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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발길따라 칠십리

2010년 10월 05일(화) 12:13 [순창신문]

 

ⓒ 순창신문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 긴 강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신암리 마을에 있는 데미샘에서 발원하여 전라남ㆍ북도와 경상남도 등 3개 도 9개 시ㆍ군 28읍ㆍ면을 넘나들며 작고 큰 지류를 불러모아 하동을 거쳐 공양만으로 흘러간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동부산악권을 가로질러 진안군, 임실군, 정읍시, 순창군, 남원시를 경유하는 천혜의 아름다운 상류 강이다. 우리 순창군은 섬진강 상류에 위치하여 동계면, 적성면 유등면, 풍산면 등 4개 면을 이어 강물이 흐르고 있어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보배로운 강을 갖고 있다. 순창은 섬진강 주변에 서린 문화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하여 관광자원화하는 계획을 섬진강 개발구상에 포함시켰으면 하는 뜻에서 순창문화원 주관으로 “순창 땅 섬진강 칠십리” 문화유적 탐사내용을 풍산면, 유등면, 적성면, 동계면 순으로 4회 특집으로 게재한다.

ⓒ 순창신문

순창을 통과한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여행을 떠나 봄직하여 순창 풍산 향가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순창군 풍산면 향가의 섬진강은 순창에서 제일 하류쪽이다. 향가에서부터 임실군 천담까지 섬진강 줄기따라 올라가 본다. 순창 향가의 물은 너무나도 유난히 맑고 깨끗하게 보인다. 일제 말기에 철교를 놓다 해방이 되어 철길을 놓지 못하여 철기둥만 7~8개 물 위에 우뚝 서 있다. 철기둥 옆에는 물이 깊어 옛날에는 쪽배를 저어가며 그물을 치고 투망을 쳐 고기를 잡는 곳으로 유명하다.
철다리 밑기둥에는 물이 깊어 다리 발에 붙어 있는 다슬기는 어른 엄지 손가락만큼 굵어 수영 잘하는 분들이 물속에 깊이 들어가 잡아 올린 다슬기는 참으로 찰찰하여 먹음직스러웠다. 그물에서 걷어올리는 붕어, 잉어, 메기, 가물치, 쏘가리, 꺽지, 눈치, 모리무지, 쉬리, 피라미, 뱀장어 등 가지가지 고기들이 듬뿍 잡히곤 했다.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오면 향가 용소가 물을 빙빙 돌려가며 내려간다. 너무 깊어 끝이 보이지 않아 무섭기까지 한다. 금방 큰 용이 하늘로 승천할 기분이 든다. 하도 깊어 명주실꾸리 3개가 짧을 정도로 깊다고 소문이 난 곳이다. 용소 상류로 올라가면 풍산면 두승 대가리 앞 옛날 중섬 나루터와 주막터가 나온다. 넓은 대가리 뜰은 우리 순창군에서 제일 큰 뜰이기에 들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

ⓒ 순창신문

옥출산 장군암은 의병장 유팽로 무술 연마지
섬진강변 합강마을은 전남ㆍ북을 합한 강으로 유명한 곳이며 풍류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옛날에는 고을 원님들이 섬진강 맑은 물고기를 안주삼고 배를 띄워 놀던 곳으로 명성이 있던 곳이다. 이곳 유팽로 장군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해 이곳 옥출산 장군암에서 혼자 매일 매일 무술과 도력을 닦은 자이며 20세가 되던 해 무술과 공부를 마치고 있을 무렵 꿈에서 산신령님이 나타나 빨리 마을로 내려가 왜적을 물리치라는 꿈을 깨어보니 전국 곳곳마다 왜적이 진을 치고 있어 내가 할 일은 이때로구나 하여 순창, 옥과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합강 앞 넓은 들판에서 고경명 장군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양대박은 우부장 공은 좌부장이 되어 임진 7월 5일 외적이 금산을 범했다는 말을 듣고 호서의병장 조제득에게 격문을 보내 군사를 합하여 금산으로 진군을 해갔다. 9일에는 와평으로 옮겨 적과 싸웠으나 형세가 크게 꺾였다. 왜적과 싸워 전세가 불리하자 유팽로는 죽기를 각오하고 “한나라에 장수가 전쟁에서 살아남기를 도모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의리이다.”며 싸우다 전사하니 공의 나이 29세였다.
그가 타고 있던 말도 많은 상처를 입고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슬피 울면서 한번 뛰더니 공의 머리를 찾아 입에 물고 곧 바로 달려 옥과 합강의 본가로 갔다. 이때에 부인 김 씨는 공이 적과 싸우러 간 뒤로부터 뒤안에다 단을 설치하여 놓고 밤낮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문을 열어 이 광경을 보고 정신을 잃었는데 곁의 사람의 부축을 받아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말은 이미 죽어 있었고 오직 남편의 머리만 땅에 있거늘 곧 방으로 받들고 들어가 옷과 이불을 갖추어 염을 하고 선산에 장사지냈다. 고향에서는 충마의 무덤을 만들어 지금도 말 무덤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 순창신문

