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묘지석(墓誌石): 죽은 사람의 성명, 생, 졸, 관직, 행적, 가계 등을 돌에 새겨서 관속에 같이 매장함.
묘지석제목: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 형부상서, 한림학사승지 설공묘비명
은청광록대부는 정2품, 추밀원부사는 정3품 현 대통령비서실장, 형부상서는 정3품으로 현 법무부장관, 한림학사 승지는 현 국립대 석좌교수. 특이한 점은 설신의 묘지석은 전주 순창군 사람이라고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묘지석 저자: 묘지석에 글을 지은 사람의 신분에 따라 돋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역신이 되어 폄하되기도 하는데, 설신의 묘비명 저자는 지포 김백일(金百鎰) 선생인데, 고려 원종 때의 학자로서 추밀원부사(현 대통령 비서실장)와 첨의 찬성사(현부총리)등을 엮임 하고, 고려 신종(神宗), 희종(熙宗), 강종(康宗)등 3대 실록을 편수 하였으며, 본관은 부안(扶安) 김씨이다.김백일 선생이 묘지명에 이르기를 설신은 성격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어서 한번 결심한 일은 두려움 없이 해냈으며 도량이 크고 넓었다.또한 총명한 자질에 학문을 좋아하고 독서에 힘써 문무(文武)로 몸을 단장하고 충의(忠義)로 뼈를 삼아 청운의 꿈을 이루었으니, 아름답도다 공 이시여! 곧은 돌에 꽃다운 이름 새겨 만세에, 빛나리라 하고 극찬하였다.
묘지석 보관장소: 창경궁 장서각, 현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이관
묘지석 크기: 가로 35cm 세로 57cm
묘지석에 나타난 설신의 자녀: 장남 설공검(薛公儉)은 충열왕 34년 집권 동안 19명의 수상 중 유일하게 종묘배향 공신이 되었다. 고려는 473년 동안 46명의 종묘배향공신을 배출하였는데, 설공검은 여러 벼슬을 거쳐 첨의 찬성사(현 부총리)와 첨의 중찬(현 국무총리)을 끝으로 퇴임하고 문량(文良)으로 시호를 받았다. 차남 설인검(薛仁儉)은 합주부사(陜州副使, 현 합천군수) 사재시경(司宰侍卿, 현 해양교통부장관)과 평장사(平章事, 현 장관에서 부총리급)를 지내고 문숙(文肅)으로 시호가 내려졌다. 딸은 정지교(鄭之僑, 양주정씨, 벼슬은 서기)에게 출가하였다. 손자 설지충(薛之?)은 원나라에 독노화(禿魯花, 몽고어인데 우리말로는 볼모, 인질이란 뜻)로 수십 년을 머물다 귀국하여 중낭장(中郎將, 현 군 영관급)을 거쳐 첨의 찬성사(현 부총리), 삼중대광 판 전리시사 상호군(三重大匡 判 典理侍司 上護軍, 정1품 품계로 현 행정자치부장관과 군대 장으로 궁중 경호 총책)과 도첨의부 좌정승(都僉議府 左政丞, 현 국무총리)을 지냈다.
淳昌鄕校 典校 姜炳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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