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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발길따라 칠십리

2010년 10월 15일(금) 14:33 [순창신문]

 

ⓒ 순창신문

적성면 이곳은 섬진강에서는 포구로 마지막 포구요. 나루터다.
지금도 나루터에는 옛날 쉬어가는 주막터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배를 메어 놓은 나루터 버드나무가 수백년을 버티고 있다.

ⓒ 순창신문

이 바위는 고려 말의 최영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창의 명산 가운데 하나인 책여산은 산에 있는 바위가 마치 책을 차곡차곡 쌓은 것과 같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책여산은 또 화산, 채계산(釵笄山)이라고도 부른다. 화산은 산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며 채계산은 산봉우리 위에 떠 오르는 달의 모습이 비녀를 꼽고 반듯이 누운 월하미인의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인의 상대는 장군이므로 장군암은 책여산의 정기가 모인 곳으로 볼 수 있다.

ⓒ 순창신문

배 나루터와 임진난 설화
섬진강 마지막 항 포구
순창군 적성면 원촌리 나루터는 삼한시절 마한의 54개국, 백제 때는 낙평현, 고려초기에는 적성현이 집무하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사람들이 한반도 상륙작전을 하려고 여러 곳을 살펴보던 중 섬진강을 발견하고 왜군이 침입하여 원균, 조경란 장군이 정유 8월 왜군 56,800명과 전투를 하다 정유년 8월 16일에 남원성이 함락되었고 아군 만 여명이 사망했다.
왜군들이 섬진강을 발견하고 적성 나루터에 정착하여 남원 성을 진격 함락시키고 어른과 어린아이 411명의 코를 베었다. 일본 풍국신사에는 지금도 기록이 남아 있다.
아군 1차 방어선을 화산과 책여산 사이가 협곡을 이루고 있고 적성강이 있기에 여러 날 이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정유재란과 순창의 수난
아군은 남원성이 무너지고 적성강 전투에서 패배하여 일부 의병은 동계 감밭으로 일부는 적성을 거쳐 순창읍으로 후퇴하고 잇을 때 순창군수 배경남은 무과 출신 당상관에 있던 자로 순창군청을 지키고 순창 전체를 사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순창, 동계, 적성, 유등, 남원 등지에서 군량미를 보충하기 위한 식량을 약탈하여 순창 등지에 있는 백성들은 많은 고초를 겪은 반면 고을 원님들은 매일같이 적성강에서 기생과 함께 고기를 안주삼아 풍류를 즐겼다.
일본 사람들은 배를 만들기 위한 목재도 모두 베어 이곳 적성 나루터를 이용하여 일본으로 수송하였다.
지금은 1940년경에 다리가 놓여 옛날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 순창신문

적성삼화(磧城三花)와 월화교(月花橋)
백제 때 낙평현이었다가 적성현이 된 이곳은 뒤로는 두류봉이 막아 서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의 상류인 적성강이 휘감고 돌아가며 건너편에는 채계산(釵笄山)이라 하는 아름다운 산이 가로누워 있으니 푸용롭고 아름다운 고장으로 인근 고을에 알려져 남원, 임실, 옥과, 곡성 등지의 지방 수령들이 탐하는 고을이었다.
더욱이 적성강 맑은 물에 조약돌이 보석처럼 반짝이고 동쪽 하늘에 달이 떠오르면 채계산은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이 되어 풍만한 젖가슴이 거울처럼 맑은 적성강물에 비쳐지는 아름다움은 옛날 풍류객들의 시정을 풀고자 발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그러하니 인근 지방 수령들이나 풍류객들이 적성강에 배를 띄워 놀다가 시흥이 나면 서로 화답하고 하였다.
이 무렵 적성현에는 미색의 관기나 여기들이 많았으나 그 중에도 풍류객의 흥을 돋을 가무뿐만 아니라 시로 화답할 수 있는 고양을 갖추고 아름다움도 꼭과 같다 하여 적성삼화라 애칭을 받았던 세 기생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월화, 월선, 월계라 하였다. 그러나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밝은 밤이면 이곳 채계산 아래 적성강에는 적성삼화와 같이 배를 띄워 달맞이를 즐기려는 풍류객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아와 같이 취흥이 도를 더하던 중 세 기생 중에 제일 아름다운 월화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월화가 빠져 죽은 바위 징검다리를 월화교라 부르게 되었으며 월화가 헛디딘 바위를 월화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책여산 금돼지 전설
이곳에는 적성 수령이 집무하던 관아터가 있던 자리이다. 적성현은 고려 초기에 순창군으로 편입되면서 순창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 후기에 행정명칭이 적성면으로 바뀌었다.
조선 영조 때 고을 원님이 부임하면 부인이 없어지는 괴이한 사건이 일어나자 모든 원님들이 부임을 거부하자 신씨라는 원님은 지혜가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 자신이 원님을 지원하여 자기 부인을 잃지 않기 위하여 부인 몸을 명주실로 묶어 놓고 자정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자정이 지나 졸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졸 후 옆에 있던 부인을 찾으니 부인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부인을 찾던 중 금돼지가 업고 간 흔적을 발견 굴을 향하여 찾아가 보니 높이 20m 위 금돼지 굴에 부인이 앉아 있어 부인을 구출하고 정사를 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다시는 금돼지가 그러한 행동을 못하도록 굴 속에다 불을 펴 놓아 지금도 돼지굴은 붉은색으로 되어 있어 옛날 추억을 찾기도 한다.

