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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이 최고야! 복흥면 화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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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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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07일(목) 11:5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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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면 화양리는 정읍 내장산 국립공원 중심부에 솟아오른 신선봉(神仙峰, 763m)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온 산맥이 화개산(華蓋山, 630m)이다. 이 산에서 동쪽으로 내려와 개정되어 남쪽으로 형성된 마을이 봉서리와 양림마을이다.
이 두 마을을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병합하여 화양리(華陽里)라 하였다.
봉서리에서 옥정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를 백토고개라 부른다. 이곳에서 나오는 백토는 고령토로 옛 고려시대에 도요지가 있었던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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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이 도요지에서 거대한 마을 도자기(청자)로 만들어 당산(堂山) 입구에 세워놓고 청자로 만든 제기로 매년 제사를 지냈는데 청자로 만든 말과 제기를 일본인들이 약탈하여 갔다고 한다.
지금도 대통령궁 앞밭에는 도자기 조각이 군데군데 쌓여 있고 도요지 터에는 묘가 쓰여 있어 옛날의 도요지는 온데간데없다.
이 마을은 600여 년 전 고려 말기에 행주 기씨(幸州奇氏)가 와서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곳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어 따뜻한 곳이라 화양리라 불러오게 되었다. 191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한 개의 법정이로 지정하였다.
이 마을은 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마을 뒷산 산재동에서 매년 음력 2월 1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재난과 질병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내왔다고 하나 현재는 중단 상태이다.
화양리는 주위 산세가 좋아 산세만큼이나 청정지역으로 공기가 맑고 주민 모두가 순박하여 마을 주민들이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다.
다른 마을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아 농사일과 청정 농산물을 생산하여 농업 소득을 높여 살기 좋은 마을로 탈바꿈 해 놓았다.
마을을 위해 헌신 노력하고 계시는 박창식 이장님과 성용운 지도자님, 박봉애 부녀회장님의 훌륭한 지도력에 마을이 날로 변해가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삶도 윤택하여 어느 마을보다 다복한 마을로 소문이 나 있다.
마을 호수 20여 호에 50여명의 주민으로 구성된 화양리는 타 마을에 비해 젊은 노동력이 좋아 모든 일을 잘 처리하고 있고, 농업 소득 또한 높아 타 부락에서 부러움을 산 마을이다.
청정지역이다 보니 산과 들 모든 곳이 소득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 모두가 부지런하게 일을 하며 살고 있는 마을이다.
화양리에도 공동체 마을 회관과 경로당을 병행하여 활용하고 있다. 마을 경로당은 항시 점심과 저녁을 공동으로 취사하여 한 가족처럼 정답게 식사를 하고 있으며 이곳도 마을 구심체인 박창식 이장과, 성용운 지도자, 이봉애 부녀회장의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고향 떠난 출향인들도 타향에서 항상 고향을 생각하여 열심히 살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 고향을 찾을 때면 큰 정을 쏟고 가는 마음 따뜻한 일들이 많다고 한다.
마을의 구심체인 박창식 이장, 성용운 지도자, 박봉애 부녀회장께 언제나 건강하시길 빌며 파이팅을 외칩니다.
예부터 도요지로 널리 알려져 이곳 주위에 얽힌 설화중 “도적굴과 여인의 슬기”에 대해 기록하고자 한다.
복흥면과 정읍의 경계는 산 능선으로 경계이기에 이 산 능선에는 화양리 뒷산과 추령도 있다.
옛날에 인적이 드문 고갯길이기에 도적들이 지나가는 행인들의 돈이나 물건을 털어 먹고 사는 도적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골짜기로 도적굴이라 한다.
이 골짜기에 모여든 수 십 명의 도적들은 여인들도 잡아 마누라로 삼고, 가축 등을 도적질 하며 살면서 혹여 인근 주민들이 관아에 알려 도적들의 행적이나 도적굴이 발각 될까봐 마을 주민들의 사립문에 소고기를 걸어놓고 다음날 밤 소고기가 없으면 도적들과 동조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았다. 그래서 인근 주민들이 도적 굴의 도적떼가 모여들어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니 자연히 소문이 나게 되고 관아에서도 알게 되었다. 관아에서 이곳을 소탕하기 위하여 포도청과 협동으로 도적 굴을 급습하여 도적떼를 소탕하였고, 도적들의 집을 수색하였는데 소고기를 얻어먹은 사람들의 명단이 나왔다. 포도청에서는 이 명단에 의하여 전부 체포를 하였지만 그중 억울하게 체포되어 도적의 누명을 쓴 주민도 있었다.
그중 하 모라는 사람은 도적은 아니지만 소고기를 얻어먹었기에 도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포졸들이 하모씨의 집을 급습하였는데 여인이 그 사실을 알고 남편을 홋 이불로 덮어놓고 머리를 풀어 제치고 대성통곡을 하니 포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돌아 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하씨는 여인 덕에 체포되지 않고 포도청의 소탕은 끝이 났다.
그 후 그 여인의 기지로 순간을 모면하고 살았다고 하여 이 사람을 “큰 도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큰 도적놈이라고 하니 불안하여 살 수 없어 끝내는 멀리 떠나버렸다는 설화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 골짜기를 도적굴이라 전하여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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