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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순창군 종교사 / 원불교 순창교당

이태연 · 이지일 교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관내 법음 널리 퍼져
임동호 씨의 도움으로 1958년 봄에 순창교당 완공
1999년에는 동계선교소가 신설
사회복지법인 한울안과 함께하는 순창군 가족센터

2024년 09월 11일(수) 11:11 [순창신문]

 

↑↑ 문정현 교무ㅡ원불교 순창교당 현 교무

ⓒ 순창신문---



원불교(圓佛敎)는 1916년 박중빈(소태산 · 1891~1943)이 깨달음을 얻은 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 아래 탄생한 종교다.

세계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정신문명이 약(弱)해질 것을 예견하고 정신문명을 이끌어나갈 새 시대 새 종교인 원불교.

박중빈은 깨달음 진리의 상징을 둥근 원[○]으로 표현했으며 이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았다.

박중빈을 ‘소태산 대종사’라고 부르는데, ‘소태산((少太山)’은 호이고, ‘대종사(大宗師)’는 원불교 교조에게만 쓰는 호칭이다.

박중빈은 1891년 전라도 영광군 백수면 길용리 영촌에서 태어났으며, 20여년의 구도 끝에 1916년(25세) 4월 28일(대각개교절 大覺開敎節) 새벽, 정신이 상쾌해지고 전에 없던 새로운 기분을 느끼면서 일원(一圓)의 진리를 깨달았다.

원불교는 불교와 근본적 진리는 상통하나, 소태산이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인 법신불(法身佛) 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 · 생활화 · 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하고,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한 종교다.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계는 동방이 중심이 되며, 특히 우리나라가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으로서 중심 국가가 될 것을 예견했다.

1948년(원기 33년) 2월 15일 관촌교당 이태연(李泰然 1914~1963) · 이지일(李智一 1915~2003) 교무가 순창면 가잠 마을에 첫 출장 법회를 시작으로 순창 일원에 법음이 전해졌다.

가잠 마을은 이지일 교무의 외갓집이었으며, 1940년에 이지일 법사의 추천으로 입교한 권일경(權一經 1918~1985)씨와 때마침 관촌 교당에서 순창면 가잠 마을로 이사를 한 탁지은 씨가 자택에 초청 출장 교화를 시작한 것이다.

이태연 교무는 임실과 순창을, 이지일 교무는 순창과 창평을 매월 한 차례씩 이어갔다.

당시 교통이 불편했던 관계로 관촌에서 백여리 길을 걸어서 혹은 트럭을 얻어 타고 다녀야 했으나 한 달에 두 번씩 가지는 출장 법회를 거르는 일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6ㆍ25전쟁으로 1년간 쉬었다가 이듬해 교도들을 다시 규합하여 교도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법회를 보았으며, 이들의 노력에 30여명의 동지를 얻게 되며 순창 일원에 법음이 널리 퍼졌다.

원기 36년(辛卯)에는 권일경(權一經), 권홍원(權弘源) 두 사람의 주선으로 가남리 민도정(閔道正)씨 사랑채를 빌려서 모이다가 경제도 한난(寒暖)하고 교통이 불편함에 부득이 광주지부 임선양(林善楊 1923~2013) 교무에게 출장 법회를 부탁했다.

1954년(원기 39년) 초대 순창교당 묵타원 권우연 교무가 부임했다.

권 교무는 1954년(원기39년) 봄, 교당을 읍내로 옮기기로 하고, 최소정 씨와 교도들의 주선으로 순창읍 내에 전셋집 한 칸을 얻어 교당을 읍내로 옮기게 됐다.

이후 권순교의 열의와 임효순, 선정모씨 등의 협력으로 그해 11월에 초가 3칸을 마련했으며, 당시 어려운 교당 살림을 알뜰히 보살펴 온 권정훈 씨와 순교 활동의 주역을 맡았던 최도정 씨의 노력이 순창교당 중흥의 초석이 되었다.

교도가 하나둘 늘어가고 교당의 운영이 원활해짐에 따라 예회(법회)날이면 법당이 비좁게 되어 법당신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교당신축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을 때 임성린(임동호 순창수리조합장) 씨가 법당신축을 자청했다.

1957년에 임동호(임성린)가 임태화의 연원으로 입교하였고, 그의 도움으로 순창교당을 새로 지어 1958년 봄에 완공했다.

당시 최성자(崔聖子) 교도의 아들 임윤화(林允華 불심 도문스님 부산 중생사)가 삼촌인 임동호에게 교당을 지어달라고 졸라대었다.

임윤화의 주선과 교도들의 성금으로 법당을 남계리 149평 대지 위에 19평을 신축한 것이다.

임윤화는 180여 집을 돌며 볏짚을 조금씩 얻어 지붕을 이었다.

임동호 자신은 전셋집을 살면서도 친구인 노길룡에게 자기 집 대신 교당을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교당으로 사용한 초가는 매도하여 교당 옆 와가(瓦家 기와집) 1동을 매입하여 식당채로 사용하는 한편 교당 주위 담장공사는 물론 범종까지 마련, 교당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58년 봄에 순창교당이 완공된 것이다.(원광)

이어 1961년 2대 친타원 김봉식 교무, 1966년 3대 효타원 양혜련 교무, 1969년4대 봉타원 김지영 교무가 부임하여 순창교당 교무로 봉직했다.

1961년(원기45년) 친타원 김봉식 교무, 1966년(원기 50년) 효타원 양혜련 교무에 이어 1969년(원기 53년) 봉타원 김지영 교무가 부임했다.

김 교무는 순창지부 학생회를 9월 7일 결성(30명)하고 회장에 권봉철, 부회장에 강선자 씨가 선출되었다.