ⓒ 순창신문

섬진강 평남 앞 어살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앞 강변은 적성강 중앙으로 섬진강으로 이어지며 동쪽으로는 화산의 끝자락 월하미인 형상이 강물에 드리워지고 어은정 앞 강물을 아름다운 절경의 산수가 어우러진 곳에 조선 중기 자연석으로 강을 V자 형상으로 막아 쌓고 대나무로 발을 엮어 은어, 참게, 황어 등 물고기를 잡아 고을 원님께 진상하였고 인근 남원, 임실, 동계, 삼계, 순창 등의 수령 방백들이 모여 선유하고 흥취가 나면 시를 읊던 어은정이 있는 아름다운 금모래 밭이었다. 주변에는 노송과 백일홍이 아름다웠으며 매년 가을철에 비가 50m이상 내리면 뱀장어, 참게 등이 쏟아져 장관을 이룬 곳으로 유명하였으나 1980년경 주변 하천 제방뚝을 설치한 후부터는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어살이 소실된 곳이다.

ⓒ 순창신문

어은정(漁隱亭)
적성면 평남리에 위치한 어은은 어은 양사형(楊士衡)이 1567년에 구미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여 살면서 영하정을 지었는데 그후 후손들에 의해 그 이름이 어은정이라 바뀌었다.
양사형은 1547년에 태어나서 1579년에 사마시에 1588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으로는 영광군수, 병조정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크게 공을 세운 바 있어 선무공신에 봉했다.
그리고 1599년 그가 타계한 후에는 승정원 도승지의 중직이 내렸으며 본군 인계면에 소재한 화산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 어은정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이름이 바뀌고 여러 례 중건을 한 바 있으며 강 언덕에 세워진 정각 주위에는 100여년생의 백일홍이 수십 그루 심어져 있다. 그리고 지금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은 1919년에 중건한 것인데 1991년에 기와갈이와 일부 목재부분을 보수하여 남원양시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 순창신문

신중사(信重寺)와 선녀탕(仙女湯)
적성면 석산리 도왕마을 동쪽에 오른 산을 각시봉이라 하며 이곳에는 삼국시대 우리나라 불교 전성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이때 한 도승이 가람을 세우고자 대명당을 찾고 다녔다.
섬진강 만산 굽이치는 물줄기와 용골산, 무량산을 바라보면서 이 부근에 대명당이 있다는 말을 듣고 만수탄 앞산을 보니 말꼬리처럼 생겼다.
그렇다면 말머리에는 필시 대가람 터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대웅전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해가 저물었다.
그날 밤 잠을 자는데 하늘에서 어여쁜 보살이 금부처를 안고 내려와 그것을 놓고 승천하였다.
날이 밝자 그곳을 찾아가보니 실제로 금부차가 놓여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서둘러 대웅전을 건립하니 이 사찰이 신중사였다. 그후 사찰은 대 번창하였고 이 사찰 부근에는 불암사, 추암사가 있고 신중사는 여승만이 있던 절로 절벽 아래에는 선녀탕이 있어 매달 보름이면 여승들이 목욕하는 날로 정하여졌다. 그래서 남자 스님들은 보름날은 외출을 금하였다.
보금이 되어 여승들은 마음 놓고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중 한 무승이 보름날 저녁 그 길을 가다 백옥같이 흰 아리다운 여승의 몸매에 풍만한 가슴을 바라본 순간 욕정이 생겨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선녀탕까지 도착하여 보니 그 욕정은 더욱 충만하여 자기도 모르게 선녀를 안아버렸다.
이때에 선녀가 말하기를 “그동안 닦은 도력을 이토록 허무하게 파괴할 것입니까? 저를 놓아 주시고 어서 마지막 도력을 닦으십시오.”라고 하였으나 무승은 놓지 않고 더욱 힘차게 끌어 안았다.
이때 천지가 진동하는 뇌성벼락과 함께 선녀는 선녀탕 앞에 돌로 변하였고 무승은 선녀탕과 조금 떨어진 속에 선녀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린 채 장승으로 변했다.
이 장승의 눈물이 흘린 자국이 그대로 변하지 않고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있어 지금도 선녀탕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옛 생각을 하게 한다.

ⓒ 순창신문

불암사지 마애불(佛岩寺地 磨崖佛)
고려시대 때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마애불은 높이가 2.7m 폭이 1.8m의 좌불로 머리 뒤의 광배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손의 모양은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려는 듯한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며 두터운 입술과 살찐 얼굴 등에서 매우 부드러운 인상을 느낄 수 있다.
마애불이 위치한 이곳은 예전에 불암사가 있던 자리로 불암사는 백제 의자왕 재위 641~660 때 궁선대사가 세운 절이다. 절을 짓기 전날 밤 궁선대사의 꿈속에 어느 노인이 나타나 금부처와 한 처녀를 주면서 “이겻은 절의 발전에 대들보가 될 것이며 중생들 중에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를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니 칠성당에 잘 모셔라. 그리고 대웅전을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세우면 대 성왕의 불전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 궁선대사가 잠에서 깨어 절터로 나가보니 과연 처녀보살이 금부처를 업고 대웅전 뜰에 나타났고 바위 밑에서는 송아지가 풀을 뜯고 있었다고 전한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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