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십 년 전 선친께서는 관전리에서 한약방을 하셨다지요.

= 일제말기 6ㆍ25동란을 거치면서 산골에 사람들은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였습니까? 저희 집은 아버지께서 한약방을 하였기에 조금 나은 편이였습니다. 동계면에서 우리 집 일화가 많습니다만! 그 시절에는 돈을 까지고 와서 약을 짓거나 침을 맞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보리나 쌀 등이었지요. 그도 넉넉지 못하여 급하면 빈손으로 찾는 환자가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돈 안 가져 왔다고 그냥 돌려보내신 적이 한 번도 없었었습니다. 외상으로 약을 지어 주고는 장부에 적어 놓았다가 가을 추수가 끝나면 나는 장부 들고 마을을 돌며 곡식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못 받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왜 못 받아 왔느냐고 한 번도 물어보신 적이 없었습니다. 두 번 다시 받으러 간적도 없었습니다. 바로 장부에서 이름을 지우셨지요. 나는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때 동아당 한약방 양복규 선생님도 아버지께 한의학을 배우셔서 지금 얼마나 많은 사회 봉사활동을 하고 게신지 모두가 아버지의 가르치심의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 동계면민의장 대통령표창 등 50회 이상의 상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대한적십자사활동을 35년을 해왔습니다. 사회봉사활동이 나의 천직으로 알고 살고 있습니다. 2002년에 2만 시간 자원봉사 표창(서영훈 총재)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이웃돕기 사회봉사단체 활동을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5시간씩 계산하면 15년을 한 셈입니다. 상 받는 것이 달갑지는 안습니다. 어떻게 알고 주는지 일 년에 한 두 번씩은 상 받으러 다니느라고 시간을 빼앗깁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애향심도 남달라서 재전동계면향우회 회장을 오랫동안 맡아 봉사하시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어떤 수익이 있어서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고 남을 위하여 바쁘게 돌아다니다 저녁 늦게 귀가 후 누워 생각하면 동계 관전마을 어릴 적 추억과 부모님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이렇게 건강주심도 넉넉한 마음 주심도 베풀 수 있도록 부를 주심도 감사할 뿐이죠. 아마 내가 태어난 터가 좋아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재전 동계향우들은 성공하신 선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런대도 저에게 재전동계면 면민회장을 맡겼으니 감사할 뿐이죠. 감사한 마음으로 6년 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매년 동계중 고등학교 학생 중 5명을 추천받아 장학금 1인 30만원씩 지급해왔습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지속적으로 그 사업만은 계속 할 것입니다. 동계면 사무소, 초등학교, 노인회관 등에도 기회가 닫는 대로 찾을 생각입니다.
■ 회갑을 훨씬 넘어 고희가 다가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 전북내사랑꿈나무재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주여성자녀돕기운동 결손아동자녀돕기 운동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시골에는 외국인 자녀 할머니들이 키우는 결손자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바르게 자라서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남은 여생도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할생각입니다.
■ 임규래 씨는
1. 동계면 관전리 출신 동계초등학교 15회
2. 1945년 5월 14일생
3. 재전 동계면향우회장
4. 대한적십자사 중앙협의회 부의장
5. 전북 내사랑꿈나무 재단 이사장
/자료제공=신민수 전주지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