또 당시 순창지부 교도회장이었던 강덕정 지부장의 희사금과 몇몇 교도들의 협조로 교당 옆 대지 1백36평을 교당부지 마련하기도 했다.


(시조) 희망의 집

<순창교당 이종철 학생회원>

동이 튼 새벽녘에 두 손 모아 합장하여님에게 절하옵고 오늘에도 복 주시라다시 또 기도하고서 손을 내려 절한다.경천가 언덕 위에 님의 집은 행복하라.오너라 손 차시며 웃음으로 부르시네!다시 또 부르실까, 봐 어서 빨리 들렀다.일원상 열린 문에 두 손 모아 절하옵고대종사 진리심에 노래하고 기도한다.원천지 가는 길마다 복이 되라 아문다.

출처 : 1971.04.15. 원불교신문 (wonnews.co.kr)


최규학 교무 시절에는 교당 대지를 확장, 기공하여 12월에는 건평 43평 총공사비 1백 8십만 원의 새 교당을 준공했다.

강덕정 지부장의 1백50만원 희사와 한남순, 서혜인 씨 등 몇몇 교도들의 성금과 노력 동원으로 1959년 5월 3일 봉불 낙성식을 하고 12월에 건평 42평, 총공사비는 2백70만 원을 들여 오랜 숙원이던 오늘날 현 법당인 43평 건물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신도는 남자 444명, 여자가 803명이 등록되어 있었다.

원불교 순창교당 신축 낙성 및 봉불식은 1974년(원기 59년) 5월 3일 11시 김근수 교정원장, 오희원 공익부장을 비롯 인근교당 교무와 경찰서장 등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대산종 법사는(오희원 공익부장 대독) 치사를 통해 ‘법당은 만생령의 집이며 지혜를 밝혀 복락을 마련하는 곳’으로 활불이 되길 당부했다.

이날 법당신축에 공로가 컸던 강덕정 지부장에게 종법사의 감사패, 한남순 주무는 교정원장상을 받았다.

신축된 순창교당은 1백50평의 대지에 1973년 9월 16일 공사를 시작, 1974년 4월 30일 준공을 보았다. (원불교신문)

1979년 박현일교무, 1983년 김대심 교무, 1988년 송현조 교무, 1992년 김현성 교무, 2001년 정하익 교무에 이어 2009년 최경도 교무, 2012년 방길튼 교무, 2013년 고세천 교무가 순창교당 교무로 봉직했다.

순창교당(김현성 교무, 임동명(임병대)교도회장)때인 1999년 10월 19일 순창교당 전 교도의 정성으로 동계선교소가 신설됐다. 이종진 교화부장, 황인철 문화부장, 임득춘 순창군수를 비롯한 내외 인사와 동계면 15개 리 이장 전원과 지역유지 등 호법동지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거행됐다. 동계선교소는 순창교당 정성제화 교도가 어머니(故 조석봉 교도)의 유업을 받들어 희사한 대지 158평을 매매하고, 동계면 현포리 연산마을 311번지와 373번지 밭 302평을 매입하여 추진했다. 전북교구청으로부터 선교소 인가를 받아 5월20일 기공식을 하고, 건평 60평(법당 30평, 생활관 30평) 의 아담한 1층 슬래브 건물을 총소요경비는 1억 7천여만 원을 들여 완공하였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원불교 전북교구는 2015년 6월 문정현 교무를 순창교당 주임 교무로 인사 발령한다. 이는 2011년 순창군 다문화센터가 (사)한울안운동 위탁법인 변경 후 2014년 수탁 운영기관으로 재지정(2015~2017)되어 센터를 운영할 적임자로 발령한 것이다.

문정현 교무는 순창군 가족센터(다문화센터)장으로 취임하여 한국어교육 운영기관 지정, 4대 종단과 함께하는 김장 · 반찬 나누기, 다문화가족 어울림한마당, 순창군 다누리 나눔 한마당, 순창군 다문화가족 어울림한마당, 외국인도움센터 등을 운영했다.

2024년 현재 사회복지법인 한울안과 함께하는 순창군 가족센터는 여성가족부 가족정책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다양한 가족들을 위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가족 지원 서비스 제공하고 있다.

일반가족,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맞벌이 가족, 이혼 전후 가족,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가족 지원을 위한 상담,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이 결합한 통합서비스와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등 가족 돌봄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은 방문 교육, 통번역 지원, 언어발달지원, 한국어교육 지원, 글로벌 마을 학당, 다문화가족 어울림한마당 행사, 청소년 진로 지원, 외국인노동자 가족학당, 기초학습지원, 원어민 강사 지원, 외국인 주민 지역 정착 맞춤형 지원, 글로벌 마을 학당, 다문화 어울림 문화지원, 국적 취득 반 운영 등 가족 지원 사업과 맞벌이, 한부모가정을 위해 아이 돌봄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순창군 특화사업으로는 모국 방문 지원, 결혼이주여성 자동차운전면허 취득 교습비 지원, 다문화자녀 스피치 아카데미 운영, 식생활 개선 요리 교육 등을 시행하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남융희 기자.

출처 : 원불교신문, 창평교당 60년사, 원불교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월간 원광, 순창군 가족센터, 호남지방에서 발생한 3개 종교의 지역적 확산 과정과 특성 증산교(甑山敎), 원불교(圓佛敎),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중심으로


↑↑ 원불교 순창교당 연원 역대교무

ⓒ 순창신문---


↑↑ 원불교신문 1974.06.25. (1957년 원불교 순창교당 원내 강덕정 교도회장)/ 원불교신문

ⓒ 순창신문---

남융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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