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추와 우무콩국
|
|
김 승 만 / 북일여고 교사
|
|
2022년 07월 06일(수) 16:46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직업의 특성상 시를 접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시를 시답게 음미하고 향유하기 보다는 지식 주입 위주의 기계적 학습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세월의 점층적 누적으로 중년에 접어든 지금은 기계적, 구조적 접근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주된 정서, 아니면 특정 이미지나 시어에 더 주목하게 된다.
시가 좀 더 내면화된 느낌이랄까, 더욱 친근하면서 푸근한 기분이 든다. ‘젊어서는 산문, 나이 들어서는 운문’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어느덧 7월로 접어들었다. 장마, 태풍, 그리고 극심한 무더위를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문득 시 ‘청포도’가 생각났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와 저항시의 틀에서 해석하는 시이지만 이상하게 이 시기의 내 고향을 떠올릴 때면 늘 맴도는 시이다.
내 고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청포도’
내 고향 순창의 7월은 어땠는지,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고향의 7월’, 혹은 ‘7월의 고향’은 어찌 자리 잡고 있을까. 기억과 추억이 켜켜이 덮인 상황이다 보니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 많지 않은 것 같고, 스냅사진 같은 이런저런 일들과 파편적 결합만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그런 것이리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좋은 일이나 반대로 빨리 잊고 싶은 나쁜 일이나 누적되고 뒤덮이는 순간 여러 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중첩되어 단순화되거나 혼재되었다.
그 와중에서 결코 섞이지도 단순화될 수 없는 고추 따기 노동의 현장만은 선명하다. 소재 ‘청포도’를 ‘고추’로만 살짝 바꿔도 그 맛을 가볍게라도 느낄 수 있다.
내 마을 칠월은 / 고추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열매가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 농부 피 땀 눈물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 밑 푸른 산들이 가슴을 열고 / 이따금 밤바람이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수익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고추를 딴다면 /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
동생아, 우리 마당엔 그늘에 /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마련해 두렴
고추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흔한 밭작물이다. 7월의 강렬한 햇살이 고추가 실하게 무르익는 초석이 되기도 하지만 문제는 거둬들이기.
한여름의 고추 따기보다 힘든 노동 조건은 없다고 여길 만큼 지금도 뇌리에 강렬하다. 폭염이 내리쬐는 한낮을 피해서 작업을 한다고 해도 얼굴과 목은 물론이고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몽글몽글한 땀방울을 견뎌내야 한다. 고랑을 밟고 다니며 꾸부정하게 앉아서 무성한 고춧대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붉은 고추를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 바구니가 제법 차면 곧바로 중간 거점 지역에 놓인 포대에 들이붓는다. 포대가 가득 차면 묶어서 밭 입구로 옮긴다.
이런 작업을 수십 차례하고 나면 배출된 땀들에 의해 몸은 녹초가 된다. 준비해간 물을 마시며 탈수만은 막지만 궁극의 갈증 해소는 요원하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수레나 경운기로 고추 포대를 집으로 옮기면 마당에 넓은 포장을 펼친 다음 포대를 개봉하여 말리기 작업을 시작한다. 지금은 태양초라며 그럴싸하게 일컫지만 그런 명칭이 있기 전부터 늘상 해오던 작업이었다.
문제는 소나기 같은 변수이다. 열대지방의 스콜 수준은 아니지만 별안간 내리는 비는 그 시작과 끝을 예상하기 힘들다. 열심히 건조하고 있는 고추를 비로 몽땅 날릴 수는 없는 법. 자연스레 마당을 주시하며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 기습적인 비라도 내릴 양이면 호들갑을 떨면서 고추 담기를 해야 한다. 그런 시간들이었다.
시원스레 퍼붓는 비를 지켜보면서 잠시 숨을 돌리게 된다. 여기에 한 가지 기억이 추가된다. 궁여지책으로 여름을 이겨냈던, 소박하지만 사랑과 정이 듬뿍 담긴 소중한 음식. 여름철 별미인 우무콩국이 떠오른다. 달달한 콩고물과 우무 특유의 씹는 맛이 더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고 허기도 가시게 만들었던 그 음식. 어떤 음료보다도 시원하고 속을 채웠다.
그 시절 어머니께서 사발에 가득 담아 건네주시던 그 우무콩국이 지금도 7월만 되면 생각난다. 국 속에 담긴 투명한 우무가 우뭇가사리를 끓여낸 액을 식혀 굳힌 것이라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씹기 좋고 목 넘김이 좋은 먹거리로만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모르고 먹던 그 시절이 더 정겹다. 실체를 알고 나니 소중한 그 무엇이 사라진 느낌이다.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게 병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
한여름, 7월에 내리쬐는 햇살에 숨도 내쉬기 어려울 정도라서 무더위, 이제는 폭염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런 만큼 기억할 것과 떠오르는 것이 많지만 고추와 우무콩국은 시골 출신인 내 DNA에 깊숙이 박혀 있다. 지금도 이야깃거리로 회자되는 여름날의 주요 소재이다.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계속 되새김질할 것이다.
|
|
|
|
순창신문 기자 .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