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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맑은 샘 같은 고향 순창 / 고향생각-타향에서 보는 순창

송 일 섭 (염우구박 네이버블로거)

2022년 02월 11일(금) 10:52 [순창신문]

 

ⓒ 순창신문



필자는 구림의 산골짜기 밤디 마을에서 태어났다. 우리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집안이 가난해서 제때 진학하지 못했고, 한 해 뒤에서야 중학교에 갈 수 있었다. 사등이 재를 구불구불 넘어야 했고, 학고개에서 미금내까지는 내리막길이었으니 내가 다닌 등하굣길은 험준한 산악 훈련 코스였다. 그 덕에 나는 전방부대 소대장으로 근무할 때 산 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으니, 어린 시절 고향에서 했던 산악 훈련(?)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고향 생각하면 많은 일이 떠오른다. 나이 든다는 것은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이라던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무 준비도 없이 강천사로 야영을 갔다. 절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불을 피웠다. 우리네 모습을 지켜보던 스님의 아들이 쌀을 훔쳐와서 ‘라면쌀죽’을 포식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후에는 옛 절터 연대로 올라갔다. 무슨 나무인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곧게 자린 나무를 올려보며 그 나무들처럼 잘 자라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것이 모자랐는지 내가 엉뚱한 제안을 했다. 곧게 자란 나무와 1:1로 결연하고 각자 자(字)를 지어 나무에다 새기자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책이 수북한 집에서 독서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구할 구(求)’와 ‘넓을 박(博)’의 ‘구박(求博)’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물론, 친구들도 나무에다 이름을 새겼다. 한자(漢字) 쓰기 숙제를 충실하게 했던 덕일까. 소가 한가롭게 풀 뜯는 모습을 ‘염우(廉牛: 욕심 없는 소)’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염우(廉牛)’와 강천사 나무에 새겼던 ‘구박(求博)’을 합하여 이름처럼 쓰기 시작했다. 새로 산 책이나 노트에는 어김없이 ‘염우구박(廉牛求博)’이라고 썼다.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벌고 출세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지는 못할망정, 한가롭게 서 푼어치도 안 되는 관념투성이의 ’염우구박(廉牛求博)’을 천연덕스럽게 쓰고 있었으니, 당시 부모님이 이를 아셨더라면 속 터질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40여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내 삶은 자연스럽게 ‘염우(廉牛)’의 삶을 닮아갔고, 여전히 글 쓰고, 강의하고 있으니 이 또한 ‘구박(求博)’의 길 아닌가. 어린 시절, 한갓 치기(稚氣)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 날 돌아보니 그대로 내 삶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내 졸고(拙稿) 〈이름 함부로 짓지 말라〉라는 글에서 이 이야기를 고백한 바 있다. 이제는 드러내놓고 《염우구박인문학교실》이라는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할 만큼 배짱이 생겼다. 어쩌면 내게 잘 어울리는 맞춤형 이름 아닐까.
한 번은 친구들과 군청 옆에 있었던 극장(순창 제일극장?)으로 영화 보러 가는데, 읍내 불량배들의 눈에 띈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10원을 빌려달라며 시비를 걸었다. 이를 보다 못한 내가 대뜸 한다는 말이 “너희가 우리를 언제 봤다고 돈 빌려 달라고 하냐?”라며 힐난한 후 “좋아, 너희 말대로 10원 빌려줄 테니 언제 갚을 거냐?”라며 따졌다. 그들은 나를 쏘아보더니 뒤로 물러섰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영화에 빠져들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툭툭 쳤다. 돌아보니 따라오라고 손짓하였다. 조금 전에 우리에게 시비 걸던 그 친구들이었다. 이 순간을 모면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던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꾀죄죄하게 서 있어야 했다. 바로 그 순간이다. 한 여학생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더니 그 불량배들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슬금슬금 사라졌다. 만약 그 여학생이 없었다면 나는 집단폭행을 당했을 것이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시비 걸었던 그 불량배 친구들의 정체를 다 알게 되었고, 오히려 그 일 때문에 더 사이좋게 지내게 되었다. 지금도 영사실 뒤에서 대기하던 그 짧은 순간을 떠올리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게 시비 걸었던 친구들(‘불량배’라고 해서 미안하오), 나를 위기에서 구해준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지금은 온통 그리움뿐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순창이 싫었다. 땟국처럼 얼룩진 가난 탓일 것이다. 순창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마을 뒤에 조상을 모신 선산이 있고,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 삶의 틀이 대부분 순창에서 다져졌기 때문이다.
순창 밖에서 만나는 향우들은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처럼 모두 정다웠다. 1980년대 초, 장수(長水)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고향 선배들이 장수에서 순창향우회 모임을 하고 있었다. 막내둥이 향우를 따뜻하게 환영해주던 그 시절 고향 선배들이 그립다. 2014년 군산에서 만난 향우들은 지금도 아무 때고 형님 동생 하면서 전화도 하고 만난다. 객지에 살면서 만난 순창 사람들은 금방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지금은 순창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내 영혼의 맑은 샘이었던 순창, 내 고향 순창은 언제나 푸근하기 때문이다.

순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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