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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순창군 종교사 / 천주교

2024년 07월 24일(수) 10:46 [순창신문]

 

↑↑ 교리교사 연수회 1982. 7. 27 / 사진 제공 임정화

ⓒ 순창신문---



오룡촌(학선) 공소 · 문화재청 근대문화 유산 문화재로 등록되기를.

1882년(고종 19)에 쌍치면과 복흥면에 어은동, 내동, 대판이, 아청이, 밤송이, 운행이, 먹산이, 움터골, 갈재, 시루봉 공소(公所)가 있었다.

오룡촌 공소 설립 시기는 1889년으로 본다. 오룡촌(학선) 공소는 1918년 15칸 공소 건물로 증축하여 사용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소실 후 1955년 봄에 소실된 강당의 기초 위에 5칸으로 재건되어 현재까지 70여 년이 됐다.

회문산을 중심으로 천주교의 역사 속에 오룡촌(학선)공소를 모태로 광주대교구가 생겼으며 쌍치 공소도 만들어진 것이다.

오룡촌(학선)공소가 광주대교구의 모태였다는 상징성 때문에 전북지역보다 광주ㆍ전남 지역에서 더 유명하다.

이젠 문화재청 근대문화유산 문화재로 오룡촌(학선) 공소가 등록되기를 희망한다. 근과거(近過去)의 흔적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1860년(철종 11)을 전·후해서 전라도 지방 어느 곳이든 피난지가 될 만한 곳이면 교우촌이 없는 곳이 없었다. 교우촌 중 팔덕면 덕천리에 천주교 신자들의 옹기마을은 1970년까지 생산하였고, 전라북도 순창군과 임실군 경계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병오박해 당시 처형당할 때 동생 김남식(프란치스코)과 조카 김현채(토마스)가 이곳 회문산에 기거했으며, 두 사람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

이외에도 회문산 일대에는 크고 작은 공소(교우촌)가 58곳에 이르렀으며, 천주교 신도들이 좀 더 안전한 피신처를 찾다가 이곳 오룡마을로 오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처음에는 고당산 자락에 머물렀으나 몇 해 뒤 지금의 공소 자리에 터전을 옮겨 공소와 숙소를 짓고 대단위 신앙공동체가 형성됐다.

대표적인 곳으로 순창군 학선리 오룡마을 오룡촌 공소이며, 병인박해 때인 1866년(고종 3) 천주교 신도들이 몸을 숨긴 교우촌이다.

1882년(고종 19년) 어은동 · 내동 · 대판이 · 아청이 · 밤송이 · 운행이 · 먹산이 · 움터 골 · 갈재 · 시루봉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던 천주교 신자들이 힘을 모아 리우빌 신부와 함께 순창지역에 공소를 건립하면서 순창에서 본격적인 천주교회의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내동 · 대판이 · 아청이 · 먹산이 등은 쌍치면에 속해있고, 어은동 · 밤송이 · 움터 골 · 신적 등은 복흥면에 소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쌍치면과 복흥면을 중심으로 한 순창지역의 중심지는 오룡촌 공소였다.

이를 계기로 1883년 서지동 공소, 1885년 추감 공소, 1886년 골안 공소가 세워졌으며 리우빌 신부가 담당했다.

1889년에는 개운리와 오룡촌에 공소를 설립했으며, 베르모렐 신부가 부임했다.

1890년 홀기미 현 종암 공소, 1891년 모아동 일운이 공소, 1892년 소태정이 공소, 1893년 상서리 · 팔용천 · 한가랏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베르모렐 신부가 담당했다.

1894년 농바위 · 사리실 · 국동 · 오천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비에모 신부가 담당했다.

1895년 라크루 신부가 담당하는 민재 · 한가 공소가, 1896년 옥정 공소가 설립됐다.

1896년 12월 30일 뮈텔 주교 · 라트루 신부가 순창 아청이 공소(회장 장 아오스딩)를 방문해 신자 30명이 ‘고해성사’를 했다.

1897년에는 드예 신부가 담당하는 쇠도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뮈텔 주교 · 라크루 신부가 국동 공소 방문해 신자 40명이 ‘고해성사’를 했다.


1901년에는 김양흥 신부가 담당하는 공근이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05년 11월 21일부터 22일에 뮈텔 주교 · 페네 신부가 개운리 공소를 방문해 견진식 37명과 신자 120명이 ‘고해성사’를 했다.

1905년 11월 23일 뮈텔 주교가 국동 공소를 방문해 견진식 52명을 하였으며, 1918년 12월에는 오룡마을에 15칸의 공소 건물을 짓고, 드망즈 주교의 주례로 ‘매괴의 성모’(註:매괴는 붉은 꽃, 즉 장미를 뜻하며, 성모 마리아의 이르는 호칭 중 하나임)를 수호자로 하여 봉헌식을 했다.

