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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최고야, 적성면 지북리 지북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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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31일(토) 11:10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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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 지북리 지북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에 남원 양씨가 정착한 마을로 하루는 지나가는 어느 대사가 우측산을 보고는 암백호라 하고 앞산을 보고는 숫백호라 하며 장차 이 마을은 부자 마을로 번성할 것이라는 예측을 해주었다는 말과 같이 오늘날 매우 번창한 마을로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은 지북(支北)이라고 표기 되었기에 여러 가지 속설이 있으나 원래는 갓대였다.
이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머리에 쓰는 갓과 허리에 둘러 옷을 묶은옥대라는 말로 지북리는 주봉(리봉 163.1m)의 봉우리 형상이 갓과 같고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산의 형상이 옥대와 같은 형상이란 뜻에서 갓대라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 말은 한자로 관대촌이라 하였다.
앞산은 노호로 백호 형상이며 마을은 상대성 지명으로 큰 돼지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면서 그 형상을 지북리라 하여 한자로 쉽게 표기하니 支北이라 표기 하였다.
따라서 이 마을은 예부터 부자가 많았고 갓대나 관대촌이라 부를 때는 귀도나 와부귀 겸전지였던 것이다.
이농 현상이 극심한 이 시대에도 지북리는 변함이 없고 지금도 잘 사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이 마을에는 78가구에 168명의 인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 부촌마을이다. 이 마을을 행복하고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 제일 앞장서 활동하는 신상환(60세) 이장과 마을유지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마을의 소득원으로는 논농사와 시설하우스와 두릅 등 다양한 작목으로 농가 소득도 타마을에 지지 않는다. 마을주민의 편의시설로 마을회관과 할아버지, 할머니 경로당, 여름철 쉼터, 모정, 게이트볼장 등 주민의 편의시설도 빠짐없이 준비 해 두었다.
이는 마을 구심체인 이장 신상환과 노인회장 김익진, 이양이 개발위원장, 김용진 부녀회장, 조예순 등 많은 분이 뒷바라지 해준 덕이고 특히 순창군 의원 출신인 새마을지회장을 지낸 김진홍 회장과 박정자, 김진국 회장들의 활동의 대가가 크다고 본다.
이장 신상환 역시 자기 농사일에도 바쁘지만 항상 마을 노인들의 일손을 도와주어 어느 마을보다 농사일이 쉽게 끝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아 청년회를 만들어 마을의 대소사와 좋고 나쁜 일에도 앞장서서 해결해 주는 청년회의 활동도 어느 마을보다 월등하여 자랑스럽게 생각되어 그들의 노고에 필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북리는 마을이 크고 잘사는 마을이기에 출향 향우들도 고향 사랑에 관심이 크다. 전 순창군 향우 회장이신 김상진 회장과 김형오 시인 등 많은 출향인들이 타향에서 성공하여 고향인 지북마을에 때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돕고 있어 그 고향 사랑이 마을의 풍부함과 인정이 넘치게 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행복한 마을이기에 옛부터 내려오는 구전과 설화가 많다. 그 중 국부가 나온 명당터 갓대에 대하여 향지에 기록된 내용을 적어본다. 세상 사람이 성공하면 자기 노력이라 자랑한다.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대 자연의 섭리에 의하여 흥망성쇠가 이루어지기에 거부 오나시스도 또 천하를 호령하던 징기스칸도 흥망성쇠의 자연섭리 앞에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원리에서 대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잘살아 보자는 것이 풍수지리이다.
그래서 사람이 일생동안 사는 터를 잘 잡아 살면 건강하고 잘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고장 적성면 지북리를 옛날 갓과 옥대나 금대는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갓대의 형상이 청룡 백호의 형상이고 방갓에서 내려온 맥은 호랑이 등으로 이 마을 안산이 되니 이 어찌 노적이 아니랴. 이와 같은 대명당이기에 이 곳에 터를 잡은 창봉 양운거가 국부가 안 될 수 가 없었다.
양참봉이 국조실록에 현종 때 흉년이 들어 쌀 수백 석을 내여 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거부였음이 확실하며 인색하게 굴었던 부자들의 형태와는 달랐다. 그러기에 그 재산이 10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부자가 당대에 망하는 사람이 많으나 자연의 힘에 의하여 부자가 되었기에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후 정부의 높은 분과 위토답 문제로 알력이 생겨 그 많은 재산을 몽땅 잃고 자손들까지 원안이 생기여 가문이 흉성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분명 지북리는 갓대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지금부터 다시 부가 형성되어 잘 사는 마을이 될 거라는 기대가 크다.
양문지가 가문이 흉성한지 300년이 되었기 360년이면 다시 환원하는 연대이기에 부가 지금부터 일어날 거라는 지리학의 향지사 어르신들의 예언이시다.
좋은 마을터에서 부지런히 일하시는 신상환 회장의 부지런함 때문에 행복한 마을 잘사는 마을 부자 마을이 될 거라 믿습니다.
웃 어르신 잘 모시고 마을화합 잘 하시라고 큰 박수와 화이팅 보냅니다.
