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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 -팔덕 장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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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이장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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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02일(금) 10:1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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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병수 이장 | ⓒ 순창신문 | 팔덕면 장안 마을은 팔덕면 소재지에서 서 남 방향으로 5km 지점에 담양군 금성면과 도계로하고 군림공원인 강천산과 분지를 이루고 있다.
장안 마을은 지리에 조예가 깊은 서강 양상화 선생의 장안 용은전기에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호남의 모산 모악산에서 기두하여 생추월산(生秋月山)하고 역룡으로 용추봉에 솟아 남으로 돌아 순창의 명산 광덕산이 동남을 향하여 우뚝 서니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장풍향양(藏風向陽)하니 회룡은산형상(回龍隱山形象)이라. 명기(明基)가 분명하여 순창 제1터가 이곳이라.
이와 같은 큰 터를 누가 잡았을까? 기록이 없으니 알 길이 없다고 기록에 남겨져 있다.
마을 주변에 장군묘와 고려장 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지 않나 추정된다.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약 500여년 전 장수 황씨, 하씨, 윤씨, 김씨가 현재의 이곳에 이주하여 부락을 형성하였다고 본다.
임진왜란 당시 군량미를 저장했던 창고가 있어 평창리라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장안리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금성산성과 관련된 군창(軍倉)이 생기고 감찰 별장을 마을에 두어 그 위세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마을의 규모로 120여호에 1940년대에는 주물공장이 두 곳이나 있어 평창 솥 하면 장안리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마을에 큰 일꾼이며 자랑인 하병수(64) 마을 이장을 찾아가 본다.
강천산에서 제일 높은 광덕산 주봉아래 자리 잡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팔덕 장안마을은 가구 63호 146명의 주민으로 구성되어져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어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장안마을도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75%를 차지하고 있어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지만 서로 도와가며 일손을 해결해 나간다.
예부터 장안마을은 비옥한 땅, 넓은 밭에서 도라지를 재배하여 많은 소득을 올려온 마을이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장안 마을 주관으로 주민들이 직접 도라지 축제를 열어 인근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 마을 주민의 소득과 연관된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장안마을은 군과 도에서도 가장 우수한 생활개선 시범 마을로 선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발전은 주민 및 지도자들 그리고 하병수 이장의 적극적인 활동에서 이루어졌다고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장안마을은 도라지, 느타리 버섯, 한우, 논농사 등 과학 영농으로 농가 소득을 올리는 아주 우수한 마을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장안 마을의 활동상을 밴치마킹하기 위해 다녀가곤 한다.
또한 장안 마을 출향인들은 고향 발전에 한몫을 톡톡히 한다.
장안마을 도라지 축제를 개최할 때 출향 향우들이 협심하여 고향 축제에 직접 참여하여 축제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어 주위 마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을 정도이다.
위와 같이 장안 마을은 훌륭한 역사와 발전적인 마을이기에 훌륭한 설화와 일화도 많다. 그중 장안마을 553번지에 얽힌 설화를 적어본다.
팔덕면 장안리 553번지는 현재 대밭으로 되어있다.
1880년대에는 4칸 초가가 있는 곳이며 뒷동산 동남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본 지번이 거명하게 된 것은 일제식민지로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까지 정치가로 독립운동가로 큰 획을 그었던 고하(古下) 송진우(宋鎭禹) 선생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고하는 1889년(고종 26)에 전남 담양 금성 월률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곳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 아버지를 따라 평창(현 장안)마을로 이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아버지는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고하는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보내게 된다.
그는 소년 시절을 인촌 김성수와 교유하면서 일본유학, 1915년에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김성수와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한편 중앙중학교 교장으로 육영 사업에 헌신한다. 3ㆍ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 중 한사람으로 독립운동을 지도하다가 일경에 잡혀 1년간 옥고를 겪기도 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 한국 민주당을 조직하고 수석 총무에 취임하여 정부수립을 위해 활동하다가 194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공산당 한현우에게 암살당했다.
위와 같이 훌륭한 고하 선생도 어린 시절을 장안리에서 보내면서 꿈을 키운 곳으로 장안 마을의 과거와 미래 역시 무한한 발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장안 마을 주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소망하며 지금도 장안마을을 위해 애쓰고 계실 하병수 이장님께 파이팅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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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팔덕면 장안마을 전경 | ⓒ 순창신문 | |
/자료제공 김기곤 문화원장
/취재 남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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