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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발길따라 칠십리

2010년 10월 11일(월) 15:21 [순창신문]

 

ⓒ 순창신문

유등면
유등면 중섬 나룻터에서 투망 던져 피라미 잡아 매운탕 안주에 막걸리 한잔 기울이던 일이 옛날의 추억으로 남는다. 이제는 이곳에 순창과 남원을 육로로 통행하도록 대풍교가 가설되면서 여울목 주변에서 다슬기 잡는 아낙네와 낚시 좋아하는 강태공들이 간간히 보이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300여미터 올라가면 순창 경천과 합수한 곳에는 순 모래가 강바닥을 이루어 제첩이 모래 속에 구멍을 뚫고 숨어 있어 제첩잡기에 좋은 곳이었으며 봄철에는 은어떼가 몰려 오리 몰아 투망 쳐 은어를 한 마대씩 잡는 곳이었는데 섬진댐 건설로 강물이 적어 잡초만 무성하다. 좀더 상류로 올라가면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 놓은 어살이 나온다. 이곳에서 가을이 되면 첫 서리가 내릴 무렵 어살에 앉아 떠내려오는 민물게를 한 바구니씩 잡았다고 한다. 지금은 6ㆍ25전쟁이후 큰 홍수로 어살이 없어지고 최근에 어살을 복원하여 놓았다.
화탄 나룻터는 옛날 줄 당겨 나룻배로 강을 건너 남원과 순창읍을 오가던 교통수단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자취가 없고 매운탕집이 성업을 하고 있어 각지에서 입소문 듣고 찾아와 먹거리 명소가 되었다. 유등면은 섬진강변에 서린 문화유적과 전설이 많기로 유명하다.<편집자 주>

ⓒ 순창신문

어초정(魚樵亭)
구마등 산기슭에 자리한 이정자는 어정 임종주와 초봉 임한주 형제가 1929년에 지은 것으로 이들 호의 첫글자를 따서 어초정이라 이름하였다. 현판은 고종 임금의 아들인 이강 공의 친필이다. 어초정 주변 바위에는 정자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적성강에 노니는 은어를 잡는다는 뜻의 집정조대(集亭釣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순창과 인근 지역의 유림들이 이 어초정에 모여 친목을 다지며 시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 순창신문

온진정(蘊眞亭)
온진정은 우리 선조 사부상서공의 별장이다. 동국여지승람과 여지지에 사실이 모두 등재되었으나 연대가 차츰 멀어짐에 기둥과 들보가 다 무너지고 다만 주초만 남았으니 중건하기를 도모한지 오래 되었다.
내가 다섯차례나 주와 부를 맡아 다스렸으나 능히 온진정을 중건하지 못하였거늘 종제 경유가 가난한 선비로써 재목과 기와를 마련하고 3년에 걸쳐 완성하니 동서남으로 현헌방을 만들고 그 북쪽과 중앙에 무릇 십이간을 세웠으니 그 모양 바라봄에 나는 듯 하다. 어질다. 우리 동생이여! 비단 선조를 사모한 정성이 있을 뿐 만 아니라 그 주간한 재주는 족히 쓸만 하다.
가장을 열람하여 정자의 현판을 얻었으니 전에 각자된 삼자가 크게 써 있고 좌측에 병신중추에 세웠다고 써 있으니 드디어 그 현판을 새롭게 하여 남쪽 난간에 걸었으니 당시가 병신년으로 이에 감회가 깊다.
정자는 순창군 동쪽 십리거리 시내 언덕 위에 있으니 돌이 쌓여 대를 이루었고 대아래 큰 바위가 울퉁불퉁 벌려 있으며 옅은 물은 동으로 흘러 천여보의 거리 대강이다. 물 가운데 바위 위에 큰 글씨로 고반어은 음풍영월(考槃漁隱 吟風詠月 : 소요 자적하며 고기잡고 숨어 살며 풍월을 읊다)이라 각자되었으니 글자의 형태가 특이하다. 그 나머지는 물이 깊어 다 알아 보지 못하고 흰 모래 멀리 물가에 가득하다.
서남은 모두 평야로 갈대가 무성하고 창연하며 앞에 높은 옥산의 희미한 안개는 때때로 푸른 절벽에 둘러 있고 동서에 부는 바람 따라 농민들은 언제쯤 비가 오고 개일 줄 알았다.