1920년 학선리 공소회장이 원선시오와 종암리 공소 회장 김 안드레아 씨 등이 몇몇 교우가 협의하여 학선리 공소에 제의 및 제구를 장만하여 공소의 유물로 보관하기도 했다. 1929년에 오룡촌 공소에 사제관을 건축했다.

또한, 쌍치면 오룡촌 공소에서는 1929년 8월에는 정읍 산내면 능교리 본당의 주임 김창현 신부가 집전한 가운데 성모승천대축일에 신자 600여 명이 ‘고해성사’하고 30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첫영성체를 했다.

미사 전날에 청년들이 ‘선생선종 악행악종(善生善綜 惡行惡綜)이라는 성극(聖劇)을 공연했는데 1,000여 명이 관람할 정도로 교우 수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험한 오지에 살면서 오로지 천주 신앙을 실천해 온 신도들은 어려운 일제 강점기를 이겨내고 해방을 맞이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민족의 비극인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되어 다시 수난을 겪게 되었다.

전쟁 중에 유서 깊은 오룡촌 공소가 불에 타면서 이 지역 천주교의 중심이었던 공소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신도들은 보릿고개를 겪으면서도 1954년 가을부터 공소 강당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건물은 소실된 강당의 기초 위에 5칸으로 지어졌으며, 마침내 1955년 봄에 완공되어 신자들은 새 공소에서 봄 판공(註:신자들이 일 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해성사)을 보았다.
지금의 오룡마을 오룡(학선)공소는 수 십년 전부터 미사를 모시고 있지는 않으나 인근에 3개의 공소(종암 · 내동 · 석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순창성당‘은 1960년 3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되고 이상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1958년 8월 당시 남원 본당 박성운 신부는 순창에 신자가 있는지 찾아보라는 김현배 주교의 지시에 따라 이만준을 찾아가, 장차 교회가 순창으로 진출할 것을 의논했다.

박성운 신부는 즉시 남원에 사는 진주 사람 조용진(라우렌시오)을 전교 회장으로 순창군 복흥면에 3칸 접집을 지어서 파견했다.

1959년 봄. 김현배 주교 · 박성운 신부가 부지를 물색하러 순창을 내왕하자, 이희주 등 4명이 입교하여 조용진 회장으로부터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다. 1959년 5월,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205번지에 소재한 논 1,400평을 매입. 당시 남원 본당 김영규 회장과 정민호 부회장, 윤인식 교우의 직장이 순창이었는데, 이들이 박 신부에게 찾아가 전부터 박 신부가 성당 용지로 매입하고자 하는 동산 앞에 있는 논이 나왔다고 전해줘 이들의 협조로 매입했다.

7월에는 남계리 논 가까이 있는 신상우(申上雨)의 별장(신치술의 별장으로도 불림)이었던 소림사와 동산을 매입하여 용지를 마련했다.

1924년 순창학교조합 소유의 부지에 천도교 순창교회 소유로 있다가 철폐되면서 소유자가 바뀌었다. 이후 1929년에는 신간회와 순창 유림들과 함께 순창유치원을 설립한 신문휴(申文休)의 소유였다.

신문휴는 6.25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갔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신문휴의 땅을 급히 판다는 소식 알려져 1959년 남원성당 박석운 신부가 김영규 회장을 내세워 매입했다.

동산 그 밑에는 옛날 서당이 있었고, 속칭 고산(鼓山)이라 하였는데 수목이 울창(鬱蒼)하여 우리 순창의 승경(勝景)이었다.

1960년 3월 19일 순창성당이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이상호(아오스딩) 신부가 부임했다.

1968년 순창성당 제4대 문정현(바르톨로메오) 신부 때 순창군 내 천주교 신자 수는 4개 면 공소 신자 포함 723명(남 369명 · 여 354명)이었다.

1982년 5월 동계공소를 신설하였으며, 1995년 말, 권이복 주임신부는 천주교인들이 마을 단위로 흩어져 있어서 면 소재지에 통합 공소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720평(2필지)의 대지를 사들이고 쌍치 공소를 착공하여 건평 30평 한옥 5칸의 공소를 준공했다. 1996년 12월 8일 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했다. 이로써 쌍치면 관내의 신자들이 바라던 대로 모든 신자가 한곳에 모여 일체감 속에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순창 본당에서 신부님이 내방하여 미사를 모시고 있으며, 특히 이곳에는 한복을 입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2011년 5월 21일에는 복흥성당 봉헌식을 했으며, 1983년 10월 복흥공소 용지 매입 후 28년 만이었다.

2007년 10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개구쟁이 박정수 학생이 오룡마을 구석구석을 안내해 준 기억과 2013년 10월 19일 쌍치면의 공소들을 찾아가 본 기록을 다시 보았다.

