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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등면 건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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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16일(월) 13:23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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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라는 거동산에서 기두하여 남쪽으로 내려와 마을이 형성되니 옛날부터 취락이 형성되었고 고려조 말기로 믿어지는 어느 장군 어느 벼슬아치의 무덤이 마을 한복판 여근곡(女根谷)에 자리하고 그 아래서 그 자손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묘비 또는 상석이 있었는데 묘의 주인이 나타나면 사패지지로 땅을 몰수당한다는 무지한 생각으로 묘비를 마을 서쪽에 있는 수렁논에 묻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마을 앞 현회관 근처에 홍살문과 개하마비(皆下馬碑)가 1940년대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느 귀족의 묘이며 취락지였던 것은 확실하다. 흥망성쇠는 지륜에 따라 주기적으로 오고가는 것이니 어떠한 부귀영화도 때가 가면 풍전등화처럼 살아지는 것이니 누가 막으리오. 이를 입증이나 하듯이 마을 뒤에 거목의 당산나무가 있어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이 마을을 입증하고 있다. 이 마을은 산은 강하고 물은 약하기 때문에 예부터 산장수약 마을이라는 표현을 건실이라 하여 현재 학천은 아래건실, 건곡을 웃건실이라고 불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패합으로 아래건실, 웃건실 그리고 쇠판리를 합쳐 건곡이라고 하였다. 옛날 이곳에서 솟아오른 으수는 아주 좋은 물이였다. 옛날에 이물과 이곳 지형 때문에 발효식품의 제조에 적지였으므로 1940년대 초까지 곡자 일명 누룩이라고 하는 술을 빚는 원료를 이곳 건실에서 생산하여 전국에 판매하였다. 그래서 해방 전까지 순창읍에 곡자주식회사가 있었으며 평양기생방에 술을 만드는데 건실곡차가 아니면 술맛을 낼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이 긴 역사를 가진 건곡은 잘사는 마을로 이름이 나 있다. 마을에 돈이 많아 건곡마을 마을금고까지 설치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합병되었지만 이 마을주민들은 너무 부지런하다. 각종 농사에서 얻어진 농산물을 매일 시장에 내다팔아 집집마다 훈훈한 행복을 누리는 마을이다. 말 그대로 부자 마을 잘사는 마을이다. 건곡의 농사호수는 78호에 인구는 120명으로 이 마을 역시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 70%정도로 많다. 행복한 마을에 마을 일에 열중하고 부지런한 이장 김종영(58)씨가 있다. 마을에서는 젊은 층에 속하며 마을 대소사에 항상 앞장서야 하기 때문에 쉴 새가 없다. 이장 자신도 많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경작하면서도 마을 어르신들의 뒷바라지에도 신경을 써야 농사일이 마무리 되는 마을이기에 그 누가 뭐라해도 부지런한 이장과 마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서 마을일에 열중하여 안 되는 일이 없다. 마을의 공동체인 할아버지 노인당, 할머니 노인당 회관 여름에 활용한 모정 등 운영의 묘를 살려 타부락에 비하여 깨끗하고 화목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는 회장 김종영과 지도자 부녀회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기 때문이다. 단합된 마을이기에 주위마을에서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마을이 화목하니 출향인들도 마을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연중 1~2회씩 사비를 내여 마을 위안 잔치를 해 주시는 출향인과 또 명절마다 고향에 오실 때 많은 도움을 주고 가시는 건곡 출향인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잘사는 마을 건곡리에는 많은 일화와 설화들이 남아 있다. 오늘은 건곡리에 위치한 정금대에 대하여 적어본다.
“망국의 한을 달랜 정금대(停琴臺)”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 뒤 정자나무를 정금대라고 하는 것은 이곳에 거문고를 가지고 올라 거문고를 타면서 망국의 한을 달랬기 때문이다. 옛날 절의를 지키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 갔건만 그 이름은 영원히 정금대라는 이름과 함께 남아있다.
그 주인공은 옥천조씨(玉川趙氏) 서운관부정(書雲觀副正)을 지냈던 조영으로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조원길(趙元吉)의 아들이다.
고려의 사직이 무너지고 이성계가 조선조를 건국하였을 때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하여 두문동에 들어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생을 마친 72현 이외에도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던 선비들이 많았다. 조영도 그 중의 한분으로 아버지를 따라 순창으로 내려와 유등면 건곡리에 은거하였는데 태종은 조영의 사람됨을 알고 이조판서의 높은 벼슬을 주어 불렀으나 불응하고 정금대에 올라 북쪽하늘(개성)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뜯으면서 망국의 한을 달래면서 노래하곤 했다.
백운지아심 (白雲知我心) 흰 구름 내 맘 알리라.
성산여고인 (靑山如故人) 청산은 옛사람과 같은데
욕설망국한 (欲說亡國限) 임 잃은 이내 설움
운산묵사돈 (雲山墨以頓) 말해서 무엇하리
조영은 끝내 이곳 정금대에서 생을 마감했고, 옥천조씨는 조선조에서 등용되지 않는 설움을
겪었다.
더욱이 절의를 지킨 분의 분묘마저 실전하여 행화를 받지 못하니 세상은 어딘가 불완전하다. 건곡리 한복판묘가 조영 장군의 묘가 아닌가 한다. 이와 같은 역사와 설화가 있는 마을에 옛 문화를 재조명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옛 문헌을 더듬어 봤다. 잘 살고 깨끗하고 부자마을 건곡리에 충신이 살았기에 모든 분들의 삶에 인정이 넘치고 서로 공격하는 마음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오늘 날에도 인심 좋은 건곡으로 거듭나고 있다. 영원히 행복을 추구하는 김종영 이장 모든 구심체 지도자님들에게 파이팅 해 봅니다.
참고문헌 : 순창향지, 순창군지, 옥천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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