ⓒ 순창신문

고뱅이 어살
고뱅이 어살은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 723번지 최홍지(1879년 2월 20일생)가 1904년경 브이자형으로 돌을 쌓고 대나무 발을 엮어 설치한 어살로서 이 어살로 은어, 참게 등을 잡아 당시 순종 임금에게 진상품을 올릴 정도로 유명했으나 안타깝게도 88고속도로 건설 사골재 채취 등으로 어살이 유실되면서 추억과 정서가 함께 묻혀 있는 옛 정취를 살리고자 순창군민의 뜻을 모아 어살 복원을 하게 되었다.
한편 주변 정취로는 강 건너 바위 밑에 천연 고기굴이 있어 아침에는 강을 향하여 대나무 쑤기를 놓고 저녁에는 반대 방향 굴 쪽으로 쑤기를 놓고 고기를 잡아 수많은 유림들이 이곳을 찾아 즐겼다 하여 집정조대라는 글귀가 높이 3m 폭 1.5m의 바위에 현재까지도 뚜렷하게 새겨져 있으며 또한 이곳 고뱅이 입구에는 짚을 엮어 만든 고반정(古半亭)이라는 정자를 지었고, 정자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고뱅이 어살 등에서 잡히는 고기를 안주삼아 강에 나룻배를 띄워 즐기는 장소로 유명한 곳으로 인근 남원, 곡성, 담양, 임실, 순창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즐겼으며 특히 각 고을 원님들의 방문 시 이곳 고뱅이에서 접대를 하였다 하며 유림들은 이곳에서 시와 글을 지었다고 하나 기록으로 전해지지는 않아 아쉬움이 서린 곳이다.

ⓒ 순창신문

고뱅이 어부와 코바위 설화
유등면 유천리 서씨 벌 명당을 지나 섬진강 남쪽으로 약 1km지점에 가서 하루 종일 헤맸으나 집터를 정하지 못하고 해가 저물었다. 할 수 없이 그날 밤을 자는데 꿈 속에서 하늘에 있는 도승이 나타나 너희가 잠을 자는 곳에 집을 지으면 안락하고 그 밑에 가면 집정조대라는 돌 밑에 물고기가 풍부하니 그것을 잡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잠을 깨 다음날 그곳에 가보니 과연 바위 밑에는 천연 고기굴이 있어 도승이 하라고 한 대로 그곳에 집을 짓고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돈을 더 벌 목적으로 아침에는 강을 향하여 대나무 쑤기를 놓고 저녁에는 반대 굴 쪽으로 쑤기를 놓아 물고기를 잡아 매일 순창, 남원, 임실, 전주, 광주 등으로 다니면서 물고기를 팔아 쌀과 소금 등을 교환하며 평온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고뱅이 뒤편 도적굴에서는 도적들이 길을 걷고 있던 중 때 마침 목욕을 하던 어부 여자의 백옥같이 흰 몸매와 풍만한 가슴을 바라본 도적은 순간적으로 욕정이 생겼다. 이를 극복하지 못한 도적은 목욕한 곳까지 도착하여 보니 그 욕정이 더욱 강해져 자기도 모르게 아낙네를 안아버렸다. 이때 아낙네가 말하기를 내 남편이 올 시간이 되었으니 빨리 가라고 말하며 계속적으로 반항을 하는 아낙네에게 화가 나 몸에 지니고 있던 칼로 아낙네의 코를 베고 다시 집으로 향하여 아들의 코를 베려하는 순간 하늘에서 뇌성벼락과 함께 모자는 돌로 변하고 도적도 강물 옆에서 죽어 버렸다.
다음날 남편이 집으로 와 보니 모자가 돌로 변한 것을 보고 한탄하며 어부가 자주 고기를 잡던 집정조대 앞에서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돌로 변한 어부는 집정조대 앞 낚시바위 상석으로 변하여 사람들은 상석바위라 부르고 여자가 죽은 바위를 코바위라 부른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코바위골이 고뱅이로 전달되어 사람들은 고뱅이라고 부르고 있다.

ⓒ 순창신문

정주석(停舟石 배말뚝)
순창군 유등면을 지나 곡성, 구례, 하동, 광양을 통해 남해안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조선시대 화물운송의 한 통로였는데 옛 어른들로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순창을 위시한 주변지역에서 빼앗은 곡식 및 목재 등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배를 건조하고 정박시설을 만들면서 이 정주석(배말뚝)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한다. 반면 어떤 이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봤을 때 이 지역이 배의 형국이므로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보비 차원에서 배말뚝을 세웠다고도 전한다.
정주석을 중심으로 주변의 지명을 보면 강여울, 배나들, 배창들, 배를 정박시켰다는 정금산 등 배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정주석의 크기는 높이 2.2m 둘레 2m이며 정월 대보름에 아낙네들이 금줄을 두르고 소원을 빌며 그 주위를 돌면 아들을 얻는다는 전설이 전한다.