당시 내동 공소 건물은 남아 있으나 오래전에 폐쇄되었고, 종암 공소 건물도 공소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성가정(聖家庭. 성모 마리아, 성 요셉, 아기 예수로 이루어진 거룩한 가정)상이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룡마을 학선공소는 미사를 모시고 있지는 않았으나, 어린 나이에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평생을 천주교인으로 살아온 김양순 요안나(90세 2013년 10월 19일 인터뷰 · 사진 참조) 할머니의 손길을 받아 정갈한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단에는 고운 빛깔의 꽃들이 햇살을 받으며 피어 있고, 잘 다듬어진 마당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공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공소 안으로 들어가니 오랫동안 고여 있던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으나, 그곳과 함께해온 김양순 할머니의 이야기로 이내 낯 설음은 사라지고 있었다.

주일이면 인근 마을의 신자들이 모두 공소에 모여 미사를 모시고, 마치 동네잔치라도 하듯이 밥 한술을 나누던 때도 있었고, 6·25전쟁 때는 군인들과 북한군이 번갈아 가며 숙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마을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신자들도 흩어져 공소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김양순 할머니는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공소 처마 밑에 오래된 종이 매달려 있었으며, 주일이면 맑고 깊은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고 환영해 주었을 종이 그 언젠가 다시 그 종소리가 계곡을 지나 산을 넘어 넓게 울려 퍼지기를 바라면서 오룡촌을 나섰다. (순창문화 4호 발췌)

“빚지고 싶지 않습니다. 6억!” (순창신문 2020년 3월 18일자 발췌)

“가난한 시골 성당 310명의 교인이 2년 만에 13억 원을 모았습니다. 또 성전 신축 기금 바자회, 성당소유 용지 판매, 광고와 고추장 판매 대금 등 12억 원을 합해 현금 25억여 원을 확보했습니다.”성당 건축비 28억여 원과 성물 비품 3억여 원 등 총 31억여 원 중 25억 원은 확보했지만, 아직 6억 원이 부족 합니다” “빚지고 싶지 않습니다. 6억 !” 이사정 라파엘 전주교구 순창성당 주임신부의 말이다.

2020년 12월 5일 순창성당(천주교 전주교구 순창 본당, 주임 이사정 신부) 60주년을 맞아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했다. 순창성당은 대지면적 4,149제곱미터(㎡), 총면적 997.63㎡로 지상 2층 건물이다. 성전과 사제관, 수녀원, 교육관 등을 갖췄다. 성당은 5미터 높이 암반 언덕 위에 지어졌다. 신축 공사비는 이사정 신부님의 전 재산 봉헌으로 순창성당을 짓는 도화선이 되어, 총 33억 원의 공사비 중 1,897명이 21억 6,000만 원을 모았다. 본당 황인선(아우구스티노) 사무장이 1억 3,300만 원, 본당 소유 논을 팔아 종잣돈을 마련하고, 새 차 사려고 모은 돈 2,000만 원을 봉헌한 자매, 순창성당 건축기금 모금 광고를 보고 5,000만 원을 낸 자매, 신자들 가정마다 봉헌하고 바자회 열어 기금 조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의 정성이 모여, 비 새는 슬레이트 지붕과 썩어가는 수녀원 바닥, 폐가 같은 교육관을 헐고 새 성당을 짓는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을 마쳤다”라고 주임신부의 결단과 신앙의 힘에 감사했다.순창성당 역대 주임신부는 1960년 3월 19일 초대 이상호(아오스딩), 김영구(베드로), 정재석(요셉), 4대 문정현(바르톨로메오), 박창신(베드로), 박종상(가브리엘), 성태수(이냐시오), 강덕행(요셉), 김병환(사도 요한), 엄기봉(베드로), 박기준(라우렌시오), 양경배(베네딕도), 나춘성(스테파노), 14대 권이복(베네딕도), 정승현(요셉), 문선구(비오), 송호석(실베스테르), 박종탁(마태오), 이상용(야고보), 한기호(세례 요한), 21대 이사정(라파엘), 공현성(요셉), 23대 소재나 (가브리엘) 신부가 2023년 1월 17일 부임 받아 소임을 다하고 있다.

출처 : 디지털순창문화대전, 순창군지 1968년 · 1982년, 순창신문 2020.3.18, 순창문화원 순창문화 4호. 1930년대 天主敎 全羅監牧代理區 설정 연구

/ 정리 = 남융희 기자.

↑↑ 순창공소 종탑 성탄절 기념 1959년 12월 25일 / 사진 제공 임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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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성당 영세 기념 1961년 4월 2일 / 사진 제공 조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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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천주교회 서수녀 송별기념 1961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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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오룡촌 공소 전경 / 박정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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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오룡촌 공소 전경 / 김양순 요안나(90세 2013년 10월 19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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