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력 그 이후, 미래는 ......
|
|
- 취재현장에서
|
|
2021년 07월 29일(목) 10:03 [순창신문] 
|
|
|
| 
| | ⓒ 순창신문 | |
순창신문 창간과 함께 1991년 10월 고등학교 은사님의 도움으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를 만큼 언론이나 기사에 대해 문외한이었으나, ‘기자’라는 직업에 기대심리는 컷던 것으로 기억된다.
첫 취재원은 순창애육원(현재 옥천요양원에 위치) 이었고, 두 번째 취재는 군부대였다.(팔덕면 소재 · 현재 순창승마장에 위치)
3개월의 짧은 순창신문사 생활을 갈무리하고 이듬해 1월 14일,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 입대와 전역 그리고 전문대에서의 방송기술 습득 · 방송통신과 학회지 창간(개교 이래 최초 · 편집장) 작업을 주도했다.
이후 신문기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전문대학 졸업 후 다시 ‘순창신문사’에 재취업했으나, 글쓰기(기사)에 대한 두려움과 취재기법에 대한 무지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취업에 대한 기쁨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시기였다.
신문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야간대학 신문방송학과에 편입했으나, 적지 않은 나이가 자연스럽게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내몰았다.
낮에는 농협중앙회 순창군지부에서 청경으로, 밤에는 학생으로, 새벽에는 신문 배달과 노래방, 공사 현장 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으며, 대학원에서는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그 덕에 취재는 어렵지 않았으나, 글쓰기에 대한 애로사항은 크게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을 잘못 파악한 것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후회는 없으나 이제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간절한 마음과 각오로 30년만에 다시 찾은 ‘순창신문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거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로 매 순간순간 임할 생각이다.
‘100세 시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면 하프를 조금 넘긴 내게, 직장이(순창신문)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고민하고 사유하며 지역사회에서 언론의 역할과 언론인의 바람직한 상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런 고민 속에서 한 주, 한 주, 보낸 것이 5번째 신문을 제작하며 한 달을 보내고 있다.
‘순창신문사’의 사시(社是)처럼, 나의 미래는 언론인으로써 정론직필(正論直筆), 문화창달(文化暢達), 애향화합(愛鄕和合)을 론(論) 할 수 있는 품격(品格)을 갖추기 위해 쉼 없이 배우고, 현장 소리 청취와 보도에 게으름 피우지 않는 기자(記者)이고 싶다.
|
|
|
|
남융희 기자 “” - Copyrights ⓒ순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순창신문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순창신문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