용소와 월계정
풍산면 대가리 향가마을 앞 섬진강에는 용소 또는 용연(龍淵)이라 부르는 소가 있는데 이곳에 살았던 용이 승천하다가 못 오르고 떨어졌다는 설화와 용소 위에 있었던 정자에 관한 설화가 전하여지고 있다. 용은 오늘날 상상의 동물로 여기고 있으나 옛사람들은 실존동물로 여겼으며 실제로는 옛날에 있었던 동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거대한 용의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알 수 있다. 여하튼 동서양이 다 같이 용의 모양을 그리는 것을 보면 용은 이 세상의 가장 길한 동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군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하고 왕이 앉은 의자를 용상(龍床)이라 하며 꿈도 용꿈은 최상의 길몽으로 생각할 정도로 용은 길한 동물인 것이다.
어느날 아침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와 함께 뇌성벽력은 천지를 진동하고 용소에서는 오색찬란한 용이 비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때마침 향가리 처녀가 물동이를 이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가다가 하늘로 솟아오른 용을 보고 놀라 엉겁결에 “용이 오른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그러자 처녀의 소리에 힘을 잃은 용은 승천하지 못하고 소(沼)로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예부터 아녀자의 말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어 이 용소는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사는 용소라는 말이 생겼고 날이 가물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한발이 심하면 관가에서 이 용소에다 기우제를 지냈고 정월에 용소 부근에 모래 언덕(沙丘)이 생기면 풍년이 들고 모래 언덕이 생기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다. 용소는 주변 경관이 대단히 아름다워 많은 풍류 시객들과 한량들이 모여들어 뱃놀이에 날이 가는 줄 몰랐던 곳이다. 그리고 용소 위에 많은 사람이 놀 수 있는 반석이 있어 풍류객 기생들이 줄을 이었다한다. 그래서 김연(金演)이란 사람이 이 반속 위에 정자를 짓고 정자의 이름을 자기의 호를 따서 월계정(月溪亭)이라 하였다. 이곳 월계정과 용소는 많은 관원들의 놀이터로 풍류객 기생들이 많이 와서 놀았던 곳이나 시대는 변천하여 지금은 정자도 용소도 풍류객도 없는 옛 이야기일 뿐 그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어 못내 아쉬움만 남는다.

ⓒ 순창신문

옥출산과 월지매
서암산에서 설산이 생하여 전라남도와 도계를 이루면서 동남쪽으로 흘러간 산맥이 마지막으로 산진 수회한 곳이 풍산면 향가리 옥출산이다. 이름 그대로 보석이라고 하는 옥이 나오는 산이란 말이다. 이산에서는 어는 때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옥이 생산되었다고 전한다. 옥은 영원불변한 것으로 금보다 귀중한 것으로 예부터 보물로 알려져 왔다.
하얀 은색을 띠면 연옥이라 하고 파란색은 벽옥, 노란색은 황옥, 초록색은 취옥이라 하여 값이 비싸게 거래되는 귀한 보석이다. 따라서 옛날 오산방 향가리는 옥을 거래하기 위해 중국, 일본 등지에서 뱃길로 들어와 무역이 이루어졌기에 큰 마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남원의 월지매는 무남독녀로 아름답게 자라 방년 18세로 꽃보다 아름답고 그윽한 향기가 풍기는 처녀였으나 아버지가 안 계서 항시 외롭고 쓸쓸함을 달래기 위하여 무엇인가 귀한 보물을 갖고 싶어 하였다. 그러던 중에 순창 옥출산에서 나오는 옥이 아름다운 보석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옥을 갖고 싶은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이 때 순창군수가 이 말을 듣고 옥을 구하여 주니 월지매는 거짓말처럼 털고 일어났다. 물론 갖고 싶은 옥을 가졌기에 심상이 나았지만 옥을 안고 있었기에 옥에서 나온 기로 인하여 완쾌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순창군수와 가약을 맺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전설이다.

