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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최고야 - 풍산면 향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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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문화원장 김기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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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3월 18일(금) 11:1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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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순창의 기두봉 광덕산이 전전 박환하여 설산이 되고 설산에서 동북방향으로 전전하여 뻗어내려 오다가 섬진강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우뚝 솟은 산이 옥출산(玉出山, 276.9m)으로 순창의 수구 산이며 명산이다.
이 산에서 다시 더 가고자 남쪽으로 돌아서 내려가 보았으나 섬진강이 이 산자락을 휘감고 돌아가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머무르니 이곳에 취락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이 마을을 향가리(香佳里)라 하였다.
지금부터 약 350여 년 전 진주 강 씨가 터를 잡았으며 앞에는 섬진강물이 흐르고 뒤로는 아름다운 향기가 흘러내려 행가리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향가리라 하였다.
이 마을 앞 천변은 옛날에는 모래사장이 너무도 아름답고 흐르는 강물이 너무도 맑아 아침저녁이면 맑은 물 위로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올라 보는 이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굽이쳐 흐르는 파란 용소에서는 저녁노을이 질 때쯤 각종 민물고기들이 튀어 올라 첨벙첨벙하는 소리가 귓전을 스쳐가곤 했다.
또 이곳은 임진왜란 말기 일본군이 남원 금지에서 광주까지 기차선로를 가설하려다 해방이 된 바람에 중도에 그만 두고 파란 섬진강 위에 철다리만 7~8개 우뚝 서 있어 그 옛날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물이 맑고 물살이 잔잔해 민물고기가 많아 낚시꾼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향가리는 조그마한 마을로 가구 수 17호에 주민 37명이 한 가족처럼, 형제처럼 오순도순 살아가는 곳이다.
향가마을을 대표하고 마을의 궂은 일, 좋은 일을 도맡아서 해결하시고 있는 강홍기(69) 이장과, 성명순 부녀회장이 계시기에 마을은 언제나 평온하고 든든하다.
여느 마을과 같이 마을 공동체인 회관과 경로당을 겸해서 운영을 하고 있다.
마을 회관과, 경로당을 운영하는데도 부지런한 강홍기 이장과 성명순 부녀회장이 언제나 앞장서며 뒷바라지를 다 하고 계신다.
향가리는 비록 마을은 작지만 교육열이 대단히 높아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타향에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혹은 명절이나 고향 방문 시 모두가 빠짐없이 경로당을 찾아 흐뭇한 정을 남기고 가니 늙으신 부모님들과 두터운 교감이 이루어져 참 아름다운 미덕을 자랑하고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움과 맑은 물이 자랑인 이곳 향가리도 예부터 역사와 설화가 많은 마을이다.
이곳의 “용소와 월계정(龍沼와 月溪亭)”에 대한 설화를 기록하고자 한다.
향가마을 앞 섬진강에는 용소 또는 용연(龍淵)이라 부르는 소가 있는데 이곳에 살았던 용이 승천하다가 못 오르고 떨어졌다는 설화와 용소 뒤에 있었던 정자에 얽힌 설화가 전하여지고 있다.
용(龍)은 오늘날 상상의 동물로 여기고 있으나 옛사람들은 실존 동물로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옛날에 있었던 동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거대한 용의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여하튼 동서양이 용의 모양을 그리는 것을 보면 용은 길조의 상징이며 이 세상의 최고의 길조로 생각한다.
그래서 군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하고 왕이 앉은 의자를 용상이라 한다.
꿈도 용꿈을 최상 길몽으로 생각할 정도로 길조인 것이다.
이 고장 향가 용소에도 옛날에 용이 살았는데 때를 만나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뇌성병력은 천지를 진동하고 용소에서는 오색찬란한 용이 비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때마침 향가리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가다가 보니 하늘로 솟아오른 용을 보고 놀라 엉겁결에 “용이 오른다!”라고 큰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그러자 야녀자의 소리에 힘을 잃은 용은 승천하지 못하고 소(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예부터 아녀자의 말을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이 용소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사는 용소라는 말과 이곳에 날이 가물 때에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한발이 시하면 관가에서 이 용소에 기우제를 지냈고, 정월에 용소 부근에 모래언덕이 생기면 풍년이 들고 생기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용소의 주변은 경관이 대단하여 풍류객들이 찾아 뱃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곳이다.
그래서 김연(金演)이란 사람이 용소 위에 정자를 짓고 정자의 이름을 자기의 호(號)를 따서 월계정(月溪亭)이라 하였다.
이곳 월계정과 용소는 많은 관원들의 놀이터로 풍류객, 기생들로 많은 일화를 남겼던 곳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로 지금은 정자도 용소도 옛 이야기일 뿐 흔적은 없고 섬진강은 유유히 용소를 감돌아 내려가고 있다.
향가 뒤 옥출산 또한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이렇게 역사와 설화가 있는 아름다운 향가리가 영원히 평온하게 행복하길 기원하며, 더욱더 좋은 마을로 승승장구하시기 위해 많은 노력 해 주시라고 강홍기 이장께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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