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리(塔里)마을
다섯 개 역 가운데 하나인 노현역(蘆峴驛)
역룡으로 밀어올린 성미산이 박환하여 남쪽으로 솟아오른 산이 국사봉(國師峰)이다. 일명 국시봉(國始峰)으로 기록된 곳이 있으나 어쨌든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쏟아지듯 내려와 머무른 곳이 마을에 있으니 이 마을을 탑굴 또는 탑리(塔里)라고 한다.
원래는 호계면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양재와 합하여 인계면 탑리로 통칭하게 되었다. 이곳은 임실군과 경계일 뿐 아니라 순창군의 북단으로 전라감영과 연락되는 중요한 관문이었기에 순창군의 다섯 개 역 가운데의 하나인 노현역(蘆峴驛)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므로 순창 창신역에서 북쪽으로 8㎞에 노현역이 갈담역과 연결하는 중요한 역이었기에 이곳에는 역마ㆍ역졸ㆍ숙소ㆍ일반주막 등이 있었고 각종 통신망을 연결하는 시설이 있었기에 이정표를 세워놓은 탑이 있었지 아니한가 생각된다.
이처럼 이정표와 같은 탑이 많이 있었기에 이 마을을 탑리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따라서 이곳에는 많은 설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외양(外陽)마을
소가 외양으로 들어오는 형상
국사봉에서 갈재를 거쳐 매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에서 분지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맥이 천마봉과 선암산의 교구지점에서 서남향을 하고 27번국도변에 위치한 마을을 외양재로 부른다. 원래는 양암리로 호계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탑리로 폐합되어 인계면에 속하였다.
그후 이 마을은 외양리가 되었고, 외양이란 소나 말을 먹이는 마굿간의 방언으로 외양간이라 하는데 그 유래는 쌍암리에서 밭을 가는 소가 외양으로 들어오고, 마을 뒤뜰에 방목중인 소가 외양으로 들어오는 형상이므로 외양간이 분명할 뿐만 아니라 외양 안에도 소가 매여있는 형상이다.
그후 자연부락 외양리는 진주강씨와 남원양씨가 토착되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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