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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의 금(錦), 망덕거리의 덕(德)
금덕리(錦德里)
이 마을은 원래 망덕거리라고 불리는 시기리였는데 1962년 순창읍이 확장되면서 금덕리와 시기리로 분리되었다.
순창의 주산(主山)이 금산이고 망덕거리이기에 금산의 금(錦)자와 망덕거리의 덕(德)자를 붙여 금덕리라고 하였다.
경천이 흐르는 뚝쪽으로 200여년이 된 당산나무가 서 있고, 이곳에 오위장(五衛將), 이긍모(李肯模)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서 있어 덕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당산(堂山) 옆에는 할머니 노인당(老人堂)이 있는데 1930년 새롭게 단장하여 순창할머니 노인당이 되었다.
그리고 금덕리 724번지 대지는 일제시대 20여평의 한옥이 있어 회의제(會議齊)라고 현판을 걸고 순창청년회와 신간회(新幹會)가 이 집에서 조직되어 민족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하였는데 보존되지 못하고 주춧돌만 앙상히 몇 개 남아 있으니 아쉬울 뿐만 아니라 지금이라도 복원되어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은빛새의 떼가 머무른 곳
은행리(銀杏里)
옛날부터 은행정(銀杏亭)이라고 하는 마을이 순창군 좌부면에 속해 있었으며 정월 보름날 줄사움을 할 때에 은행정리와 하전리로 나뉘어 줄싸움을 하면서 은행정리가 숫줄(男子), 하전리가 암줄(女子)로 암줄쪽이 이겨야 풍년이 온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순창읍 터와 각별한 연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별다른 기록이나 구전도 전하는 것이 없으니 알 수 는 없으나 읍터와 관계가 있지 않으냐는 심증이 간다.
그 이유로 옹처굴의 용머리고개 부근을 상전리(上前里)라 하였고 용의 꼬리부근을 하전리(下前里)라 하였던 것 같은데 상전리와 하전리로 편을 가르지 아니하고 은행정리와 하전리로 나뉜 것과 상전리라 하지 아니하고 은행정리라고 하는 데에는 순창읍터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일설에 의하면 회나무와 은행나무가 거목이 되어 있기에 은행정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그렇다면 은행나무골이라 하였지 은행정리라고 하였겠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필자가 추리를 하여 본다면 순창읍터의 형상과 연관이 있지 아니한가 생각된다. 순창읍터의 형상이 일곱기러기가 내려 앉은 형상으로 본다면 그와 연관된 새들과 관계되는 형상으로 추리할 수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따라서 은빛새의 떼가 머무른 곳 즉 앉은 곳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은(銀)’자는 보화(寶貨)로 여겼고 ‘행’자는 새떼 ‘행(杏)’자를 쓰고 ‘정’자는 머무를 ‘정(亭)’자를 써서 은행정(銀杏亭)이라 고쳐 썼지 않았는가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명이 대략 지형상(地形象)과 연관이 많으면 이두문(吏讀文)으로 전하여진 것들이 많으므로 고전(古典)을 모르고는 알 수 없는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하간 은행정리란 지명은 예부터 내려온 것이 확실하므로 많은 연구와 고증이 있어야 되겠다. 1914년 마을이 크고 인구가 밀집되었기에 그러한 것으로 보이나 은행정이만은 다른 이름으로 바뀌지 아니하고 동서남북 은행리로 분리(分里)되었다가 1991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은(中銀) 하나가 더 분리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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