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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법조계 대부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청백사상

초대 대법원장 취임으로 법통을 세우다 (4)

2007년 11월 15일(목) 11:49 [순창신문]

 

수신제가 없이 치국평천하 할 수 없다

불의에 빠져도 법관은 정의를 최후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가인 김병로 선생은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하여 9년 4개월 동안 우리나라 사법의 기틀을 다졌다.


재임 기간중 선생은 법전편찬사업을 주도하고 법원의 체계를 새우는 데 심혈을 쏟았으며, 판결을 둘러싸고 이승만 대통령과 대립하면서도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 나갔다.




친일파, 민족반역자 처벌




1948년 건국 초기 대법원장의 책임을 맡은 그에게 지워진 짐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처단문제였다.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아직까지 정부 요직에는 일제하에 있던 관료들이 득세하고 있었고, 일제 고등경찰이 경찰의 핵심부서에서 실권을 틀어쥐고 있어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의 처벌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국회에 상정하였으나 처벌받아야 하는 그들은 오히려 선생을 ‘빨갱이’로 몰았다.


심지어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1월 첫 담화에서 이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민족 정기를 바로잡으려는 시대적 요청에 찬물을 끼얹졌다.


그럼에도 선생은 반민특위 위원장으로써 반민자들의 검거에 박차를 더했으며 공산당을 잡는 수도청의 귀신이라는 노덕술마저 검거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덕술은 공산당을 타도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라며 대통령은 이에 대해 반민특위 특경대 해체와 반민자들의 체포 중지를 종용했다.


이에 선생은 정면으로 반민특위 활동의 적법함을 주장하였으나 이 대통령은 경찰을 동원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 특경대를 해체하고,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켰다. 이것이 6ㆍ6사건인 것이다.




눈엣가시 사법부




대법원장으로서의 선생은 건국 초기의 무질서와 혼동, 그리고 이 대통령의 권위를 덮어놓고 따라가는 국가 분위기 속에서 사법부의 존엄과 권위를 확립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선생의 의연한 자세에 대해 이 대통령을 비롯한 그 추종 세력 및 행정부는 갖가지 회유와 압력을 가하였으며 1955년 2월 정기국회에서 이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사법부에 불만을 표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법부의 수장인 선생은 “재판관은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하는 것으로 어떠한 사람의 간섭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으며, 그렇게 하도록 사법 풍토를 만들었다.


정치적인 사건의 재판에 있어서도 어느 쪽이 유리한 쪽이냐 보다는 공정한 법 이행에 심혈을 기울이도록 법원 감독관들에게 항상 강조했다고 한다.




수신제가 없이 치국평천하할 수 없다




선생은 대법원장 취임 때부터 ‘수신제가없이 치국평천하할 수 없다’를 강조하며, ‘세상 사람이 다 불의에 빠져간다 할지라도 우리 법관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지켜야할 것’이라고 사법부의 독립을 다짐했다.


‘사법관으로서의 청렴한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법부의 위신을 위하여 용감히 범관자리에서 떠나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선생의 사법부 생활에서도, 공무원 범죄, 특히 법조인의 뇌물수수에 대해서는 한치의 정상 참작도 고려하지 않았다.


실제로 고액을 받는 대법원장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점심을 국수로 때우기가 일쑤였고, 명절때 의례적인 선물마저도 거절할 만큼 엄격하게 청렴을 지켜 나갔다.


또한 선생은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철저하게 지킨 분이었으며 재판기록을 보는 것이 취미가 되다시피 하여, 법관들에게 재판장이기보다는 선생님과 같은 역할이 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항거




일제의 폐망 후 엄청난 혼란기에 권력을 장악한 이승만은 재선을 하기 위해 1952년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안 강권을 발동하여 계엄령하에서 통과 시켰다.


1954년 3선 금지 헌법 조항을 고치기 위해 국회에 상정, 사사오입으로 개헌을 관철시키고 만다.


이에 대법원장은 수학의 원리에 억지를 붙여 강변하는 자유당 정권에 대한 사법부 수장으로써 정면 도전, 그러나 아쉽게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은 막아낼 수 없었다.


선생은 대법원장 퇴임 이후에도 자유당 의원만으로 통과시킨 국가보안법 등의 무효를 주장하고, 국민은 악법 폐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렇듯 선생은 대통령과의 대립에서도 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법원장으로써, 이 나라를 지켜나가야 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소신대로 정도를 걸었다.


 



<대법원 연합부 재판광경(1956.5)>


<김병로 초대대법원장 흉상(대법원 1호 법정>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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