ⓒ 순창신문

옥출산 산성터
옥출산 산성은 임진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산성의 길이는 약 650m이며 대부분 천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조성하였다. 옥출산 산성은 삼한시대에 군량미를 저장해 두기 위해 쌓았다는 얘기도 전하면서 적이 섬진강을 이용 올라올 적에 빨리 발견하여 아군에게 전달하는 관망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 순창신문

섬진강 중섬과 나루터
섬진강 나루터에 중섬이란? 지금의 순창군 풍산면 두승 대가 앞뜰 끝편 대풍교 입구가 중섬의 주막이 있던 곳이다. 그 주막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수십 그루 주막집을 둘러싸서 여름이면 들에 나가 일하던 농부들이 꼴망태 메고 중섬 버드나무 밑에 누워 낮잠 한숨 자고 꼴 비어 집에 온 쉼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은 섬진강 상류쪽 풍산면 대가리에 속해 있고 대가리 앞들 경지정리작업을 하기 이전까지 섬으로 불리워졌다. 주막이 있는 나루터를 중심으로 강물이 한바퀴 돌아나가는 섬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 때면 육지나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나루터를 감싸버려 섬이 되고 만다. 그래서 중섬이라고 명칭이 붙혀진 것 같다. 대풍교가 설치되지 않고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대강을 가거나 순창쪽을 올 때 강의 교통수단은 나룻배였다. 먼 옛날부터 이곳은 나룻배로 강을 건너다니는 곳으로 이곳 섬진강 상류의 포구로는 마지막으로 나룻배 교통수단으로 왕래했다고 보아야 하겠다. 대강면에 살고 있는 분들이 이곳을 배로 건너 농사도 짓고 순창시장도 보고 하는 곳이다. 나룻터 사용료는 1년에 쌀 한말, 보리 한말 세경을 받아 강을 줄달아 건네주고 했던 나루터며 여름이면 그늘이 있고 물이 있어 천렵하기 좋고 술판 벌려 놓고 윷판을 벌려 술내기 하는 등 항상 주민과 오고 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곳이다. 중섬 주변에는 모래밭이 많아 무가 잘 되어 순창에 무라면 풍산 두승 대가리 무가 최고였다.
아주 오래 된 100여년 전 순창지방에 대홍수가 나면 이곳 중섬은 자체가 물속으로 파묻혀 버렸다고 한다. 웃어른들의 구전에 의하면 많은 비가 내리게 되면 섬진강 상류에서부터 흘러내린 비는 오수천과 임실에서 내리는 섬진강 물과 순창에서 내리는 경천물 등 수십군데서 흘러 두승 대가리 앞에 모여 향가 산 모퉁이를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범람하여 중섬 나루터를 물속으로 묻어버리면 나루터 주막집은 모든 살림을 배에 싣고 노를 저어 물따라 대가리 쪽으로 올라오면 두승과 대가리 앞 200m지점에 정자나무에 배를 매어 놓고 물 빠지기를 기다리다 비가 개고 물이 빠져 나가면 중섬 배는 물따라 다시 중섬나루터에 도착 버드나무에 배를 매어 놓고 물이 완전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대가리 들판에 경지 정리가 되고 도로가 넓혀져 다리를 세우니 추억과 낭만이 담긴 뱃머리 나루터는 온데 간데 없고 휑하니 길만 뚫려 있어 그 옛날 나루터 들녘에서 짖어대는 종달새가 그립고 맑은 물에 투망으로 고기잡이하여 천렵하던 시대가 그립기에 흘러 내려온 중섬 역사를 간략히 기록해 둔다.

ⓒ 순창신문

옥산사
옥산사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인 김일손과 의병장 김치세, 김산경 부자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957년에 세운 것이다. 김일손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굉필, 정여창 등 소위 사림 세력들과 깊은 교류를 맺었으며 조선 성종 17년(1486)에 과거급제한 후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그는 연산군 4년(1498) 김종직이 쓴 조의 제문을 사초에 실었는데 훈신들은 이 일을 세조의 즉위를 비난한 것으로 무고하고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나섰다. 김일손도 이 때 사형에 처해졌다. 김일손의 증손이며 조현에게 가르침을 받은 의병장 김치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아들 김선경과 함께 의병 700여 명을 거느리고 장수에 이르러 금산, 무주의 왜적을 격파하고 한천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그 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 수백 명과 아들 산경과 노복 수십 명을 인솔하고 섬진강변에 올라 온 적을 무찔렀고 구례, 압록전에서 적과 싸우다가 전사하여 조정에서 사복시 주부를 추증하고 선무원종 2등 공신에 봉하였으며 고향 옥산사를 세워 제양했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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