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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려면 얼마나 많은 비바람이 있는가! 하물며 화중선(하늘의꽃)임에야

이화중선(李花中仙) 명창(名唱) 일대기(一代記)

2011년 01월 20일(목) 12:26 [순창신문]

 

전북 순창군 적성면 임동마을 매미터
하루 종일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그 소리가 매미우는 소리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매미터. 이화중선 명창이 이곳에서 소리를 배웠다 하여 더욱 유명해진 매미터이다.
이화중선(1898~1943) 명창은 부산 출신으로 몹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랐다.

ⓒ 순창신문

17세 때 전북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 박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길쌈하며 농사를 짓고 사는 촌부의 아내로 살았다.
그런 어느날 호곡리 홈실에 유명한 협률사가 들어와 포장굿을 3일동안 공연하게 되었다.
시골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구경꺼리라 호곡리 주민은 물론 주변의 마을 사람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들어 구경을 하는데 그중에는 이화중선도 동네 아이들과 굿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가무극과 창근 춘향전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구슬프고 애절한 춘향이와 이도령의 이별과 암행어사 출도한 후에 춘향이를 감싸주는 사랑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난생처음 들어본 자지러진 풍악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고 출연한 소리 광대와 기생들의 토막극 춘향전에 넋을 잃은 화중선은 그날 밤 자기 집으로 걸어가면서 어쩐지 자기 자신이 춘향이와 비교가 되면서 농부의 아내로서 일생을 마치는 것이 너무나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3일 동안 계속되는 협률사 공연을 매일밤 한번도 빠지지 않고 구경하는 동안에 마음만 심하게 요동쳤다.
촌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어린 아낙으로서 단원들의 화려한 의상과 곱게 화장한 분 내음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공연 단원들의 의상은 마치 선관선녀(仙官仙女)와 같이 허영심이 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창극 춘향전의 감동과 충격으로 자기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음악적 재질이 일시에 싹트게 된 것이다.
그녀도 못 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기가 소리를 배워서 사람들 앞에서 부르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얼마나 우러러 보면서 부러워할까 하는 허영심까지 생겨나 공상에 빠져들 때 협률사는 마을을 떠난다.
그러나 호곡리 홈실 박씨 가문으로 출가한 이화중선은 마음뿐이었다. 소위 양반 가문에서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밤마다 장탄식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마다 번민에 사로잡혀 미칠 것 같은 심사를 표현 할 수도 없었다.
몇 일 동안 굿 보는 생각에 빠져들어 물 길러 갈 때나, 밥을 지을 때나 굿판에서 들었던 소리를 부지깽이 장단으로 장단을 치면서 소리를 중얼대며 잠을 잘 때도 오직 협률사 생각에 사로잡혀 공상이 커지면서 먹고 자는 것도 불안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몇일 동안 몹시 고민하다가 결국은 소리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결심을 한 끝에 가문도, 남편도, 체면도 던져버리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빠져 나와 아무 눈에 띄지 않는 야밤에 홈실을 빠져나와 남원읍을 향해서 도망치게 된 것이다.
홈실에서 남원읍까지는 20리 밖에 안 되는 길이지만 밤길이라 고개를 넘고 시냇물을 건너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어려서 듣던 말로 노래는 단골집 재인에게 배운다는 말을 들은 지라 남원읍에 도착한 그는 재인 집을 찾아가기로 하여 이곳저곳을 헤매는 중에 어떤 여인의 도움으로 단골(무당)의 집에 찾아든다.
그 후 이화중선은 그곳에서 무당이 가르쳐주는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무녀는 이화중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느 주색가에게 몸을 팔도록 끈덕지게 졸라댔다.
그당시 남원읍에 거주하는 장득주는 명창은 아니었으나 본래 명창의 문하에서 이수 전공하였던 만큼 품격이 높아 남원에서는 일류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이화중선은 어떻게 해서든 장득주의 문하로 들어가 소리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무녀(巫女)의 끈덕진 방해로 뜻을 이룰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장득주의 동생인 장혁주가 아직 총각이란 소식을 듣고 이화중선은 장혁주와 부부관계를 맺는 것이 판소리를 배우는 빠른 길임을 생각하고 자청하여 장혁주를 만나고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무녀는 방해할 수가 없게 되었고 장득주도 자기의 제수라는 인연에서 정성껏 가르치게 된 것이다.
이화중선은 타고난 재능과 열성으로 수 년 만에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세 마당을 습득하였다.
그 후 이화중선은 장혁주와 작별하고 어느 부자의 소실이 되어 활동하면서 억척스레 사오백 석의 재산을 모았고, 그동안 홈실 박씨 집에서는 소문을 듣고 야단이 나 찾기에 혈안이 되었으나 이미 깨진 사발이라 더 이상 없었던 일로 하고 화중선도 남원읍에서는 살 수가 없게 됨으로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1920년 서울로 올라와 한성권번에 적을 두고 인력거를 타게 된다.
당시 소리선생으론 당대 국창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등의 학습을 받게 된 이화중선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는 당시 한성권번의 여류명창 김해, 김녹주, 남원출신 배설향, 김추월, 심금홍등 같은 선후배를 젖히고 당시 서울 장안의 명창의 패권을 거머쥐고 내노라는 풍류랑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화중선은 아무리 어려운 대목도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불러 청중을 매혹시켰으나, 오히러 거침없이 쉽게 부르는 것이 감동을 덜 주는 단점이 되기도 하였다.
판소리 대가들과 대동 가극단을 조직하여 지방 공연을 많이 하였고, 일본 공연도 하였는데 1943년 재일 교포 위문 공연차 일본으로 건너가 활약하다가 이국 땅 일본 바다에서 수중고혼이 되었다.
그녀의 소장이 음반에 많이 취입되었으며 특장 부분은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였다.

ⓒ 순창신문


◦ 풍수지리적으로 보는 매미터
순창군 적성면 임동리 매미터(집터)는 내 외룡이 겹겹으로 둘서 싸고 생룡이 힘차게 뻗어 내려오면서 청룡 백호가 근접되고 안산은 노적봉과 필봉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매미터는 조선시대 한때를 풍미했던 당대 훌륭한 소리꾼들이 배출되었던 곳이다.
배출된 인물로 장득주, 장작영은 판소리를 가르쳤고, 무당이면서 소리꾼인 장덕진, 장구피리, 칼춤, 소리꾼인 장성문, 줄타기 명수 장만길, 소리꾼 장혁주, 장자백 칠 형제가 이 터에서 살았고, 이화중선도 이 터에서 소리를 배워 당대 명창으로 탄생하였음은 우리군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곳 매미터에는 집 두채만 덩그렇게 남아 있지만 이곳을 전국의 판소리를 배우는 학생은 물론 판소리를 아끼는 동호인들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판소리 연구회관, 판소리 기념동산, 판소리 기념 소리 북, 판소리 자료 전시장을 갖추어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부활시켜 이화중선과 같은 훌륭한 인물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였으면 한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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