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향 별곡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4
|
|
김 승 만 / 천안북일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
|
2022년 03월 02일(수) 16:49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태어나서 10대 후반까지 순창에서 살 때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지만 객지로 나와 산 지 3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 불과하다. 아니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그 이상의 시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그러기에는 살았던 기간은 아득하기만 하고, 객지로 떠나 있는 시간에 더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다고 마음과 영혼마저 떠난 건 아니다. 아직 고향 집이 있고, 순창인끼리 가정을 꾸린 관계로 연로하셨지만 양가 모친이 그 고향 집에서 변함없이 살고 계시기에 연중 6~8회 이상은 방문하여 잠시라도 발을 담그고 순창의 품에서 지내다 오니 완전한 이방인은 아니다. 그 시절 그 땅을 밟으며 걷고 생활하며 농사지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에 순창이 등장하면 비중 있게 다루든 그렇지 않든 이목을 집중하여 어떻게든 나와 주변을 연결 지어 보려 애쓰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내 기준에서는 사는 내내 ‘순창’은 인지도가 상당히 낮았다. 새로운 만남의 시간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야 했다. 적어도 내가 부딪치며 겪은 관계망 속에서는 늘 두 번 이상 반복해야 하고, 늘 ‘전남 순천’과 다르다는 점을 힘주어 말해야 했다. 심지어 ‘고추장’을 언급해야 하고, 그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남원’ 옆이라고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줘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이 누적되다 보니 늘 비주류이자 소외지역 출신의 이미지로 덧칠되어 살아왔다. 번거로움과 수고를 거치는 절차가 반복되다 보니 드러내놓고 밝히지도 못하고 주도적으로 자랑하지도 못했다. 위축과 주눅의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나이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긍지와 자부심으로 바뀌었다. 순창에서 산 어린 시절이 자양분이 되어 몸과 마음이 조화롭게 건강하고 근면 성실하며 너그럽고 포근한 심성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날 때부터 도시인인 주변 사람들에 비해 체력, 심력, 의지 등이 확실히 비교우위일 수밖에 없다. 개미 같은 부지런함, 황소 같은 힘과 지구력, 반려동물 같은 인정과 푸근함은 순창에서 나고 자란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니 ‘순창 홍보 대사’는 아니지만 1인분 이상의 민간 사절단 역할은 잘해 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고추장, 강천산 등은 이미 전국구가 되었고, 최근 뜨거운 용궐산 하늘길, 체계산 출렁다리, 향가리 유원지 등도 알리고 적접 경험해볼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런 눈에 보이는 유산을 뛰어넘어 무형의 생태적 자산까지 부각하는 여유까지 갖게 되었다.
사실 ‘순창’이라는 강렬한 소재가 언제까지 삶의 소설을 풀어나가는 오브제 역할을 충실히 할지는 모르겠다. 중년이 된 지금은 과거를 소환하고 추억을 상기하며 지내게 만드는, 그래서 현재와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그려내기보다는 과거 속 그림자가 더 강렬하게 여운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고, 늘 과거지향적인 관점으로 먼저 다가가게 된다. 보편적 인간의 감성을 ‘원형상징’화해서 본다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이겠지만 경제와 산업, 지속 가능한 존립 기반으로서 현실의 잣대로 본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순창’은 어떤가? 고향이 주는 ‘안락함’은 상수로 있지만 초고령화 및 인구 소멸 위기 등 최근의 우울한 소식 등이 더해지면서 오묘한 의식과 감정을 갖게 만든다. 거침없는 사회 변화와 무한 확장되는 도시 집중화로 인해 빚어지는 농촌 지역의 쇠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21세기 양극화의 큰 그늘이자 아픈 손가락처럼 자리매김해 버렸다. 여기저기서 원인과 실태 및 양상, 대책 등이 쏟아지지만 이런 아픈 흐름이 손쉽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더 어울릴 듯하다. 좁디좁은 식견으로 생각해 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개인이 어찌 할 수 없다는 게 더 맥빠지게 한다. 나의 튼튼한 뿌리이자, 튼실한 가지를 자라게 한 이런 아름답고 소중한 공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자체가 망상이자 순진한 꿈이었음을 부채질한다.
| 
| | ⓒ 순창신문 | |
전주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임실 덕치를 지나 고개를 넘자마자 나오는 인계 탑리마을부터는 행정구역상 순창이다. 별다른 인연이나 접점이 하나도 없지만 내 속에는 거기서부터가 언제든 나를 품어줄 고향이요, 어머니요, 든든한 응원군의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다가 순창의 남쪽 끝자락인 고향마을에 몸을 내리면 그 순간 온몸으로 고향의 오감이 멸려든다. 타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위무하며 정답게 손 내밀어준다. 이런 시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집 주변의 을씨년스러운 풍경, 인적 없는 골목길, 이런저런 동물들만이 주인 행세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곧바로 켜켜이 쌓인 침묵의 그림자로 나를 짓누른다. 어색한 호흡과 언어로 어떻게든 그 상황을 헤쳐 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니 그런 분위기에 나 또한 경도되어 으스러지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상념을 간직한 채 올려다본 고향집 밤하늘의 달과 별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적어도 나한테는 말이다. 이제는 그것들과 함께 그려내야 할 그림이 더 풍성하고 다양해지도록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 물 맑고 공기 좋고 자연 친화적인 지역이라는 교과서적인 접근을 뛰어넘어 땜질식이든 대증요법이든 근본적인 처방이든 물불 가릴 때가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미소 지으며 신명 나게 삶을 일궈나가는 아름다운 공간이자 대대손손 누구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영위하게 만드는 울타리 역할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순창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인 ‘사는 맛이 나는 고장’으로 계속 자리 잡아가고, 지속 가능한 농촌의 모델로 영원히 남았으면 하는 구성원 모두의 염원이 불씨로 남아 있는 한, 그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
|
|
|
순창신문 기자 .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