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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내는 당신, 그대의 삶은 언제나 멋질 것이야!’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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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섭 / 염우구박인문학교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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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06일(금) 10:44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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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순창 읍내 시장통 골목 안에 있는 영화당한약방 집에서 자취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던 P와 함께 자취했다. 이웃 마을에 살던 부모님들이 들판에서 일하다가 결정한 일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잘 어울렸지만, 학교가 달랐기 때문에 다른 점도 있었다. 어찌 보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지향하면서 생활했다.
친구와 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진학하지 못한 점이다. 나는 이곳저곳 떠돌다가 광주 양동시장 옷가게의 점원 생활을 하였고, 친구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정미소에서 조수 역할을 했다. 이런 경험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중학교 때부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와 함께한 경험으로 이어졌다. 중1 때 강천사 연대에 올라가서 곧게 뻗은 나무에다 이름을 새겨놓고 ‘바르게 자라자’라고 서원(誓願)할 때도 이 친구와 함께했다.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점도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철학자라도 되는 양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인근 대동산을 안방의 문턱 넘나들 듯 오르내렸다. 대동산이 순창 의병운동의 기치를 높이 든 유서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런가 하면, 비교적 말수가 적었던 친구는 멋을 내기 시작했고, 날마다 친구들을 자취방으로 데려와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옷 다리는 일이었다. 자기 교복을 잘 다려서 벽에 걸어놓는 모습이 마치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엄숙했다. 어쩌다 한 번씩은 내 옷도 다려주었지만, 주로 자기 옷을 그렇게 다렸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아침밥을 지어 그에게 바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당연한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살짝 약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쉽게 내색하지 못했다. 물론, 저녁밥은 나보다 일찍 귀가한 그가 더 많이 지었다. 친구와 그렇게 자취생활을 한 것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와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갔다. 나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상경하여 술집 웨이터를 비롯하여 판매원, 점원, 철공소 직원 등 온갖 일을 다 했다. 내가 군대에서 제대한 후, 시골에서 선생을 하고 있을 무렵, 초등학교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이 왔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그를 떠올렸다. 그는 훤칠한 키에 근사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유머까지 풍부하여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얼마 뒤, 어느 해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그가 일하고 있는 영등포의 한 공장으로 가서 그를 만났다. 때 묻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있는 친구가 낯설었다. 그 순간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멋 내기에 정신없던 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옷 다리는 일을 일삼던 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헌 작업복을 입은 모습은 ‘부조화의 극치’였다. 내 마음속에서는 별별 생각이 떠올랐다. 멋 내기를 필사적으로 좋아했던 친구가 저렇게 변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시커먼 작업복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고 천연덕스럽게 나를 맞이하는 친구,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친구가 필사적으로 아침마다 옷을 다리면서 멋을 냈구나.”
회사원이나 공무원들처럼 잘 갖춘 옷을 입을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던 것은 아닐까. ‘때 빼고 광내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친구가 경이로웠다. 아침마다 옷 다리고 싶어서 어떻게 살까. 물론, 그는 동창 모임 있는 날은 직업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여전히 가장 멋진 차림으로 짠~하고 등장했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왜 그때 그렇게 멋을 냈을까’를 부질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제법 성공한 사업가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다. 야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몇 해 전에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낮에는 공장에서 사장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대학교수로 화려하게 변신한 것이다.
그때야 나는 그가 성공한 삶을 누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멋 내는 일은 자신을 가꾸는 일이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가꾸는 일이 옷 다리는 수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습관화되고 내면화된다면 그것이 삶의 태도로 바뀐 것이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않는 친구가 주경야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가 되어 교수가 된 사실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서 멋 내기에 바쁜 학생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다고 칭찬했다. 그 시절 멋 내기에 바빴던 제자들도 지금쯤은 성공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왜? 그것은 내 친구가 입증한 것이다.
“멋 내는 자가 멋지게 산다”
친구가 내게 일깨워준 믿음 하나다. 어릴 적 나는 멋 내기 바쁜 친구가 어른이 되면 ‘기생오라비’가 될지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그는 달랐다. 어렸을 때 옷 다리는 그 마음으로 자신의 변화를 갈망했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기에 멋 내기에 더 바빴던 것이다. 그것이 삶의 태도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삶으로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영등포의 쇠 깎는 공장에서 기름과 때에 절었지만, 예전에 옷을 다리듯 자신의 꿈을 키웠던 내 친구, 그의 성공 비결이 바로 ‘자신을 가꾸는 힘’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때 겉멋만 들었다고 친구를 언짢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멋 내는 당신, 그대의 삶은 언제나 멋질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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