행정개편에 의거 남원 영계방과 순창 아동방을 합하여 동계면에 속하게 되었다.
어치리는 해발 630m 되는 용골산을 서편으로 하고 용골산 한 가닥의 산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있는 산맥의 중턱에 남동쪽을 향하여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느제ᆞ점촌ᆞ돌무덤ᆞ놋점ᆞ멀테의 5개 마을을 통칭하였는데 지금은 멀테가 무인촌이 되어 어치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젊은이의 도시 집중화로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대중을 이루어 살고 있다.
구전에 의하면 200여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아 최초로 서 씨, 김 씨, 고 씨 3성 씨가 살았다 하나 그 근거는 찾을 길이 없다.
이 마을은 산간오지마을로 산 높고 물이 맑아 시원하고 청강수가 흐르는 소하천이 섬진강 상류의 구미리 종호에 이르고 있으며, 인심이 후하고 예의가 밝아 언제나 웃어른을 공경하며, 어린이에게는 사랑을 베풀 줄 아는 훌륭한 마을임과 동시에 협동심이 강하고 도적이 없는 평온한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집마다 밖의 문이 없는 특수한 마을이다.
물이 좋고 공기가 맑아 100세에 이르는 어르신들이 어느 마을보다 많은 마을이다. 산간이지만 마을 앞들은 경리정리가 반듯반듯하게 잘 되어 있는 마을이다.
어느 마을보다 깨끗한 마을에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는 젊은 이장 양연섭(39)이 있다.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 양연섭 이장과 임채문 지도자, 황금숙 부녀회장이 마을의 구심체로 서로 소통하고 협심하여 행복한 마을을 가꾸어 가고 있다.
마을호수 25호에 주민 80여명이 오순도순 한 식구와 같이 정답게 살아가고 있는 어치리에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논농사와, 밭농사, 매실, 밤 그리고 오디와 축산 등 복합 영농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청청 농산물로 도시인의 구미에 맞아 칭찬을 받고 있다.
산골이지만 이제는 교통이 좋아져 생산된 농산물은 도시와 직거래로 많은 소득을 올려 윤택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각광을 받는 어치리가 되었다.
마을 공동체인 회관과 경로당을 겸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회관에는 항상 마을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 하는 곳으로 언제나 화기애애한 훈풍 속에 마을 어르신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데도 양연섭 이장과 마을 구심체인 지도자, 그리고 부녀회장의 숨은 노력이 있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활발한 운영 속에는 출향인들의 정감 넘치는 도움과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있어 항시 웃음 속에서 운영이 되니 이웃 마을들의 칭찬이 대단하다.
이곳 어치리에서 종호 섬진강 쪽으로 할아버지 돌탑과 할머니 돌탑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어 항상 든든하다.
또 지난날에는 어치리 건너편 놋점에서 생산되는 놋 밥그릇은 어느 곳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월등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곳에서 생산된 징, 꽹과리는 은은하기 그지없어 전국 방방곡곡으로 팔려 나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어치리에 앞으로도 무궁한 발전이 있을 거라 믿으며, 청정지역 소득원이 많으니 잘사는 마을로 거듭날 것이다.
또 이곳 어치리에는 용골산이 뒤에 있어 많은 역사와 설화가 담겨진 곳이기에 하나 열거해 보면 먼저 신선바위(神仙岩)이다. 용골산 상봉에 있는 바위로서 크기는 사방각 1m, 높이 50cm의 크기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하늘에서 네명의 신선이 하강하여 바둑을 두었다는 바위인데 6ᆞ25 사변 당시 작전 지역으로 격전지가 되어 반격포탄에 일부 파손되어 옛 원형을 복구할 수가 없어 아쉬움이 크다.
또 용골산에는 아흔아홉굴(九十九窟)과 이당지굴, 덴데기굴이 있다.
용골산 400m지점에 이 굴이 있다. 이 굴 입구의 직경은 250cm가 되고 이를 통하여 5m 정도 들어가면 2단계 굴이 생기고 그곳에서 다시 5m 들어가면 3단계 굴이 나오며, 굴의 형태와 크기가 각각 달리하여 99단계가 있는 긴 굴이라 한다. 그 굴속에는 희귀식물과 생물이 있어 학술연구 가치가 있다고 보며 굴 입구에서 불을 태우면 그 연기가 반대 방향 근 십리 밖의 돌무덤(石田)마을 뒷산에서 연기가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당지 굴은 용골산 300m 지점에 크기는 사방이 5m가량 되고 높이도 5m되는 굴인데 이곳에서 이당지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이당지 굴이라 하고 굴속은 향기 좋고 깨끗한 청강수가 흐르고 있다 한다.
또 덴데기굴은 놋점 뒤 감투봉에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에 남편은 의병으로 출전하고 그 부인은 왜병들의 만행을 피하여 이 굴속으로 숨게 되었다.
굴속으로 피하면서 기르는 개와 베틀을 가져갔다 어느날 굴 속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을 때에 개가 산 밑의 왜병을 보고 “멍멍”하고 짖어댔다. 왜병들은 감투봉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불을 질렀다.
그 불에 의해서 산이 전소되면서 부인은 화상을 입었다 하여 그 굴을 덴데기굴이라고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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