ⓒ 순창신문

섬진강 나루터와 버들주막집
이곳 섬진강 나루터에는 버들이란 지금의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유촌교 입구 버들주막이 있던 곳이다. 그 주막 주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주막집을 둘러싸서 여름이면 어른들에서 아이들까지 일하던 농부들이 꼴망태 메고 버드나무 밑에 누워 낮잠 한숨자고 주막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윷놀이 한판하고 막걸리 한잔하면서 친구들과 정을 나누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살았으며 섬진강 맑은 물에 친구들과 은어, 붕어, 피라미, 모래무지 등을 잡아 천렵하고 안주 삼으면서 매일 모래밭 위에 놀던 곳이며 옛날 조선시대는 찻길이 없어 도보로 남원시에서 순창읍을 왕래할 적에 이곳 나루터 배를 이용 교통수단으로 사용하고 순창시장 및 순창, 유등초등학교를 갈 적에 매일 배를 이용 교통수단으로 상용한 곳임 매년 오고 가는 남원군 대강면 일대, 순창 유등면 일대 주민들은 매년 여름에는 보리 한말 가을에는 나락 한말 등을 사용료로 주었으며 나머지 내지 않는 부락 사람들은 배를 이용시 그 즉시 사용료를 주기도 한 곳이며 순창군 관내 초ㆍ중ㆍ고 학생들은 봄, 가을 소풍을 이곳으로 찾아와 섬진강 맑은 물에 몸을 담그며 물고기 잡고 다슬기 잡아 천렵한 곳이며 인근 전남 담양, 광주, 전주, 임실, 전남 곡성, 구례, 순창 등 한량들은 이곳에 와 배를 띄워 놓고 물고기 안주 삼으면서 막걸리 한잔씩 주고 받으면서 서로 시 한수를 짓고 노래하면서 즐겁게 놀이하던 곳으로 유명하여 지금도 60세 이상이면 옛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곳이며 여름에는 비가 200mm이상 올 적에는 강물이 범람하여 바다로 생각할 정도로 큰 강을 이루어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배를 움직일 수 없어 며칠간 이곳 버들 주막집에 투숙하면서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 옛 추억을 지금도 생각하여 다시 한번 찾는 사람들이 옛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순창, 남원 대강, 유등 등지에서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한 식량을 약탈하여 순창 등지에 있는 백성들은 많은 고초를 겪는 반면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도 모두 베어 이곳 버들 나루터를 이용하여 일본으로 수송하였다. 지금은 1976년 주민들 새마을사업으로 다리가 놓여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 순창신문

신경준 묘지와 신도비
신경준은 조선 영ㆍ정조시대의 실학자였다. 두 폭의 지도 중 북방 강역도는 백두산에서 압록강과 두만강까지의 거리와 지명, 동네의 이름 들을 적은 것이며 해역도는 강화도로부터 압록강 하루 사이에 있는 각 섬과 암초, 해안의 굴곡 등을 표시한 것이다. 크기는 강역도는 73.5cm×11cm 해역도는 272cm×83cm이다.
이재 황윤석(1729~1791), 존재 위백규(1727~1798)와 함께 조선후기 3천재로 불리었던 여암 신경준(1721~1751)은 어려서부터 화산서원에서 한학을 열심히 익혔으며 15세 때는 사서삼경 및 풍수지리 공부에 능하였으며 지금의 묘지 자리에는 제일의 명당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매일 좋은 기를 받고 공부를 하여 훌륭한 인물이 배출 될 것을 예언하여 내가 죽은 다음에 나를 이 자리에 묻으면 다음에는 고령 신씨들 중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할 것을 알고 자손들에게 유언을 했다.

ⓒ 순창신문

책암 책바위
순창군 유등면과 남원시 대강면의 경계를 이루고 해발 260m의 동북쪽 역룡으로 올라온 산맥이 정북쪽으로 해발 200.7m 고지에서 88고속도로 유촌교까지 내려오고 한족은 계속 동북쪽으로 뻗어가 대강면 입암리로 내려간 사이에 마을이 형성된 책암이라 한다.
옛날에 평강 채씨 채 진사가 책암마을에 살았으나 진사는 아들을 얻지 못하고 무남독녀 외동달을 낳아 잘 기르고 세월이 흘러 진사의 딸이 17세가 되던 해였다. 진사의 딸은 어찌나 용모가 단정하고 미녀였던지 각처에서 소문을 듣고 매처들이 끊임없이 왕래하였다. 하루는 전남 광주에 사는 용모가 뛰어나고 거대한 장사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채 진사 집을 맴돌며 하루, 이틀, 삼일 계속 머물자 채 진사는‘저 총각을 어떻게 하면 위집에서 멀리 떠나 보낼 수 있을까’궁리한 끝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채 진사는 그의 생각을 딸에게 알려주고 총각에게도 다가가 우리 딸을 데리고 가려면 내기를 하면 어떻겠냐며 제안을 하자 총각도 쾌히 승낙하였다. 그러자 채 진사는 총각을 불러놓고 책여산에서 30일동안 만 권의 책을 가져다 마을 앞 입구 준군봉 아래에 차곡차곡 쌓으라 하고 진사의 딸은 40필의 베를 짜기로 굳게 약속하였다. 총각은 어여쁜 아낙네를 덕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돌을 옮기던 중 우연히 책여산에서 된장바위를 발견하여 그곳에서 쉴 때마다 물과 된장, 주먹밥을 조금씩 먹었으나 매일 몸은 쇠약해지고 정해진 날짜를 지나 32일 만에 만 권의 책을 쌓아 놓고 즐거운 마음으로 채 진사의 집으로 달려갔으나 채 진사는 우리 딸은 29일 만에 40필의 베를 모두 잤으나 자네는 2일을 초과하였으니 딸을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진사의 말에 잔뜩 화가 난 총각은 그 처자가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높이 20m 폭 15m의 높은 만 권의 책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택하자 하늘에서 뇌성벼락과 함께 만 권의 책이 정교한 바위로 변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처녀는 총각이 자기 때문에 죽은 것을 한탄하며 매년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내주었으며 지금도 이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가끔 공을 드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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