적성면 지북리 지북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에 남원 양씨가 정착한 마을로 하루는 지나가는 어느 대사가 우측산을 보고는 암백호라 하고 앞산을 보고는 숫백호라 하며 장차 이 마을은 부자 마을로 번성할 것이라는 예측을 해주었다는 말과 같이 오늘날 매우 번창한 마을로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은 지북(支北)이라고 표기 되었기에 여러 가지 속설이 있으나 원래는 갓대였다.
이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머리에 쓰는 갓과 허리에 둘러 옷을 묶은옥대라는 말로 지북리는 주봉(리봉 163.1m)의 봉우리 형상이 갓과 같고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산의 형상이 옥대와 같은 형상이란 뜻에서 갓대라 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이 말은 한자로 관대촌이라 하였다.
앞산은 노호로 백호 형상이며 마을은 상대성 지명으로 큰 돼지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면서 그 형상을 지북리라 하여 한자로 쉽게 표기하니 支北이라 표기 하였다.
따라서 이 마을은 예부터 부자가 많았고 갓대나 관대촌이라 부를 때는 귀도나 와부귀 겸전지였던 것이다.
이농 현상이 극심한 이 시대에도 지북리는 변함이 없고 지금도 잘 사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현재도 이 마을에는 78가구에 168명의 인구가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는 부촌마을이다. 이 마을을 행복하고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 제일 앞장서 활동하는 신상환(60세) 이장과 마을유지들이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마을의 소득원으로는 논농사와 시설하우스와 두릅 등 다양한 작목으로 농가 소득도 타마을에 지지 않는다. 마을주민의 편의시설로 마을회관과 할아버지, 할머니 경로당, 여름철 쉼터, 모정, 게이트볼장 등 주민의 편의시설도 빠짐없이 준비 해 두었다.
이는 마을 구심체인 이장 신상환과 노인회장 김익진, 이양이 개발위원장, 김용진 부녀회장, 조예순 등 많은 분이 뒷바라지 해준 덕이고 특히 순창군 의원 출신인 새마을지회장을 지낸 김진홍 회장과 박정자, 김진국 회장들의 활동의 대가가 크다고 본다.
이장 신상환 역시 자기 농사일에도 바쁘지만 항상 마을 노인들의 일손을 도와주어 어느 마을보다 농사일이 쉽게 끝나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에는 젊은 청년들이 많아 청년회를 만들어 마을의 대소사와 좋고 나쁜 일에도 앞장서서 해결해 주는 청년회의 활동도 어느 마을보다 월등하여 자랑스럽게 생각되어 그들의 노고에 필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북리는 마을이 크고 잘사는 마을이기에 출향 향우들도 고향 사랑에 관심이 크다. 전 순창군 향우 회장이신 김상진 회장과 김형오 시인 등 많은 출향인들이 타향에서 성공하여 고향인 지북마을에 때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돕고 있어 그 고향 사랑이 마을의 풍부함과 인정이 넘치게 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행복한 마을이기에 옛부터 내려오는 구전과 설화가 많다. 그 중 국부가 나온 명당터 갓대에 대하여 향지에 기록된 내용을 적어본다. 세상 사람이 성공하면 자기 노력이라 자랑한다.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되는 것이 아니다. 대 자연의 섭리에 의하여 흥망성쇠가 이루어지기에 거부 오나시스도 또 천하를 호령하던 징기스칸도 흥망성쇠의 자연섭리 앞에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원리에서 대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잘살아 보자는 것이 풍수지리이다.
그래서 사람이 일생동안 사는 터를 잘 잡아 살면 건강하고 잘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고장 적성면 지북리를 옛날 갓과 옥대나 금대는 부귀영화의 상징이다. 갓대의 형상이 청룡 백호의 형상이고 방갓에서 내려온 맥은 호랑이 등으로 이 마을 안산이 되니 이 어찌 노적이 아니랴. 이와 같은 대명당이기에 이 곳에 터를 잡은 창봉 양운거가 국부가 안 될 수 가 없었다.
양참봉이 국조실록에 현종 때 흉년이 들어 쌀 수백 석을 내여 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거부였음이 확실하며 인색하게 굴었던 부자들의 형태와는 달랐다. 그러기에 그 재산이 100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대부분의 부자가 당대에 망하는 사람이 많으나 자연의 힘에 의하여 부자가 되었기에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다.
후 정부의 높은 분과 위토답 문제로 알력이 생겨 그 많은 재산을 몽땅 잃고 자손들까지 원안이 생기여 가문이 흉성하게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러나 분명 지북리는 갓대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지금부터 다시 부가 형성되어 잘 사는 마을이 될 거라는 기대가 크다.
양문지가 가문이 흉성한지 300년이 되었기 360년이면 다시 환원하는 연대이기에 부가 지금부터 일어날 거라는 지리학의 향지사 어르신들의 예언이시다.
좋은 마을터에서 부지런히 일하시는 신상환 회장의 부지런함 때문에 행복한 마을 잘사는 마을 부자 마을이 될 거라 믿습니다.
웃 어르신 잘 모시고 마을화합 잘 하시라고 큰 박수와 화이팅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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