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우리 민족은 가을이면 시제(時祭)를 지내오고 있다.
시제의 또 다른 표현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시제는 해마다 음력 10월에 5대조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드리는 제사라 한다.
시제 축문에 시제를 지내기 전에 눈이 안 왔을 때는 상로기강(霜露旣降), 눈이 한번이라도 왔으면 상설기강(霜雪旣降), 봄에 지내면 우로기강(雨露旣降)으로 쓴다.
한해 동안 농사를 지은 햅쌀로 떡을 만들고 밥을 짓고 과일 등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으로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80년대 초만 하드라도 집안의 시제도 기다려지고 마을 인근 산소에서 지내는 다른 집안의 시제도 기다려졌다. 왜냐하면 그때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나무꾼이 어느 집안 시제 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다가 그 날은 산소 인근에서 일부러 나무를 하기도 하였다.
우리민족은 적은 음식으로라도 배고픔을 함께 이겨나가려고 하는 민족이 아닌가. 또한 시제 답 농사를 짓는 일은 대단하였다. 남의 집안 시제 답이든 자신의 집안 시제 답이든 얻어서 농사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일반 논은 수확한 벼를 주인과 반반씩 하였다. 그러나 시제 답은 벌초와 시제를 지내기 때문에 조건이 조금 나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가족들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이전에는 큰아들이 부모와 한집에 살지 않고 분가를 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농촌 집집마다 노인만 계신다. 시제 답을 지을 사람이 없다. 시제 답은 이미 천덕꾸러기가 된지 오래다.
타 지역에 있는 윗대 어른들이 마련한 산소에 딸린 시제 답은 팔아 가고 있다.
음식을 장만하여 시제를 지내도 먹을 사람들이 없다. 심지어는 시제를 지낼 사람이 없다.
자손들이 전국 각처에 흩어져 생업에 종사하다보니 시간이 나지 않는다. 시간을 낸다해도 짧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30대 중반 이전인 2~3세들에게 시제 얘기를 꺼내보셨을 것이다. 참여도 권해보셨을 것이다.
마음을 전해도 이해하고 따를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이들은 왜이리 바쁜지...
이게 아닌데 하고 갈등을 느껴 보지 않은 분은 없다고 본다.
우리네 형제들이 타향에서 지쳤을 것이다. 고향에 살고 있는 부모형제들도 일과 외로움에 지쳐 있다. 그럴수록 잠시 시간을 내자. 지칠수록 쉬어가자.
고향에서 만나자. 고향 발전하는 모습도 보자. 변치 않은 포근한 인심도 느껴보자.
서로 위로를 해보자. 서로 관심을 가져보자. 산골짜기처럼 깊게 패인 얼굴 주름살도 서로 펴주자.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조상 산소에 가자. 엎드려 지난해 도와 주신 점 고맙다고 하자.
앞으로 계속 보살펴 주시라고 부탁도 해보자. 그래서 동기감응(同氣感應)을 느껴보자.
라디오가 어디에 있더라도 소리가 잘나려면 방송국이 이상이 없어야 한다.
방송국이 조상이라면 라디오는 자손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타향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고향이 방송국과도 같다고 본다.
고향에 가는 것은 자동차로 보면 엔진오일을 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자.
시월의 고향은 타향에 계시는 형제들에게 어서 오라고 ‘고향 문’을 사방으로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다.
배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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