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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추억과 그리움, 고향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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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상 철 / 인천서부교육청 복지재정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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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3월 16일(수) 16:25 [순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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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순창신문 | |
인천에서 30년을 넘게 살고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 순창에서 보다 더 오래 살았다. 초ㆍ중ㆍ고를 순창에서 다녔다. 허리가 아파서 농사 못짓겠다는 어머니의 절규때문에 우리집은 1991년에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이때 부모님은 40대 중반이셨다. 내가 쉰살이 넘은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두 분은 대단한 모험가셨다는 생각이든다.
부모님의 이사로 21년간 살았던 나의 생활 근거지도 인천으로 바뀌었다. 이사 이후에 대학 친구들이 '너 어디 사냐?'라는 물음에 어색하지만 '인천...'이라고 말해야 했다. 어색함은 상당히 오래갔다.
인천에 살면서.... 군대를 다녀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아이들을 낳고 길렀다.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 큰 아이는 내가 결혼했던 나이 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직장에서도 선배 보다는 후배들이 훨씬 많은 세대가 되었다.
인천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인천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가끔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나는 말한다. '순창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한다. '제2의 고향은 인천입니다.'
고향은 '태어나 자란 곳' 또는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거나 정답게 느끼는 곳'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순창이고,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정답게 느끼는 곳이 순창이다. 내가 세상에 나오면서 만났던 땅이 순창이고,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만났던 사람이 순창사람이다. 만남이 추억을 만들고, 추억이 그리움을 갖게 한다. 유년시절 순창에서 살면서 만났던 만남과 추억이 나의 몸속에 켜켜이 쌓여 고향 순창에 대한 그리움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인천이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타지이다. 타지에 살다 보면 고향이 그립고, 고향 사람을 만나면 너무도 편안하고 좋다. 인천에 살다 보니 직장 등에서 호남사람만 만나도 반갑다. 전북사람 만나면 더 반갑다. 순창사람을 만나면 엄청나게 반갑다. 나보다 더 반가워 하는 분들이 있다. 순창고등학교 선배님이나 순창향우회 선배님을 만나면 나보다 그분들이 더 반가워 하신다. 그분들의 반가워함과 환대가 고향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타지인 인천을 제2의 고향이라고 하는데에는 나만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인천은 취직과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온전히 주체적인 삶을 시작한 곳이다. 첫번째 독립은 어머니의 몸과 태줄로 연결되어 의존해 있다가 분리되는 것이다. 즉, 생물학적인 출생이다. 두 번째 독립은 의ㆍ식ㆍ주와 의사결정 등 부모님께 의존하던 생활에서 취직과 결혼으로 완전하게 분리하는 것인데, 그렇게 한 곳이 인천이다. 즉, 생존적인 의미에서 독립한 곳이 인천이다. 독립적인 존재로 인천에서 꿋꿋이 살아오고 있다.
인천에는 토박이 보다는 나같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다. 직장에도 그렇고, 일상생활 할 때 만나는 사람들 중에도 그랬다. 인천은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이다. 바다가 세상의 모든 강물을 거부하지 않고 온유하게 받아 주듯이 인천도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주고 품어 주는 바다같은 도시다. 토박이들의 텃새나 따돌림 같은 것이 없다.
그럼에도 30대 중반까지의 인천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산으로 둘러 싸인 동네에서 잔뼈가 굵었던 시골 촌놈이 주변에 건물로 가득하고, 낮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인천에서 살아내기는 상당이 팍팍했다. 적응하고 살아내기 위해 옆과 뒤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 왔던거 같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장에서 경력이 쌓여가면서 그에 비례해서 아는 사람도 많아지고, 직장생활도 익숙해졌다.
고향이 전북이나 전남인 분들도 알게 되었다. 직장 내에서 가끔 그분들과 눈빛으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순창은 아니지만 전북이 고향인 선배가 커피를 타주면서 열심히 일하라는 격려의 상황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우리 직장내에는 중간 간부 이상들만을 대상으로하는 호남사람들 모임이 있다. 회원이 30여명이다. 이분들과의 만남을 가끔씩 갖고 있으며, 일부 향우와는 깊은 교류를 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은 만남이다. 태어나면서 부모님을 만나고, 가정에서 형제자매를 만난다. 학교에 가서 친구와 선배와 후배를 만나고, 결혼하면서 배우자를 만난다. 공부나 직장 또는 이주 등으로 타지에 와서 살다보면 다양한 만남의 연속이다. 타지에서의 여러 만남 중에 유독히 정겹고 유대감이 깊은 만남이 고향사람들과 만남이다.
인천은 나에겐 타지이다. 그러나, 인천은 나에게 타지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이상의 가치가 부여된 도시이다. 순창은 나의 고향이고, 인천은 제2의 고향이다. 순창이든 인천이든... 내가 고향이라고 할 수 있음에는 내 속에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50대 초반이 되기까지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었고, 인연이 추억이 되었다. 그 추억들이 쌓여 그리움이 되었다.
인천에서 순창 갈 때 호남고속도로 전주IC만 빠져나와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겨워진다. 나는 오늘도 그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내 고향 순창에 대한 그리움을 또 다른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순창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나의 고향 순창을 향해 가고 있다.
2022.3.9. 순창행 고속버스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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