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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푸근해지는 고향 아저씨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7

송 일 섭
염우구박 네이버블로거

2022년 03월 28일(월) 18:21 [순창신문]

 

ⓒ 순창신문



중학교 2학년 때의 여름날이었다. 그날은 친구들과 일찍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학고개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샘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삼식이 아저씨네 집 처마 밑에서 ‘타다닥!’ 소리가 나더니 이내 불길이 지붕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책가방을 던져놓고 샘으로 달려가면서 외치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
거의 단말마(斷末摩)의 비명 같은 외침이라고 할까. 농사철이어서 사람들이 마을에 별로 없었지만, 내 아우성에 놀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정신없이 샘의 물을 퍼다 불을 끄기 시작했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불난 집 옆에 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불은 맹렬히 타오르려고 기를 썼지만, 동네 장정이 가세하면서 휘청거리더니 얼마 되지 않아 피식 꺼지고 말았다. 이미 나는 흥건히 젖어 있었다. 땀과 물에 젖은 내 몰골은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마을 노인 한 분이 그윽한 눈길로 나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학생 아니었다면 홀라당 타부렀을 것인디......., 아가 고맙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테면 내 ‘초기 진압’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신 것 같았다. 그리고 밤디(필자의 고향 마을, 지금은 ‘율리’라고 함)의 누구네 아들이냐고 묻길래 아버지의 함자를 또박또박 알려드렸다. 나는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오면서 하마터면 다 타버렸을지도 모를 그 집을 몇 번이고 돌아보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교장 선생님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구림중 초대 교장이신 김윤권 선생님으로 자상한 분이셨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교장실로 갔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환한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우리 일섭이가 착한 일을 했더구나. 학고개 마을 ‘권삼식’이라는 분 알지?”
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권삼식’ 씨는 며칠 전 하굣길에 불이 났던 그 집의 주인이었다. 그 아저씨가 내 선행을 교장 선생님에게 알린 것일까. 사실, 그때 내가 한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 아닌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가던 길을 멈추고 기꺼이 불을 껐을 것이다.

그리고 또 며칠이 흘렀다. 연산에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저물녘에 집으로 가는데, 학고개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아래에 한 아저씨가 있었다. 삼식이 아저씨였다. 나를 보더니 아저씨는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섭아,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우리 집은 다 타버렸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하다.”
그리고는 나에게 큼지막한 선물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정말 고마워서 그러니 사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지만, 끝까지 버티지는 못했다.

아무튼, 나는 그 일이 일어난 후 학고개 마을에서는 작은 영웅이 되었다. 등하교 때마다 만난 마을 어른들은 나를 반갑게 대해주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학고개 사람들로부터 치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대학 다닐 무렵, 집에 가면 부모님은 아저씨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연산 장날 아저씨가 점심을 사준 일을 비롯하여 무거운 짐을 이웃 마을의 우리 집까지 날라주신 일 등등.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아저씨가 고마웠다. 어렸을 때는 아저씨를 만나면 쑥스러웠는데, 어느새 나도 아저씨를 만나면 마치 집안의 당숙이나 삼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후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때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중학교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하였지만, 나는 긴장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 후배는 나를 확인하더니 대뜸 ‘일섭이 오빠’라며 반가워하면서 ‘권삼식 씨’를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예, 아주 잘 알지요. 그런데 후배는 어떻게 그분을 아세요?“

후배는 그분이 자기 아버지라면서 어렸을 적에 아버지로부터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반가운 누이를 만난 듯 편안한 말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기억에 없는 후배였지만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기 아들의 입시 관련 궁금증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 후 서울에 갈 기회가 있으면 연락해서 만나기도 했다.

이제 고향에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제도 없다. 부모님을 고향 선산에 모시고 그리울 때면 아무 때고 찾아갈 뿐이다. 얼마 전에 연산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문득 떠올라서 찾아갔다. 아저씨는 예전의 정미소 자리에 지금도 살고 계셨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농기구들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들일을 마치고 막 돌아오신 것 같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나를 보더니 ”누구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아저씨, 저 밤디 살던 송일섭입니다.“
”아니, 밤디 사는 일섭이라고?“
아저씨는 금세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랫동안 나를 만나지 않았는데도 아저씨는 나의 행적을 다 알고 계셨다. 내가 옮겨 다닌 근무처를 훤히 꿰셨고, 심지어는 퇴직 후, 나의 사회활동 소식까지도 고스란히 알고 계셨다. 나는 바쁜 생활을 핑계 삼아 아저씨를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아저씨는 내 소식을 다 알고 계시다니 참으로 죄송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행인 것은 아저씨가 이미 팔순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쩌다 위기의 순간에 만난 인연이 이렇게 오래도록 서로의 가슴 속에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했다.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가슴을 푸근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다. 삼식이 아저씨,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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