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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소녀시인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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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4월 26일(수) 11:11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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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봉애 시인.
순창 문인협회에서 최고령의 나이로 95세 영면 직전까지 창작활동을 하시다가 순창요양원에 들어가신지 두 달도 안 되어 기어이 우리의 곁을 떠났다.
항상 반듯한 자세로 꽃을 좋아하면서 만년 소녀 같고 조용하시던 생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순창문인협회장을 맡던 2017년 봄 총회자리에서 외람되게도 가게자리 하나를 문인협회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배려해 줄수 없느냐고 물었을 때 앞 가게는 모두 임대 되었고 살림집으로 썼던 뒤에 공간이 비어있는데 그것이라도 쓸려면 쓰라고 하여서 5년간을 무료로 문인협회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순창문학 22호부터 26호(2021년)까지를 펴낸바 있다.
그동안 우리 문인들이 사랑방처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또록 배려해 주어서 순창문학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원들의 친목과 각종 문학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였으니 전주 문학 대동제 참석이나 하동 박경리 문학축제 참석과 각종 문예지출판 기념식 때의 시 낭송, 지역신문에 끊임없이 기고하시던 창작 활동 등은 우리 후배들이 길이 본 받아야 할 귀감이라 하겠다. 특히나 일품공원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친구여 편히 쉬시라”라는 자작시를 낭송하시던 모습은 우리 순창군민들에게 큰 공감을 주기도 하였다.
이 시를 일품공원에 자비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아쉬움을 우리 후배들이 풀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안타가울 뿐이다. 일제 때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열여섯 나이에 남원에서 순창으로 시집 온 시인은 친가 부모님을 못잊어 “못다한 사랑”이라는 시로써 노래했으며 순창에서 부군과 함께 신흥 공업사를 운영하여 가정을 안정시키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타계하자 문패를 그대로 걸어 두고서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쓰다듬고 다니는가 하면 임종직전까지 가계부를 적어서 자승에 가면 남편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자기 생활에 철저 하였던 분이다.
평소 문학 활동 외에도 틈틈이 서예를 익혔으며 게이트볼 회장으로도 활동하였고 북은 부락의 노인회장으로도 봉사 할였다.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빈틈없이 살다 간 정시인은 순창문인협회의 자랑이자 꽃 이였는데 이제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렸으니 김영랑 시인이 노래한 “모란이 피기까지는”라는 시가 생각나는 4월의 슬픈 소식에 다 함께 명복을 빌 뿐입니다.
본인이 남긴 시집 “잊지 못하리” 는 유명을 달리한 정 시인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일 것 같아 여기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잊지 못하리
성 원 정 봉애
한마디 말도 없이 홀연히 떠나버린 당신
이토록 보고픔 어찌 하오리까
고요 속에 아른 아른 아린 그리움
어찌 하오리까
가슴깊이 젖어드는 끈끈한 정
어찌 하오리까
마디마디 묻어나는 님의 향기
어찌 하오리까
이왕에 가버린 사랑
어찌 하오리까
혼자 서만이 쓸쓸히 한잔 술에
외로움 삼키며
차라리 잊으려 해도 차마 잊지 못할
그 님.
홍성주 / 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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