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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의 아버지, 마음속의 아버지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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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 철
인천서부교육청 복지재정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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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4월 28일(목) 15:06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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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독족굴(인계면 장례마을 인근 지명)에 밤나무가 무성하다.
모두가 산밤나무이다. 독족굴이 이렇게 밤나무가 많아지게 된 것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아버지께서는 이곳 독족굴의 야산에 800그루의 밤나무를 심으셨다. 그 당시에는 우량종을 심으셨고, 잘 자랐다. 그래서 중학교 다닐때는 가을에 주말만 되면 온가족들이 밤밭에서 알밤과 밤송이를 줍느라 바빴다. 사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 놀지 못하고 밤을 주웠기 때문에 지겨웠다.
그때 심었던 밤나무는 수명을 다하여 죽었고, 지금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산밤나무는 아버지가 심은 나무에서 열린 밤이 땅에 떨어져 자라난 후예들이다. 밤나무가 우량종일 때는 사람의 돌봄이 있어야 했지만, 산밤나무가 된 지금은 돌봄이 없어도 독족굴의 우세종이 되어 그곳을 꿋꿋이 지키고 있다.
나는 척박한 산인 독족굴에서 살아 남아 묵묵히 서 있는 산밤나무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흔적을 느낀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에 변변한 전답도 없이 거의 소작으로 농사를 지으시며, 계절에 따라 누에를 치는 등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셨다. 장례마을에서 태어나 40대 중반까지 사셨다. 그러던 분이 40대 중반에 가족을 이끌고 인천으로 이사를 하셨다. 직장을 잡아놓고 이사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장의 노무자, 초급 목수 등으로 일하셨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가 그 당시에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든다. 40대 중반까지 시골에서 사시던 분이 도시의 노동자로 살아가기가 녹녹치 않으셨을 것이다. 인천에 이사온지 4~5년 정도 지나서 아버지는 구청의 환경미화원으로 취직을 하셨고, 그 시기부터 다소 안정을 찾으셨다. 환경미화원으로 10년 정도 근무하신 후 퇴임하셔서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독족굴에서 비와 바람과 다른 나무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꿋꿋하게 살아 온 산밤나무와 같이 아버지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결혼하여 여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 힘든 삶의 여정을 이겨내고 우리 곁에 계신다.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어떤 풍파가 와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깊고 튼튼한 뿌리와 굵고 강한 줄기와 푸른 잎을 가지고 있는 독족굴의 산밤나무와 같이 계신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 거울을 보면 문득 ‘아버지가 왜 거울속에 계신가...’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버지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많이 닮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눈, 코, 입을 구분해서 보면 아버지를 닮았다. 얼굴 전체적인 윤곽은 어머니를 더 닮은듯 하다. 내 형은 거울을 보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것 같이 형제중에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나도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형제들의 얼굴이 똑같아 진다는 말을 듣게 된다. 즉, 나이가 들수록 나와 우리형제들이 점점 아버지의 외모를 닮아 간다는 의미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도 시간이 더 흘러서 거울을 보았을 때... '앗! 아버지가 거울 속에 계시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부전자전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아버지의 태도나 성향이 그의 아들에게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나도 삶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상당히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른 사이에 나의 몸 속에 아버지의 태도나 성향이 베어 있는 것이다. 식생활에서 부터 가정생활, 직장생활 등 삶의 많은 부문에서 그렇다.
아버지께서는 본업을 열심히 하시면서 다른 새로운 작목 등을 발굴해서 일하셨다. 본업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별도로 철에따라 누에를 치고, 담배농사도 지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우리집에는 감나무가 없었고, 밤나무는 집 주위에 몇 그루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 아버지께서는 밭 주위에 고염나무를 심으시고, 키워서 감나무를 접붙여서 우량종 감나무를 많이 갖게 되셨다. 1만여평의 임야에 밤나무를 심으셔서 커다란 밤나무밭도 일구셨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많지 않은데, 아버지께서 감나무 접붙이신 것과 밤나무밭을 만드신 것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나는 26세에 취직을 했고, 27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동안 직장에서 맏겨진 일을 감당해 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거 같다. 30대 중반에는 몇년간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밤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그야말로 나도 본업에 충실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자격증, 자기개발서, 인문학 등의 책을 놓지 않았다.
삼십대에는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컴퓨터 자격증을 땄고, 일상생활과 밀접하며 퇴직 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사십대에는 대학원을 다녀 교육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직장내의 근무기간이 길어지면서 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쌓여서 강의 요청이 들어 왔다. 직장내에서 직원들의 직무에 대한 강의를 20년째 해오고 있다. 최근 5년 전부터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등록 청렴교육전문강사로 활동하면서 외부기관에도 꾸준히 강의를 다니고 있다.
영역은 다르지만 아버지의 삶의 모습이 나의 생활속에도 뚜렷이 투영되어 있다. 아버지는 근면성실하신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살아 남기 위해, 살아 가기 위해, 좀 더 잘 살기 위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살아 왔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도 그런면이 강하다.
금년도 2월이 나의 쉰두 번째 생일이었다. 큰 딸 아영이가 생일선물과 함께 축하글을 건넸다. 축하글에 “아빠가 평생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저도 열심히 사는 어른이 됐어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내가 아버지께 몇 번 말로 표현했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의 외모만 닮는게 아니다. 아버지의 삶의 모습도 닮는다. 그리고, 나의 자녀들은 나의 외모를 닮고, 나의 삶의 모습도 닮는다. 나의 삶속에 아버지의 삶이 들어 있다. 나의 삶이 나의 딸들인 아영이와 서영의 삶속으로 이어진다. 두 딸들이 지금의 내 나이쯤에 거울을 봤을때 어떤 생각이 들까? 마음속에는 어떤 아버지로 기억할까? 그때도... 나의 쉰두 번째 생일날 받은 아영이의 메시지와 같이 “아빠가 평생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저도 열심히 사는 어른이 됐어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는 아버지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아버지를 그렇게 기억하듯이...
독족굴의 산밤나무가 계속해서 살아 남듯이 우리들의 삶도 후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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